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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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금융위기에 항의하는 타이 국민들의 시위. 성급한 자본시장개방이 금융위기라는 파국을 몰고 왔다)
타이가 금융위기 이후의 뒷설거지에 전전긍긍하고 있다.
금융위기와 부패스캔들 등으로 물러난 차왈릿 용차이윳 총리를 승계한 추 안 릭파이 총리 내각은 지난 11월 금융위기와 관련한 책임소재에 관해 조 사방침을 밝혔다. 피쳇 찬 파르트쿨 부총리는 중앙은행 고위 정책당국자 들이 금융위기 초동단계에 조기경보를 발동하지 못해 타격이 컸으며 따라 서 상당부분 책임을 져야 한다는 뜻을 밝혔다. 파르트쿨 부총리의 발언 뒤 타린 니마나헤민다 타이 재무장관은 11월26일 미증유의 금융위기와 관 련해 중앙은행 고위간부들의 책임소재를 가릴 방침이라고 밝혔다.
중앙은행 정책적 과오 전후사정 조사
타린 장관은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부실 금융기관 처리과정을 얘기하며 중앙은행 간부들이 이번 사태를 악화시킨 책임이 있는지 여부에 대해서도 조사를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중앙은행의 정책적 과오를 일으 킨 전후사정에 대해 조사할 생각”이라며 “실수가 발견된다면 그에 대한 책임이 뒤따를 것”이라고 말했다.
중앙은행에 대한 조사는 일부 부실 금융기관들에 4천4백억바트(약 111억 달러)를 대출해 외환고갈을 불러일으키게 된 내막과 지난 95년에 발생한 대규모 은행 부정사건에 초점이 맞춰질 것으로 <방콕 포스트> 등은 보도 했다. 그러나 이 조사가 두부 자르듯이 명쾌하게 책임소재를 밝혀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타이 금융위기가 전반적으로 잘못된 제도와 실정에 바 탕한 것이고, 문제의 핵심인 부실대출 역시 한곳의 명백한 부정이라기보 다는 정실이 판치고 감독이 미비한 금융체계 전반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를 반영하듯 타린 장관 역시 차야왓 위붓사와디 중앙은행 총재 조사와 관련해 분명한 언급을 피한 채 “현재로서는 그를 경질할 생각이 없다고 봐도 좋다”고만 답변했다.
타이 금융위기의 책임소재를 가리기 위해서는 우선 이번 사태가 어떻게 전개됐는가를 살피는 것이 필요하다. 타이 금융위기는 멀게는 수출경쟁력 의 약화에서 출발해 능력을 뛰어넘는 성급한 자본금융시장의 개방으로 촉 발됐다. 88년부터 시작된 타이의 경제붐은 국내의 임금상승과 경쟁국의 대두로 94년부터 타격을 받기 시작했고 95년부터는 외자도입 필요에 의한 무리한 바트화 고평가로 국제경쟁력을 급속히 잃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무역수지 적자가 늘기 시작하고 이를 메우기 위해 해외로부터 단기 달러 자금을 대량으로 유입해 대외채무잔고는 93∼96년 사이에 1.6배로 증가했 다.
이런 와중에서 타이는 지난 92년부터 금융자유화 정책을 본격적으로 추진 해 문제의 ‘파이낸스 컴퍼니’(금융회사) 업무범위를 확대하는 한편 외 국은행들의 신규차입도 허용했다. 특히 93년에는 뉴욕이나 런던에서와 같 은 국내시장의 규제를 받지 않는 오프쇼어시장(역외시장)을 타이에 개설 하기까지 했다. 당초 인도지나 지역 전체를 바트경제권으로 만들기 위한 야심작이었던 이 오프쇼어시장으로 흘러들어온 돈은 당초의 예상과는 달 리 인근국가들로 흘러가지 않고 모두 국내의 비생산적 분야로 빨려 들어 갔다.
파이낸스 컴퍼니의 융자잔고를 보면 확실해진다. 96년 말 현재 이 회사들 의 부동산에 대한 융자는 3천6백30억바트로 24%이다. 또 부동산개발회사 들에 대한 융자잔고의 총액은 90년 약 4백48억바트에서 96년 2천5백37억 바트로 폭증했다. 시중의 일반은행들 역시 자동차론 등 소비대출이 91년 2천21억바트로부터 96년 6천1백26억바트(융자잔고의 13%)로 3배 이상 증 가했다. 이런 비생산적 분야로의 대출은 95년을 기점으로 타이에서 부동 산붐이 꺼지며 모두 부실채권으로 탈바꿈해 금융위기의 직접적 원인이 된 다.
사실 타이 금융위기의 촉발이 된 바트화에 대한 투매공세는 이미 95년부 터 시작됐다. 95년 1월 멕시코 통화위기가 발생한 뒤 바트화에 대한 투매 는 시작됐고 이후에도 간헐적인 투매공세가 잇따랐다. 국제통화기금(IMF) 은 96년 6월 환율제도를 좀더 유연하게 운영할 것을 권고했으나 타이 정 부는 이를 무시했다. 아마 금융위기에 대한 책임을 묻는다면 이 대목부터 일 것이다. 통화기금의 권고가 있은 뒤 7월 바트화에 대한 투기는 본격화 되기 시작해 다음해 2월과 5월 대규모 통화투기가 일어났다.
타이 중앙은행은 이에 대응해 직접적인 시장개입과 스와프개입뿐만 아니 라 금리인상(2월), 비거주자에 대한 바트매도 금지 등 자본이동규제 도입 (5월) 등을 실시하며 환율을 달러당 25∼26바트 선으로 유지하려 했다. 그러나 6월 하순 들어 대규모 바트투매 공세 앞에 타이 당국은 더이상 저 항하지 못하고 변동환율제로 이행해 본격적인 통화위기가 시작됐다.
각종 경고에도 타이 관계자들 낙관으로 일관
타이 당국의 조사도 이 대목에 집중될 것같다. 즉 2월과 6월에 걸쳐 몇차 례 통화투매가 일어나고 또 이에 대해 대응책을 세우는 등 사태를 파악한 것 같으면서도 왜 위기에 대한 본격적인 경보를 내리지 않았냐는 것이다. 당시 타이의 관계자 역시 한국의 관료들과 마찬가지로 단순한 시장상황이 라며 금융파탄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밝혀진 것에 따르면 타이의 외환준비고는 당시 표면적으로는 3백억 달러를 초과하고 있었으나 스와프개입에 의해 인도된 채무가 2백34억달러 에 달해 실질적 외화준비고는 약 70억달러로 감소했다. 이런 외화고갈 상 태에서 본다면 타이와 한국의 금융위기 진행은 너무나도 비슷한 양태가 아닐 수 없다. 금융위기에 대한 타이의 조사가 우리에게도 관심을 주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정의길 기자/ 한겨레 국제부
© 한겨레신문사 1997년12월18일 제 18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