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사람과 책

“성은 여성, 당신을 위한 것”

(사진/여성의 성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전여옥씨와 임정애씨. 두 사람은 여성들이 성에 적극적일 것을 권한다.)

전여옥(39·리마주 방송 프로덕션 대표)씨와 임정애(49·임정애 산부인과 원장)씨는 10년 전쯤 낙태 문제를 놓고 방송기자와 취재원으로 만났다. 대학 선후배란 인연에, 전문직 여성으로서 서로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두 사람은 힘들 때 하소연을 주고받는 인생동지로 지내왔다.

2년 전, 전씨가 늦은 나이에 임산부가 되었을 때, 임 원장은 기꺼이 그의 주치의가 되었다. 유산 경험이 있는 데다 일 욕심이 많은 전씨가 탈없이 아기를 낳을 수 있을지 두 사람은 기도하는 심정이었다.

2백80일 뒤, 두 사람은 새 생명 둘을 세상에 내놓았다. 쌍둥이였느냐고? 아니다. 전씨는 건강한 아들 이윤형의 엄마가 됐고, 전씨와 임씨는 뜨끈 뜨끈한 책 한권의 공동 저자가 됐다.

<여성이여, 느껴라 탐험하라>(푸른숲 펴냄)는 ‘성’에 관해 말하기를 꺼 리는 이 사회에 던지는 두 여자의 도발장이다. 자신의 몸에 관심이 많았 던 한 여성이 일기를 공개하면서까지 성을 얘기하자고 나서고, 산부인과 원장이 여성이 피임의 주체가 되자고 강조하는 데는 까닭이 있다.

우리 사회가 성에 대해 너무 오래 가림막을 쳐왔기 때문이다. 유교적 가 부장제 사회가 장기간 성에 금기의 족쇄를 채워왔고 남성중심의 사회가 그동안 성에 왜곡과 수치의 벽을 두텁게 쌓아왔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성 에 대해 이중적인 한국사회의 전근대성을 이제는 깨부술 때가 되었다는 두 여자의 의기투합인 셈이다.

전씨는 자신의 정치·사회학적 경험에 비춰 말한다. “순결이니 처녀니 하는 말들은 남성들이 만든 말이고 남성들을 위한 말이다… 처녀막은 잡 채의 고명과도 같다… 남자가 아직 드시지 않았다는 표시… 결혼할 때까 지 처녀를 잘 보존하라는 말은 절대로 하지 않겠다. 대신 이 세상의 모든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강인한 의지와 피임법을 가르쳐주겠다.”

임씨는 자신의 병리 해부학적 경험을 통해 말한다. “만일 성교 후에 임 신이 걱정된다면 24시간 안에 산부인과를 찾아야 한다. 사후피임제를 주 사 맞거나 혹은 약을 복용해야 한다… 여성이 섹스를 할 때 성교통을 느 낀다면 바로 지금 섹스를 하는 상대와 문제가 있다.”

두 사람이 입을 모아 중요하다고 외치는 사실은 “성이 바로 당신을 위한 것”이란 점이다. 또하나, “모성은 신과 같은 존재”라는 점이다. 전씨 가 쓴 임신부터 출산까지의 일기와 그 사이사이에 들어 있는 임씨의 진료 차트는 이 책에서 가장 길고 사실적인 서술로 여성의 성과 출산의 위대함 을 말한다. 제왕절개로 아이를 낳은 전씨가 “제왕절개는 새로운 생명을 출산하기 위한 평화 끝에 얻어진 상처이고 어떤 잔인함도 어떤 폭력도 깃 들이지 않은 ‘아름다운 상처’였다”고 말할 때, 모든 여성들은 고개를 끄덕거리게 된다.

<일본은 없다> <여성이여 테러리스트가 되라>를 세상에 내놓고 독자들에 대한 책임감을 더 느끼게 됐다는 전여옥씨는 이 책이 전문가와 함께 썼기 때문에 “한마디라도 틀린 말이 없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정재숙 기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12월18일 제 18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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