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검으나 땅에 희나 백성' '내 안의 남자'

'검으나 땅에 희나 백성'

배용균 감독(46)은 수십, 수백명의 사람들이 자본의 밑에 모여 노예처럼 일해 탄생시키는 영화작법을 단칼에 날려버린 신화다. 효성가톨릭대 서양 화과 교수로 일하며 자신의 30대를 몽땅 쏟아부은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을 들고 그가 독립투사처럼 한국영화계에 나타났던 것은 89년이 었다. 그것도 로카르노영화제 최우수작품상 수상이라는 국외에서의 낭보 를 들고. 그는 각본, 연출, 제작, 촬영, 조명, 미술, 편집 등 영화의 모 든 과정을 홀로 하는 별종 감독으로 한국영화사에 한 획을 그었다.

<검으나 땅에 희나 백성>은 그의 두번째 작품. 역시 6년의 세월을 바쳤고 , 동숭시네마텍에서 일반 관객들과 만나기까지 다시 2년의 시간이 흘렀다 . 그의 고집스런 신화를 확인할 수 있는 흔치 않는 기회인 셈.

계엄이 떨어진 어둡고 쓸쓸한 도시 혜천에 해외입양아로 40여년을 떠나있 었던 한 남자가 돌아온다. 80년 광주를 연상시키는 죽음과 적막의 도시에 서 이 사내는 과거를 찾아 헤맨다. 우리의 근·현대사를 몸에 새긴듯 자 신의 이름과 고향을 잃어버린 그는 현실과 비현실을 오가며 자신의 정체 성을 찾아 나아간다.

<달마…>가 동양화라면, <검으나…>는 유화. “예술작업은 결국 홀로 치 러야 하는 것이고, 예술에 대한 사랑이 나를 움직인다”고 말하는 희귀한 감독의 분신같은 영화다.

정재숙 기자

내 안의 남자

“내 이름은 마리. 내 직업은 매춘부.” 다리를 꼬고 앉은 마리(야누크 그랑베르)는 정면을 바라보며 도발적으로 말한다. “몸 파는 게 재미있어 ?” “물론. 난 남자 좋아해. 수입도 좋고.” 이 정도면 프로근성이 있는 매춘부라 할 만하다.

<내 안의 남자>는 모든 매춘부들의 얘기다. 블리에 감독의 말을 빌리면 “뾰족한 하이힐, 그 위에 위태롭게 존재하는 그들의 천국에 대한 얘기” 다. 온몸과 마음으로 남자를 사랑하는, 이미 시들어버린 할아버지들에게 까지 생명의 사랑을 나누어주는 여자. 어느날, 마리는 자신을 성적으로 완벽하게 만족시켜주는 행려 자노(제라르 랑방)를 만나게 되고, 자노에게 포주가 돼줄 것을 부탁한다. 육체적 사랑에서 출발한 포주와 창녀의 연은 권력관계로 변질되고, 마리는 자노에게, 남성에게 실망한다. 매춘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마리는 평범한 남자의 아내가 되고 아이를 낳는다. 그러 나 돈이 떨어진다. 다시 거리로 나서는 마리. 함께 자노를 사랑했던 사라 와 해후하는 마리의 모습에서 영화는 갑자기 뚝 끝난다. 사랑과 소유에 대한 냉소적인 이야기? 나머지는 관객들의 몫이다.

감독은 마리처럼 유쾌하게 말한다. “인생 그 자체가 모순 투성이인 것. 영화라고 해서 달라야 할 필요가 있는가.” “심각하게 보지 말라. 영화 를 만든다는 건 내게 언제나 웃기는 장난과도 같다.”

진한 에로티시즘의 향내를 풍기면서, 무정부주의적이고, 후기자본주의를 조롱하는, ‘이상한’ 프랑스영화다.

정재숙 기자 한겨레21

베르트랑 블리에 감독·야누크 그랑베르, 제라르 랑방 주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