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초점

“북한, 그리고 안기부가 두렵다”

(사진/"안기부 위협이 아니길..." 11월3일 통일강냄이팀 회원이 중국에서 당했던 의문의 교통사고. 오른쪽 차체가 다 날아갈 정도로 큰 사고였지만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

“권력의 검은 부분을 너무 깊숙이 봤어.”

지난 11월 말 한 사회 지도급인사는 통일강냉이팀 회원에게 이렇게 나직 이 말했다. 그는 11월13일 베트남-중국 국경지뢰밭으로 내몰렸다 극적으 로 탈출한 홍영실(35·여)씨의 진술내용을 읽고 있었다. 문서를 다 읽은 이 인사는 또 이렇게 덧붙였다.

“탈북 식량난민뿐만 아니라 당신들도 위험해.”


안기부의 ‘지뢰밭’유도는 살인명령?

이 인사는 통일강냉이팀에게 이렇게 ‘경고’한 배경에 대해 “통일강냉 이팀이 국가권력의 비밀을 너무 많이 알아 ‘양쪽으로부터의 위험’에 처 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그는 이 위협의 한 축이 안기부일 수 있다고 밝혔다. 이는 통일강냉이팀이 베트남행을 지목 한 안기부의 행위를 ‘살인지령’이라고 인식하는 것과 맥이 통하는 것이 다. 통일강냉이팀은 12월2일 기자회견 등에서 “‘안기부 루트’를 가르 쳐주지 않은 채 8살·10살의 아이들과 임신부가 낀 민간인들에게 철통경 비의 중-베트남 국경을 넘으라는 것은 곧 ‘살인지령’이다”라고 주장했 다.

과연 베트남행을 지목한 안기부의 ‘유도’는 살인명령이었을까. 그렇다 면 안기부의 어떤 부서가 이런 ‘지령’을 내린 것일까.

우선 이번 사건에 관련된 안기부 부서는 ‘6실’과 ‘8실’인 것으로 확 인됐다. 이곳은 각각 해외정보 수집업무와 북한공작 업무를 담당하는 곳 이다. 안기부는 전체 9개 실로 이루어져 있다. 이중 박일룡 1차장이 관할 하는 1∼3실은 국내정보를 담당하는 곳이다. 또 이병기 2차장이 담당하는 4∼6실은 해외정보 수집을 맡고 있다. 북한공작 업무를 맡고 있는 7∼9실 은 엄익준 3차장 담당이다. 그런데 북한과 관련된 사안이 해외에서 일어 나면 2차장 관할의 6실과 3차장 관할의 8실이 공조해야 할 경우가 발생한 다. 한 안보문제 전문가는 올해 초 중국에서 망명신청을 한 황장엽씨 경 우가 대표적인 공조사례라고 지적했다. 이번 식량난민의 주베트남 한국대 사관 망명신청도 ‘해외에서 일어난 북한 관련 사건’이므로 자연스럽게 6실과 8실이 관련됐던 것으로 보인다. 이중 탈북 식량난민을 베트남으로 오게 하는 데는 8실, 베트남에서 한국으로 데리고 오는 것은 6실 소관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사건을 맡았던 안기부 8실의 한 관계자는 “현재 현지 공관을 중심 으로 탈북 식량난민들의 송환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면서 “탈북자들을 전원 수용하려 하지 않는다면 통일의지가 없는 것 아니냐” 고 밝혔다. 8실 관계자들은 또 “‘탈북 식량난민 지뢰밭 추방’이라는 결과가 나온 것은 6실 잘못”이라는 비판적 분위기인 것으로 알려졌다. 즉 베트남 한국대사관까지 무사히 들어간 사람을 6실이 잘못하는 바람에 ‘공작’ 전체가 비판을 받게 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6실의 관계자들은 “이번 사건은 단순한 행정착오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베트남 내무부 고위관리들도 모르는 상태에 서 하급관료에 의해 식량난민의 추방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들은 이번 사건이 자신들과는 전혀 무관하다고 강조한다.


핸드폰에 찍힌 4444444

하지만 통일강냉이팀은 이런 안기부 각 담당부서의 주장에 대해 “말도 안 된다”고 비판한다. 우선 베트남행에 대한 8실의 주장부터가 문제다. 통일강냉이팀은 ‘전문가’인 그들이 국경을 넘는 데 전혀 도움을 주지 않았다는 점에서 안기부의 주장은 거짓이라고 주장한다. “특수요원이 안 기부 루트로 넘기도 힘든 길”을 민간인들에게 넘게 한 것은 “수십년간 독점해온 안기부 고유의 영역을 ‘침범’한 자를 제거하기 위한 것일 가 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통일강냉이팀은 ‘단순한 행정착오’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더욱 말이 안 된다고 말한다. 베트남과 같은 사회주의국가에서 하급관리가 상부로부터 의 명령을 거부한 채 독자적으로 추방을 결정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통일강냉이팀은 이런 변명이 “설득력없는 지극 히 근거가 빈약한 논리”이며 “한 국가로서 베트남을 무시하는 발언”이 라고 비판한다. 실상은 안기부가 ‘비용-정보가치 분석’을 통해 이들을 의도적으로 버린 것이라는 판단을 떨치지 못하는 것이다. 때문에 이들은 안기부의 해명을 “제거해야 할 대상을 제거하지 못한 데 따라 논리적 허 점을 마구 드러내는 것”이라고 총평한다.

한편 안기부는 이번 사건과 관련해 아무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안 기부는 그동안 ‘<내외통신>의 안기부 분리’ 주장 등 안기부 관련 보도 가 있으면 공보실 등을 통해 재빨리 해명·항의하는 조처를 취해왔다. 그 러나 안기부 6실과 8실 등 해당 부서는 안기부엔 치명적이었던 통일강냉 이팀의 이번 기자회견과 관련해 아무런 해명자료도 내놓지 않고 있다. 강 냉이팀의 주장을 일정 부분 뒷받침하는 것으로 읽히는 대목이다.

이에 앞서 한 안기부 간부는 지난 8월20일 베이징에서 “이 일을 계속하 면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다”고 강냉이팀 관계자에게 밝혔다고 한다. 위 에서 언급한 한 지도급 인사의 ‘양쪽으로부터의 위협’이라는 발언을 상 기케하는 말이다. 그리고 어느 쪽인지는 모르지만 그 위협이 실제로 발생 한 사례로 이들은 11월3일 중국에서 있었던 교통사고를 꼽는다.

이날 밤 통일강냉이팀 중 한명은 조선족 안내인들과 함께 옌볜에서 선양( 瀋陽)으로 가는 한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10월20일 베트남 한국대사 관에 탈북 식량난민들을 넘긴 뒤 중국에서 마무리 작업을 끝내고 한국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선양 비행장으로 향하던 길이었다. 운전자는 짙은 어 둠 속에서 ‘도로를 가로막고’ 서 있는 커다란 트럭을 발견하고 급제동 을 걸었다. 그러나 충돌을 피할 수는 없었다. 오른쪽 차체가 다 날아갈 정도의 큰 충돌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목숨을 건진 건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도로를 막고 있던 트럭은 피해차량인데도 충돌 직후 곧 달아나 버렸다.

그러나 통일강냉이 관계자가 이 사건을 진짜 의혹의 눈으로 본 것은 한참 뒤 차를 바꿔타고 공항에 도착했을 때이다. 공항 대합실에 들어서자 핸드 폰이 울렸다. 그런데 발신자 번호가 찍히는 중국 핸드폰에 ‘4444444’란 번호가 찍혀 있었다.

물론 이 사건은 ‘단순사고’일 수 있다. 그러나 통일강냉이팀은 이 사건 이 ‘위협’이더라도 안기부로부터의 위협이 아니기를 바라고 있다.

김보근 기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12월18일 제 18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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