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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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용/ 영화평론가
올 부천국제영화제에서는 많은 호러영화들이 선보였다. 그 층위는 조금씩 다르지만, 관객들은 ‘공포의 즐거움’을 맛보며 극장문을 나섰다. 그런 데 왜 ‘호러’는 일반극장에서는 큰 호응이 없는 것일까.
최근 할리우드영화들은 70년대 미국영화의 주류였던, 호러의 특성들을 많 이 융합시킨다. SF와 호러가 결합한 <에일리언> 시리즈나 <스타쉽 트루퍼 스>와 같은 영화들이 대표적인 예. 그러나 호러영화들은 대부분 B급영화 수준으로 만들어진다. 다시 말해, 할리우드 대작처럼 막대한 자본을 투자 해서 만들기보다 저예산과 아이디어로 승부를 거는 영화들이 대부분이다. 국내서 잠시 개봉했던 <어글리>나 <떼시스> 등이 그런 류의 영화들.
문제는 여기서 출발한다. 이런 영화들은 대부분 관객과의 게임을 즐긴다. 다시 말해 호러영화는 ‘관습적인’ 장르 영화가 아니다. 먼저 특정 관객 들의 선택이 앞서고, 그들과의 대화로 영화를 시작한다. 이들은 기존 영 화들의 관습을 의도적으로 모방하거나 비틀어버림으로써, 새로운 가치를 만들고 나아가 우화적인 현실들을 반영한다. 60, 70년대의 미국 분위기를 반영한 조지 로메로의 <좀비> 시리즈가 대표적인 예.
이렇게 호러영화는 상당 부분을 관객에게 할애해 두었고, 다른 장르의 영 화들보다 훨씬 더 관객에게 능동적인 참여형태를 요구한다. 과하게 말하 자면, 호러 영화의 수용은 그 나라 영화 수용 수준의 척도가 될 수 있다. 또한 영화라는 매체가 얼마나 보편적이고 다양하게 수용되는가를 보여주 는 실례가 된다. 우리의 경우 수입은 되었으되 심의를 받지 못해 창고에 쌓아둔 호러영화들이 수두룩하다.
그점에서 영화 <킹덤>의 상영은 몇가지 의의를 지닌다. 4시간이 넘는 이 대작은 하루에 두번밖에 상영하지 못한다. 그것은 상영횟수를 중시했던 기존 영화관들의 고정관념을 뒤엎는 것이다. 작지만 이러한 문화생산구조 의 변화 속에서, 더군다나 호러영화가 상영된다는 것은 더욱 모험적인 일 이다. 약 4시간30분의 상영시간은 분명 관객의 선택에 의한 것이다.
<킹덤>은 덴마크의 스타일리스트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이 만든 TV용 영화 를 극장용으로 바꾼 것. TV용이어선지 극의 전개가 친절하며, 호러의 강 도 역시 온건하다. 그렇다고 재미가 덜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주목해야 할 것은 잔인한 장면이 공포를 주는 것이 아니라 카메라 기술이나 편집 등을 통해 더욱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낸다는 것을 확인하는 일. 의사 의 실수로 억울하게 죽은 환자의 영령들이 병원 안을 떠돌며, 과거와 현 재의 고리를 잇는다. 굳이 장르를 말하자면 순수 의학 스릴러.
홍보쪽에서 <킹덤>을 상영하면서 계획했던 것 중의 하나가 심야상영이다. 그것은 영화의 제 맛을 느끼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풍속영업의 규제에 관한 법률시행규칙’에 따라 자정 이후의 심야영업 은 불법! 도대체 우리에게는 언제 영화의 킹덤(왕국)이 도래할는지. 더욱 중요한 것은 뉴질랜드가 호러로, 오우삼이 필름 누아르로 할리우드에 진 출했듯, 한국의 특성에 닿는 영화문법들을 찾고 개발하는 일이다. 정말이 지, 우리의 도깨비들과 처녀귀신들은 이밤 무엇을 하고 있을까.
© 한겨레신문사 1997년12월18일 제 18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