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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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26일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되기 직전에 각 언론사들이 일제히 발표한 여론조사에서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와 김대중 국민회의 후보가 32∼33%선 의 지지율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선두를 달렸다. 이인제 후보는 모든 조사 에서 20% 안팎의 지지율을 기록하면서 3위로 가라앉았다. 이때 두드러진 특징은 10월 말과 11월 초만 해도 10% 중반의 낮은 지지율을 기록하던 이 회창 후보가 큰폭의 상승세를 기록했다는 점이다.
10%가 토론회 보고 마음 바꿨다
공식 선거전 돌입 직전에 나타난 이러한 이회창 후보의 상승과 이인제 후 보의 하락세가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걸까. 또 김대중 후보의 지지율 정 체상태가 계속되고 있는 걸까. 공식 선거운동 돌입과 함께 여론조사 공표 가 금지된 탓에 정확하고 구체적인 판세의 흐름을 알기란 쉽지 않다. 그 러나 각 정당들과 여론조사기관은 판세를 예측하기 위해 주요 시점마다 계속 조사를 하고 있다. 물론 정당의 자체조사는 신뢰성이 약하고 여론조 사기관의 조사결과도 주요 수치만 구전으로 나돌아 정확한 판세 분석에는 어려움이 있다. 하지만 이들 각종 기관의 조사결과는 선거전 흐름을 살피 는 주요한 단서만큼은 제공하고 있다.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대체로 공식 선거운동 돌입 이후 현재까지의 판세를 순위에서는 변함이 없으나, 지지율 격차는 1, 2위가 다소 벌어진 반면 2, 3위는 다소 좁혀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즉, 선거운동 직전에 1∼3% 차이 를 보이던 김대중-이회창 후보의 지지율 차이가 3∼5% 정도로 벌어졌다는 것이다. 김대중 후보가 약간 오른 데 비해 이회창 후보는 상승세가 멈추 면서 오히려 약간 떨어지는 약보합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했다. 공식 선거전 돌입 직전에 실시된 일부 여론조사에서는 이회창 후보가 김 후보를 2∼3% 차이로 앞서기도 했다. 이 점을 감안할 때 이회창 후보의 상승세가 멈춘 것은 분명해 보인다. 또 이인제 후보는 선거운동 돌입 직 후 15∼7%까지 내려갔다가 최근 다시 지지율이 다소 반등세에 있다고 여 론조사 전문가들은 말한다.
이러한 흐름의 변화를 가져온 요인은 크게 두가지가 꼽힌다. 첫째는 12월 1일 이뤄진 제1차 텔레비전토론회이다. 1차 토론회에서 이회창 후보가 김 대중 후보와 이인제 후보의 협공에 시달리면서 경제파탄의 책임론에 휘말 린 데다 토론 내용에서도 다른 후보들보다 다소 뒤진 것으로 평가됐다. 특히 이인제 후보의 공격에 곧바로 반발하는 등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듯 한 태도가 감점으로 작용했다. 반면에 김대중 후보는 논리적이면서 차분 한 태도가, 이인제 후보는 단호하고 분명한 어조가 돋보였던 것으로 평가 됐다.
1차 토론회 직후 A여론조사기관이 실시한 조사에서 이회창 후보는 토론회 직전과 차이가 없었으며, 김대중 후보는 3%쯤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또 이인제 후보는 토론회 전에 비해 5%쯤 상승했다. 이미 지지자가 어느 정 도 정해진 상태이기 때문에 텔레비전토론회가 당장 판세를 좌우할 정도의 영향을 끼치는 것은 아니다. <동아일보>가 한길리서치에 의뢰해 실시한 조사(12.3)에서 ‘텔레비전토론회 이후에도 지지 후보를 바꾸지 않은 사 람’은 81.3%로 나타났으며, ‘바꿨거나 바꿀 의사가 있는 사람’은 10.4 %에 불과했다. 전체 유권자의 10% 정도가 토론회를 보고 마음을 바꿀 수 있다는 입장을 보인 셈이다. 그러나 이번 대선의 승패가 50만에서 1백만 표로 결판날 것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10% 이동은 승패의 결정적인 요인 이 될 수 있다. 7일 2차 토론회에 이어 14일의 3차 토론회에 3명의 후보 들이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IMF 여당 책임론’ 수도권에 먹혀든다
지지율 변화를 초래한 두번째 요인은 ‘IMF 태풍’이다. ‘경제신탁통치 ’ ‘경제주권상실’ ‘12·3 국치’ 등으로 표현되는 IMF 체제는 경제뿐 아니라 정치·사회 전반에 엄청난 파장을 낳고 있다. 경제대란에 밀려 차 기 대통령을 뽑는 대선전은 일반 국민들의 관심 밖으로 사라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선거전의 웬만한 논란이나 공방들은 언론에 명함도 내밀 지 못한 정도로 IMF 태풍이 선거판을 휩쓸고 있다.
IMF 태풍의 영향은 일단 이회창 후보에게는 다소 불리하게 작용하는 반면 , 김대중 후보에게는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12월5일 C 여론조사기관이 실시한 조사에서 이회창 후보의 지지율은 이 기관의 11월 27일 조사에 비해 약 4% 정도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김대중 후보는 반 대로 같은 정도가 상승했다. 유력한 여론조사기관이라는 평을 받고 있는 이 기관의 조사에서는 선두의 두 후보가 8일 만에 완전히 자리바꿈한 것 으로 나타난 것이다. 서울과 수도권, 충청에서 김대중 후보의 지지율이 올라간 만큼 이회창 후보의 이 지역 지지율이 내려갔다. 이 조사기관의 관계자는 “IMF 체제로 인한 정부 여당의 책임론이 수도권의 유권자들에 게 먹혀드는 것 같다”며 “현재의 경제문제가 일단은 김 후보에게 유리 한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기관의 두번에 걸친 조사에서 이인제 후보는 수치상으로는 별다른 변동을 보이지 않았다.
IMF 체제의 경제문제가 남은 선거전에 위와 같은 방향으로 작용할지 다른 방향으로 바뀔지는 아직 예측하기 어렵다. 정치권과 여론조사 전문가들의 견해도 각기 다르다. 한쪽에서는 “경제적인 파장이 워낙 큰 데다가 고용 불안 등 근로자들에게 직접 해당되는 문제가 많아 정부 여당 즉, 한나라 당의 책임문제가 계속 비화될 것이기 때문에 IMF 체제는 이회창 후보에게 불리한 요소로 작용할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다른 견해는 “현재는 국민들의 감정이 격분한 상태로 책임론이 우세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보 수층의 안정심리가 발동돼 이회창 후보가 불리하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DJ 최종 득표율 40%일 것”
어쨌든 현재의 판세는 김대중 후보가 오차범위 내이기는 하지만 1위를 달 리고 있으며, 이회창 후보는 상승세가 약간 처지기는 했지만 오차범위 안 팎에서 김 후보를 추격하고 있는 형국이다. 결국 앞으로 대선구도 전체의 판세는 이인제 후보의 지지도 상승폭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전문가 들은 이인제 후보의 지지율 20%를 기준으로 보고 있다. 이인제 후보의 지 지율이 20%를 넘게 되면 김대중 후보가 승세를 굳히며, 20% 이하가 되면 이회창 후보가 앞설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러한 계산은 김대중 후보 의 지지율에서 유추된다. 김 후보의 지지율이 조금씩 변동은 있지만 몇달 째 35% 안팎에서 정체돼 있기 때문이다. 유권자들의 지역적인 투표성향 등을 고려할 때 김 후보의 지지율이 확 높아지거나 떨어지는 등 ‘요동칠 ’ 확률은 적다는 판단이다. 어쨌거나 최종 투표율을 감안해 현재의 지지 율을 판별 분석해 볼 때 김 후보의 최종 득표율은 40% 정도라는 게 전문 가들의 일치된 견해다. 이회창 후보와 이인제 후보 지지표의 호환성을 감 안하면 현재 선두권에 있는 이회창 후보가 연말 대선에서 1위를 하느냐 마느냐는 결국 이인제 후보의 득표율에 달린 셈이다.
물론 이인제 후보가 계속 상승세를 타고 이회창 후보의 지지율이 하락해 2, 3위 순위가 다시 뒤집힐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전문가들의 의견은 흐름상 그럴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 . 이회창 후보가 일단 ‘여권의 중심’으로 자리잡았다는 것이다.
결국 김대중-이회창 후보간의 마지막 승패는 역설적이지만 이회창-이인제 두 후보간의 싸움 결과에 달려 있다고 하겠다. 영남권 특히 부산·경남과 충청권의 지지율 변화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두 지 역은 이회창 후보와 이인제 후보의 지지율이 공식 선거전까지 비슷하게 나온 데다가 두 사람 가운데 어느 한쪽으로 표가 몰릴 가능성이 있는 곳 이다. 부산·경남은 선거전 돌입 이후 이인제 후보의 지지율이 조금 떨어 지기는 했지만, 아직 33∼35%선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충청 권에서도 이회창-이인제 후보의 각축전은 아직 결말이 나지 않았다. 김 후보의 우세 속에 나머지 두 후보가 비슷한 수치로 각축하고 있다는 것이 다. 충남에서는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의 활동 탓인지 김대중 후보의 지 지율이 눈에 띄게 올라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일부 전문가들은 이인제 후보의 지지표 가운데 여당표 대부분 빠져나갔기 때문에 설사 이 인제 후보가 하락해도 그것이 이회창 후보의 상승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이인제 후보이거나 아니면 기권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국민신당 “이회창보단 김대중이 낫다”
이런 가운데 국민신당이 ‘홀로서기 전략’을 채택하면서 이회창 후보와 의 대치전선을 더욱 강화하고 있어 주목되고 있다. 특히 국민신당의 홀로 서기 전략은 이회창 후보의 아들 병역문제 등 약점을 캐고 경제파탄의 책 임을 제기하는 등 사실상 이회창 후보에게로 모두 집중되고 있다. 이회창 후보에게서 떨어지는 표는 이인제를 선택할 가능성이 크다는 당연한 분석 에 따른 것이긴 하다. 하지만 이보다 대선 이후 정계개편에 대비한 계산 때문으로 분석하는 시각도 많다. 김대중 후보가 당선되는 것이 이회창 후 보가 당선되는 것보다 대선 이후 독자적 입지를 확보하는데 유리하다는 것이다.
김종철 기자
© 한겨레신문사 1997년12월18일 제 18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