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

박홍에 휘둘리는 서강대

서강대 안에도 이른바 ‘안가’가 있다.

정문에서 출발해 본관을 지나 중앙도서관을 끼고 돌면 붉은색 벽돌로 치 장된 다산관이라는 건물이 나온다. 이 건물 꼭대기층에는 유일하게 방 하 나가 있는데 ‘701호’라고만 조그맣게 쓰여 있을 뿐 도대체 용도를 알려 주는 명패가 없다.

실제로 다산관 로비에서 박홍 명예총장의 방이 어디냐고 물어보았으나 아 는 학생이 없었다. 되레 “아니 이 건물에 박홍이 있어요”라고 되물을 정도였다. 심지어 교수들도 박 전 총장의 방 위치를 정확히 모른다.

총장실은 10평, 박 총장 방은 40평

(사진/서강대 다산관 701호 박홍씨의 방 출입문. 대다수 교수·학생들도 이 방의 존재를 모르고 있다. )

박 전 총장은 지난 1월 총장자리를 지금의 이상일 총장에게 물려주면서 본관 총장실에서 나와 사실상 비밀리에 부쳐질 정도로 음침한 이곳에 똬 리를 트고 있는 것이다. 또 이 총장과 다른 보직교수들의 집무실이 10평 인 데 반해 박 전 총장의 방은 그 4배나 돼 도대체 누가 진짜 학교 우두 머리인지 헷갈릴 정도다.

정작 큰 공간을 쓰면서도 1주에 3시간만 강의하는 박 전 총장은 1주에 사 나흘, 그것도 1∼2시간 정도 이 방에 머물 뿐이다. 조교 이아무개(여·서 강대 종교학과 졸업)씨만이 간간이 걸려오는 전화를 받아주거나 책을 보 며 빈방을 지키고 있다.

박 전 총장이 이런 은밀하고 호사스러운 방을 얻은 것도 그렇지만 더욱 거슬러올라가 명예총장이 된 것부터 구린내가 난다. 서강대를 세운 예수 회는 박 전 총장이 주사파 발언 등으로 정치적 파문을 일으키는 것을 참 다 못해 지난해 서강대에 파견단을 보내 박 전 총장의 연임 분위기를 미 리 차단했다. 그러나 중임을 하고도 3선 총장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 던 박 전 총장은 여의치 않자 대신 이사장 자리를 노렸다. 이 총장의 측 근인 교직원 ㄱ씨는 “이 총장은 박 총장을 무마하기 위해 명예총장으로 추천해줬고 이사회에서 이를 승인한 것이다”고 털어놨다.

박 전 총장의 욕심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서강대의 한 교수는 “박 전 총장이 이 총장에게 사무실은 물론 차와 프로젝트비, 그리고 비서를 달라 고 요청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이 총장은 차와 프로젝트비는 거부했지만 결국 전임총장으로서 예우도 해주고 또 박 전 총장이 로마 교 황청이 내린 사도자 순시관으로서 구실을 도와준다는 명목으로 사무실과 함께 비서로 쓸 수 있도록 학교 비용으로 유급조교를 붙여주는 선에서 마 무리지은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총장은 교황청으로부터 한국과 일본의 가톨릭계 교육기관들의 교육 현황에 대해 교황에게 보고서를 올리는 프로젝트를 부여받은 게 사실이긴 하다. 그러나 서강대 전임총장의 예우에 관한 규정에는 차와 프로젝트비 는 물론, 사무실과 비서도 제공할 수 없게 되어 있다. 명예총장의 경우 의무강의시간이 3시간이며 퇴임 직후에 한해 1년까지 특별휴직을 할 수 있다는 예우 조항만이 있을 뿐이다.

“불명예 총장이 명예총장이라니…”

한편 박 전 총장이 사도자 순시관 일을 한다 해도 학교가 이를 도와주는 것도 정당하지 않다. 서강대가 소속된 예수회는 관구나 교구와는 달리 로 마 교황청의 방계조직으로서 독자적으로 움직이고 있으며 사도자 순시관 은 예수회가 아닌 로마 교황청이 내린 임무다. 예수회가 박 전 총장의 연 임을 막을 정도인데도 교황청이 박 전 총장에게 사도자 순시관이라는 일 을 맡긴 배경도 여기에 있다. 서강대가 비용을 부담할 사안이 아닌 것이 다.

지난 2월 교수회의는 입학 커트라인이 오래 전부터 곤두박질치고 심지어 지방 어느 대학보다 낮았다는 보고로 숙연한 분위기였다. 당시 일부 참석 교수들은 8년간 학교를 대표하면서도 밖으로만 싸돌아다닌 박 전 총장을 떠올렸다고 한다. 그런데 이같은 보고에 이어 학교쪽이 박 총장을 명예총 장으로 추대하자 교수협의회는 ‘학교를 망친 불명예 총장에게 명예총장 이라니 경악한다’는 내용의 공개서한을 띄우기도 했다.

서강대의 한 교직원은 “명예총장도 과분한데 규정에도 없는 사무실과 유 급조교마저 두다니 전두환 전 대통령이 국가원로 자문회의를 만들어 계속 권력을 누리려는 것과 진배없다. 신부가 어찌 이리도 욕심이 많냐”며 혀 를 내둘렀다.

송창석 기자 한겨레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