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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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우리는 노래를 부른다. 호황으로 주머니가 철철 넘쳐나건 불황으
로 주머니엔 담배꽁초만 남았어도 우리는 목청껏 노래하도록 그렇게 배워
왔다. 삭풍이 직장가를 휩쓸고 가계가 휘청거리는 지금도 장소만 달리한
어디에선가 우리는 노래를 부른다. 노래는 깊고 얕음을 떠나 어떤 식으로
든 우리의 희노애락과 시대를 담고있기 때문이다.
남의 곡을 빌려 노랫말만 바꿔 부르던 시절이 있었다. 물론 처음에는 외
국 곡이 주가 됐다. 그러다 보니 “키스 많이 해주세요”(Kiss me much)
란 뜻을 담은 ‘베사메무초’가 사람 이름으로 오해받는 일도 있었다. 국
내 곡에 가사를 바꿔 부르던, 이른바 ‘노가바’의 시대도 있었다. 가슴
속에 하고 싶은 말이 팔팔 끓었지만 그것을 담을 그릇이 마땅찮던 시절의
산물이다. 그것이 힘이 되어 노래를 만들게 했다. 설레는 사랑의 기쁨이
든,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야 하는 슬픔이든, 눈물나는 타향살이, 먼저
가신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 혹은 세상을 향한 한탄을 담았든, 노래는 그
렇게 우리 삶의 일부였다. 노래는 어떤 위대한 시보다 더 빨리, 그리고
오랫동안 사람들을 웃기고 울렸다. 이 풍진 'IMF신탁통치시대'를 맞아 우
리의 밥그릇이 언제 어떻게 정리될 지 몰라도, 우리의 끝낼 수 없는 망년
회는 또다시 열릴 것이고, <황성옛터>든 <광야에서>든 아니면 <한번만 안
아주세요>이든 목젖이 붓도록 노래하며 슬퍼하고, 슬퍼하며 울분을 토로
할 것이다. <한겨레21>이 해밑을 맞아 노랫말에 담겨진 세상의 변화를 뒤
볼아보았다. 편집자
노래는 결코 지은이나 가수의 것이 아니다. 그것을 즐겨 부르는 사람들의 것이다. 노래는 작가의 뜻과는 달리 대중의 마음속에서 얼마든지 다른 감 흥을 불러일으키고, 다르게 해석되기도 하는 까닭이다. 지난 29년에 나온 <황성옛터>는 일제에 빼앗긴 조선왕조의 수도 서울이 아니라 폐허가 돼버 린 고려왕조의 수도 개성을 묘사한 노래지만, 사람들은 그 노래로 나라잃 은 설움을 나눠가졌다. 오랫동안 우리 국민들이 가장 좋아하는 노래로 꼽 던 <눈물젖은 두만강>은 36년 일제치하에서 나왔지만, “그리운 내님이여 언제나 오려나”를 부르며 눈물지은 사람은 오히려 6·25 전쟁 이후에 크 게 늘어났다. 시대의 바뀜에 따라 사람들의 마음에 그 노랫말은 분단의 아픔으로 와닿았던 것이다.
상처와 슬픔의 50년대 가사들
노랫말이나 노래제목이 애초에는 뜻하지 않았던 내용으로 오해받거나 연 상작용을 불러일으킨 사례는 참으로 많았다. 59년에 나온 영화의 주제가 <과거를 묻지 마세요>는 자유당에 대한 정치풍자곡으로 더 유명해졌다. “거짓말이야, 사랑도 거짓말 울음도 거짓말”이라는 노랫말을 담은 <거 짓말이야>는 74년 당시 박정희 정권의 미래에 대한 화려한 약속을 풍자하 는 노래로 사람들에게 들렸다. “사랑하기 때문에 미워한다는 앞뒤 틀린 너의 그 말이 아리송해.” 79년 말에 나온 <아리송해>는 연인사이의 갈등 을 노래한 것인데, 당시의 아리송한 정국을 묘사한 노래로 사람들에게는 들렸다. 노래는 그렇게 사람들과 어울려 늙어가고, 또 조용히 무대 뒤편 으로 사라져 간다.
해방 뒤 처음으로 나온 우리 가요는 미군이 서울에 들어올 때 부르기 위 해 가요계 인사들이 함께 만든 <사대문을 열어라>로 기록되고 있다. “사 대문을 열어라, 인경을 쳐라. 삼천리 곳곳마다 물결치는 이 기쁨. 민족의 꽃은 다시 피었네….” 그러나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으므로 이 노래는 널 리 불리지 못했다. 대신 곧이어 38선이 가로막히면서 나온 노래 <가거라 삼팔선>이 그뒤 50년 넘게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다.
50년대에 사람들이 불렀던 노랫말엔 전쟁의 상처가 그대로 드러나 있다.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찬 흥남부두에 목을 놓아 불러봤”던, 그러나 여전히 “길을 잃고 헤매”는 금순이(<굳세어라 금순아>)는 지금도 때만 되면 이산가족들을 눈물나게 한다. 결국 분단이 고착화되면서 사람들은 “고향이 그리워도 못가는 신세”를 한탄하며 지금도 “꿈에 본 내고향이 마냥 그리워(<꿈에 본 내고향>)”라고 눈물짓는다. 전쟁은 그 뒤로도 상 처로 남아 “철사줄로 두손 꽁꽁 묶인 채로 (님이) 끌려가신” <단장의 미아리 고개>(56년)를 노래하게 했다. 이 밖에도 영화 <남과 북>의 주제 가 <누가 이사람을 모르시나요>(65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 나 그리웠던 30년 세월”을 노래한 <잃어버린 30년>(83년)으로 분단의 노 래는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전쟁중에도 사랑은 꽃피는 법. “한많은 피 난살이 설움도 많아 그래도 잊지못할 판잣집이여, 경상도 사투리의 아가 씨가 슬피우는” <이별의 부산정거장>(53년)도 그 시절의 한 풍경화다.
애국가처럼 부른 <아침이슬>
(사진/김민기 )
5·16 군사쿠데타로 막을 올린 60년대의 노랫말엔 시대의 아픈 흔적이 그 다지 배어 있지 않다. 대신 사랑의 노래들이 점차 전면에 등장하기 시작 한다. 첫눈에 반한 마음을 경쾌하게 표현하는 노래가 본격적으로 싹튼 것 도 그 무렵이다. “노란 샤쓰입은 말없는 그 사나이, 그이가 나는 좋아 어쩐지 맘에 들어.”(<노란 샤쓰 입은 사나이>(61년) 이 노래는 훗날 “ 열두시 통근길에 대머리 총각, 오늘도 만나려나 기다려지네”라는 <대머 리 총각>으로 맥을 이어갔다. 69년엔 “사랑해 당신을 정말로 사랑해”로 시작되는 <사랑해>가 나와 불멸의 곡으로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사랑은 역시 기쁨보다 아픔이다. “찬바람이 싸늘하게 옷깃을 스치면 따스하던 너의 두 뺨이 몹시도 그립구나.… 사랑하는 이 마음을 어찌하오 어찌하오 너와 나의 사람의 꿈 낙엽따라 가버렸으니”라고 이별의 아픔을 담은 <낙 엽따라 가버린 사랑>이나 남진의 <가슴 아프게>는 65년에 나왔다.
66년 월남파병이 시작되면서 <맹호는 간다> 따위의 군가풍 노래가 다시 나왔지만, 그 노래들은 오래 남지 못했다. 그 시절은 어쩌면 <안개>에 갇 힌 시대였는지도 모른다. “나홀로 걸어가는 안개만이 자욱한 이 거리. 그 언젠가는 다정했던 그대의 그림자 하나. 생각하면 무엇하나 지나간 추 억. 그래도 애타게 그리는 마음. 아 그 사람은 어디로 갔을까. 안개 속에 외로이 하염없이 나는 간다.” 김승옥의 소설 <무진기행>을 원작으로 한 영화의 주제가였던 이 노래는 67년 대선과 총선의 부정시비, 물가폭등, 가뭄 등으로 얼룩진 당시의 시대상을 떠오르게 한다.
70년대는 새마을운동과 함께 시작됐다. “잘 살아보세, 우리도 한번 잘 살아 보세(<잘살아보세>)”라는 노래가 날마다 거리 곳곳에 울려퍼졌다. 사람들은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우리 님과 한평생 살고싶”은 <님과 함께>(72년) 꿈을 꾸었다. 그 무렵 <쨍하고 해 뜰날>(76년)을 기대하며 서울로 올라간 젊은이들도 많았다. “꿈을 안고 왔단다. 내가 왔단다. 슬픔도 괴로움도 모두모두 비켜라. 안 되는 일 없 단다 노력하면은. 쨍 하고 해뜰날 돌아온단다.” 어떤 이들에게는 희망을 주던 이 노래도 대학가에서는 “꽝 하고 터질날”로 바뀌어 불렸다.
젊은이들은 “술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춰봐도 보이는 것 하나 가득 슬픔 뿐인 걸. 무엇을 할 것인가 둘러보아도 보이는 건 모두가 돌아앉았네<고 래사냥>(74년)”라며 우울한 시대에 “자 떠나자”고 소리쳐보기도 했다. “한낮의 찌는 더위는 나의 시련일지라. 나 이제 가노라 저 거친 광야에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라며 결연한 저항의 의지를 새긴 < 아침이슬>(75년)은 젊은이들의 모임에서 마치 애국가처럼 불렸다. 탄압이 거세져도 “가는 세월 그 누구가 잡을 수가 있나요. 흘러가는 시냇물을 막을 수가 있나요.… 산천초목 다 바뀌어도 이 내몸이 흙이 돼도 내 마음 은 영원하리 <가는 세월>(77년)”라고 노래하기도 했다. 그러나 어둠의 시대는 쉽게 끝나지 않았고, <난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77년)라고 스스 로를 한탄하거나 “다 그런 거지, 그러길래 미안 미안해 <다 그런 거지>( 78년)”라며 자포자기하는 사람들도 나왔다.
노가바, 민중가요로 이어지다
중동특수로 외국 건설현장에 나간 사람들이 많았던 시대상황을 반영하는 노래도 스쳐지나갔다. “아빠가 떠나신 지 사계절이 갔는데 낯선 곳 타국 에서 얼마나 땀 흘리세요. 오늘도 보고 파서 가족사진 옆에 놓고 철이 공 부 시키면서 당신만을 그립니다. 염려마세요, 건강하세요 당신만을 사랑 하니까.”<타국에 계신 아빠에게>(79년) 이 노래가 인기를 끌면서, 바람 난 유부녀들이 즐겨찾던 카바레가 장사를 죽쒔다는 얘기까지 나올 정도였 다. “비가 오면 생각나는 그사람. 언제나 말이 없던 그사람. 사랑의 괴 로움을 몰래 감추고 떠난 사람 못잊어서 울던 그사람” 그저 사랑이야기 일 뿐인 이 노래는 가수가 10·26사건 현장에 있었다는 사실 때문에 “그 사람=박정희”라는 불멸의 이미지를 남겼다.
“동지들 모여서 함께 나가자. 무등산 정기가 우리에게 있다. 무엇이 두 려우랴….”<광주출정가>(80년) 뼛속 깊이 사무치는 5월의 광주가 변혁의 깃발로 다시 솟아나는 데는 실로 오랜 세월이 걸렸다. 사람들은 슬픈 사 랑을 노래하면서 슬픈 시대를 견뎠다. “사랑인 줄은 알았지만 헤어질 줄 몰랐어요. 나 이렇게 슬픈 노래를 간직할 줄 몰랐어요.”(<슬픈 계절에 우리 만나요>(80년) “사랑의 기로에 서서 슬픔을 갖지 말아요. 뒤돌아 아쉬움을 남기면 마음만 괴로우니까.”<멍에>(83년) 그래도 젊은이들은 “텅빈 내 가슴에 재만 남았네, 불씨야 다시 피어라 <불씨>(82년)”라고 노래하기를 그치지 않았다. 그러나 80년대의 대중가요시장은 <돌아와요 부산항에>(82년)를 시작으로 끝없이 히트곡을 내놓은 조용필의 시대였다.
(사진/한국의 노동현실을 노래하는 노래패 꽃다지 )
정부는 건전가요를 육성한다는 명목 아래 국민들에게 “하늘엔 조각구름
떠 있고 강물엔 유람선이 떠 있고, 저마다 누려야할 행복이 언제나 자유
로운 곳 <아, 대한민국>(83년)”을 노래하게 했다. 경쾌한 리듬과 84년 L
A올림픽 분위기에 편승해 인기를 끈 이 노래도 대학가에서는 노랫말이 완
전히 바뀌어 불렸고, 대중가요의 노랫가사를 바꿔부르는 것이 일상화된
것도 이때부터다. “사장, 오늘은 월급날. 사장 석달째 밀렸지. 난 그래
도 애타게 월급을 기다리는데….”(
개사곡은 본격적인 민중가요를 낳았다. “빨간꽃 노란꽃 꽃밭 가득 피어
도 하얀나비 꽃나비 담장 위에 날아도 …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의
<사계>나 “민중의 넋이 주인되는 참세상 자유 위하여 시퍼렇게 쑥물 들
어도 강물 저어가리라”던 <솔아 푸르른 솔아>(87년)는 지금도 널리 불리
고 있다. 87년의 6·10 민주화운동과 노동자들의 대투쟁은 “단결 투쟁
우리의 무기 너와 나 … 철의 노동자(<철의 노동자>)”와 같은 노동자들
의 노래를 대거 만들어내기도 했다. 그러나 직선제 개헌에도 정권교체를
끝내 이뤄내지 못한 절망감을 사람들은 “울고 싶어라, 사랑은 가고 친구
도 가고 모두다. 왜 가야만 하니 <울고 싶어라>(88년)”라고 노래할 수밖
에 없었다. 한켠에서는 여전히 <투쟁>의 불길이 계속 타올랐지만 “청바
지가 잘 어울리는 여자, 밥을 많이 먹어도 배 안 나오는 여자… <희망사
항>(90년)”를 갈구하는 청소년들이 노래시장을 완전히 점령해 들어간 것
은 90년대의 특징이라 할 만하다.
노태우 정권이 저물면서 사회적 빈정거림이 하나의 현상이 됐다. “나도
나를 모르는데 넌들 나를 알겠느냐” “산다는 건 좋은 거지 수지맞는 장
사잖소 빈 손으로 왔다가 옷한벌을 얻었잖소…<타타타>(92년)”란 노래로
사람들은 세태를 비꼬고 자신을 위로했다. 이른바 문민정부의 출범과 함
께 시작된 사정국면에서 끝없이 터져나온 권력층의 각종 비리는 사람들에
게 체념의 탄식을 뿜어내게 만들었다. “세상은 요지경. 요지경 속이다.
잘난 사람 잘난 대로 살고 못난 사람 못난 대로 산다. 야야, 야들아 내말
좀 들어라. 여기도 짜가 저기도 짜가 짜가가 판친다….”<세상은 요지경>
(94년) 청소년들의 우상으로 떠오른 서태지는 “정직한 사람들의 시대는
갔어”라고 <시대유감>에서 노래하려다 당국의 가위질에 걸려들기도 했다
.
그러나 이제 나이가 들어가는 세대들은 “청소년들이 즐기는 뜻도 모를
노래만 쏟아져나올 뿐, 어른들이 즐길 만한 노래가 없다”고 한탄한다.
사랑타령만 늘어갈 뿐, 속깊은 삶의 희로애락을 그린, 심금을 울리는 노
래가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또 노래가사를 바꿔불러야 할까. 극심한
불황 속에 이미 거리로 내쫓긴 사람들, 아무 힘없이 거리로 내몰릴 차례
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에게 올 연말은 그 어느 때보다 우울하다. 그들
의 슬픔, 울분을 어루만져줄 노래 어디 없는가.
정남구 기자
© 한겨레신문사 1997년12월18일 제 187호
불황의 우울함을 어루만져줄 노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