세상보기

조선일보의 후안무치

부끄럽다.

그럴 자격만 있다면 이땅의 언론과 언론인들을 대신해서 망연자실해 있는 국민들에게 무릎꿇고 용서를 빌고 싶다. 나라가 거덜난 것은 순전히 ‘언 론’ 때문이었다고. 사회의 공기(公器)로서 현실을 제대로 진단하지 못했 던 잘못과 5년 전 그때 국민들에게 ‘잘못된 선택’을 강요하고 이끌었던 원죄를 말이다.

그때 “유권자들이 정주영씨에게 ‘적당히 많이’ 표를 줄 경우엔 대통령 으로는 김대중씨가 당선될 확률이 높아진다고….” 마음을 잡지 못하고 떠다니던 유권자들을 어르고 달래 김영삼 후보를 밀던 입은 이제 “대통 령 잘못 뽑으면 세상이 거덜난다”고 말하고 있다. “대통령, 한번 잘못 뽑으면…”이라는 굵은 활자의 기사 제목은 ‘도대체 누가 김 대통령을 뽑았느냐?’고 눈을 부라리는 듯하다. “모두 당신들 탓”이라는 서슬퍼 런 책임 추궁이 묻어나기까지 한다. ‘나라가 거덜난’ 모든 잘못과 책임 은 김영삼 대통령을 뽑은 국민들과 김 대통령에게 전적으로 있다는 선언 으로도 들린다. 최대의 후원자부터 매몰차게 발길질당한 김 대통령이 느 낄 배신감은 둘째치고 국민들이 겪을 혼란이 염려되는 대목이다.

물론 ‘그때는 분명 김영삼 후보가 최선은 아니더라도 차선은 된다고 생 각했으며, 또 그가 5년 뒤 이렇게 나라를 망쳐먹을 줄은 꿈에도 몰랐을 수’도 있다. 짧은 소견으로는 그렇다고 해도 먼저 자기 반성과 사과부터 하는 것이 순서가 아닐까 싶다.

영향력면이나 필력에서 대한민국에서 둘째간다면 서운해한다는 이 논객은 15대 대선을 앞두고 다시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글을 자주 쓰고 있다 . DJP에 대항하기 위한 여권의 단합 방안과 야당후보를 이기는 길도 훈수 했다. 앞으로 5년 뒤 또 누군가 그를 대신해서 국민들에 사과해야 하는 일이나 없었으면.

김종철 기자 한겨레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