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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주의자들'/한국의 ‘보수’, 그들을 검증한다

참새 열 마리가 전깃줄에 앉아 있을 때 포수가 맨 왼쪽 참새에게 물었다. “너는 왜 맨 왼쪽에 있니?” 참새가 대답했다. “아녜요. 저는 전깃줄로 보면 가운데 있을 뿐이에요.” 그 참새는 포수의 총에 맞았다.

참새에게는 오른날개(우익)와 왼날개(좌익)가 반드시 있어야 하지만 사람 은 그 서 있는 자리에 따라 좌익이니 우익이니 중도니 하는 수긍하기 힘 든 표찰을 달게 된다. 최악의 경우 빨갱이나 반동, 혹은 회색으로 몰려 감옥에 가기도 하고 탄압을 받기도 한다.

언젠가 한 전직 장관(김용갑)은 “이 땅의 우익은 죽었는가”라며 개탄했 다. 과연 그때 우익은 죽어 있었던 것일까? 그는 자신이 서있는 오른쪽 극단에 오른쪽만을 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이렇듯 이념의 스펙트럼은 상대적이다. 그러나 반드시 상대성을 띠는 것은 아니다. 인간에 대한 억 압과 착취를 제거하고 민주주의를 확대하며 환경을 보호하는 등의 일은 상대성과 관계없이 진보로 평가된다.

국민대 철학과 최종욱 교수 등 10명이 함께 지은 <보수주의자들>(삼인 펴 냄)은 한국에서 ‘보수주의자’라고 부르는 정치·경제·문화인들에 대한 ‘사상검증’ 보고서다. 여기서는 보수주의자로 묶이는 사람들을 ‘단순 히’ 보수주의자로 불러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보수주의에도 다양한 스 펙트럼이 있으며, 때로는 보수주의자가 아닌 사람들이 보수주의자의 탈을 쓰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정통보수나 보수주의의 원조임을 강조하는 김종필은 ‘냉전주의 자’, 박정희 살리기에 눈이 벌건 조갑제나 이인화는 ‘복고주의자’, 진 정한 보수주의자로 자처하는 노재봉은 ‘마키아벨리스트’로 불러 마땅하 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가장 재미있는 대목은 어떤 사람들에게 늘 “빨갱이가 아닌가 ”라고 의심받는 김대중이 사실은 자유주의적 성향의 ‘전형적인 보수주 의자’에 지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지은이들이 너무 왼쪽에 서있는 까 닭일까? 아니면 우리 사회가 너무 오른쪽으로 치우친 까닭일까? 이밖에 이 책에서는 이회창 이건희 공병호 복거일 김문수 등의 사상이 검증된다.

남아있는 아홉마리 참새 중 맨 왼쪽에 앉아 있는 참새에게 포수가 다시 물었다. “너는 아까 그 참새가 총맞는 것 보고도 맨 왼쪽에 계속 앉아 있니?” 그 참새가 대답했다. “저는 아까는 맨 오른쪽에 있던 참새예요. 다른 참새들이 다 제 오른쪽으로 와서 이렇게 됐을 뿐이에요.” 그러나 그 참새도 포수의 총에 맞았다.

김규원 기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12월18일 제 18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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