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역사속의 여성

디자이너 코코 샤넬

“잠잘 땐 샤넬 넘버 파이브를 입는다.”

영화배우 마릴린 먼로가 한 말이다. 향수를 즐기지 않는 사람도 아마 샤 넬 넘버 파이브는 알고 있을 게다. 그 유명한 향수를 만든 사람은 프랑스 디자이너 코코 샤넬이다. 샤넬라인이라는 고유명사를 낳은 것도 그다. 무 릎을 살짝 가리는 치마길이, 샤넬라인은 유행과 나이에 상관없이 누구에 게든 잘 어울리고 또 가장 아름답게 보이는 선이라고 코코 샤넬은 주장한 다. 너무 길고 촌스럽다고? 샤넬은 미니스커트를 가리켜 이렇게 말했다. “미니 스커트는 남성에게 종속된 여성의 모습을 상징한다.” 이 말에 동 의하든 동의하지 않든간에 무릎길이의 치마와 블라우스, 간편한 재킷으로 된 샤넬 수트는 현대 여성 정장의 고전으로 꼽힌다.

코코 샤넬의 본명은 가브리엘. 그는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여섯살 때 어머니를 여의고 고아원, 친척집, 수녀원을 떠돌며 자란 그는 매사에 ‘싫다’고만 답하는 반항아였다. 그러니 제대로 교육을 받지도 못했다. 그의 학교는 이모집의 다락방이었다. 다락방에 나뒹구는 신문 연재소설을 읽으며 그는 세상을 배우고 꿈을 키웠다.

26살 때, 샤넬은 파리로 갔다. 거기서 사업가 카펠을 만나 그의 도움을 받으며 디자이너의 꿈을 조금씩 실현해 간다. 카펠은 얼마 뒤 자동차 사 고로 사망하는데, 카펠이야말로 자신이 진심으로 사랑한 최초, 최후의 남 성이라고 샤넬은 훗날 고백했다. 샤넬은 그뒤로 몇번인가 사랑에 빠졌지 만 결혼하지 않고 끝내 독신으로 산다.

샤넬이 만든 옷은 아주 특별했다. 그의 옷에는 상식과 통념을 깨뜨리는 신선함이 가득했다. 그때껏 여성의 옷은 코르셋으로 꽉 조인 허리에 엉덩 이는 한껏 부풀린, 발끝까지 닿는 긴 치마가 상식이었다. 여성이 다리를 드러낸다는 건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아무리 짧은 치마라도 신발이 보일 락말락 하거나 발목을 살짝 내놓거나 하는 정도로 그쳤다. 여성들은 될 수 있는 한 치마를 크게 부풀리려고 크리놀린이란 속옷을 입었다. 고래수 염이나 말총으로 만든 커다란 새장 모양의 속옷이 크리놀린이다. 활동하 기 불편함은 말할 것 없고 무게도 만만치 않았다. 샤넬은 우선 코르셋과 크리놀린을 벗게 했다. 그런 다음 치렁한 치마 길이를 무릎까지 싹둑 잘 라버렸다.

샤넬의 옷은 정확한 현실감각에서 나온 거였다. 그때 유럽은 1차 세계대 전을 막 치르고 난 뒤였다. 남성들이 전쟁터에 나갔을 때 공장에서 회사 에서 일한 건 여성들이었다. 종전의 옷차림은 그런 일에 도무지 맞질 않 았다. 샤넬은 앞으로 일하는 여성들이 점점 많아질 테고 그에 맞게끔 여 성의 옷차림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샤넬은 일하는 여성을 위한 옷 을 만든 것이다.

그 밖에도 샤넬이 고안해 낸 창작품은 아주 많다. 대부분 자신의 생활체 험에서 나온 것들이다. 손에 드는 핸드백이 번거롭고 잃어버리기 쉽다고 생각되자 끈을 달아 어깨에 메고, 해변에서 모래사장을 걷다가 모래가 너 무 뜨겁다고 생각되자 구두밑창에 코르크를 달았다. 값비싼 진짜 보석 대 신 인조보석을, 모피 대신 토끼털을 달고,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던 값싼 저지로 정장을 만들어 입고, 옷에 주머니를 달아 모델로 하여금 주머니에 손을 넣고 활기차게 걷게 하고….

“나는 여성을 동물처럼 눈요깃거리로 만들고 싶지 않다. 초록색이 잔디 와 완전히 어울리듯 여성도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사는 존재다. 나는 그 것을 옷으로 표현했다.…. 나의 옷은 열심히 일하며 살아가는 여성들을 위한 옷이다. 그 때문에 뛰어나게 아름다운 여성 몇몇이 묻혀버린다 해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샤넬의 옷에는 철학이 있었다. 샤넬이 디자이너로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 도 그것일 게다.

박은봉/ 역사연구가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12월18일 제 187호


커버스토리 포커스 문화시대 특집 지난호 전체보기 처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