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쑥덕공론

안기부 ‘오익제 공작’ 시작됐나

안기부가 대선 막바지에 또다시 용공음해시비에 말려들었다.

지난 8월 월북한 전 천도교 교령 오익제씨가 김대중 국민회의 후보에게 편지를 보냈다는 사실을 안기부가 지난 12월5일 공개하자 국민회의는 즉 각 “정치적 공작”이라고 규정하고 크게 반발하고 나섰다. 국민회의 관 계자들은 “안기부가 국내정치에만 혈안이 돼 있으니 간첩을 제대로 잡을 수 있겠느냐”며 최근 오익제씨 월북사건과 고영복씨 간첩사건 등에서 드 러난 허술한 대공 자세를 빗대 안기부의 태도에 불만을 나타냈다.

안기부는 오익제씨가 최근 김대중 국민회의 후보 앞으로 서신을 발송한 사실과 함께 편지내용을 공개하는 ‘친절함’을 보였다. 오씨가 보낸 편 지라고 안기부가 주장하는 편지에는 “평양에 도착해 보니 남한에서 생각 한 것보다 훨씬 좋다” “후광 선생(김 후보의 아호)이 대선에서 필승하 길 바라며 대통령이 되면 금세기 내에 통일이 앞당겨질 것”이라는 등의 내용이 적혀 있다.

이번 대선에서는 색깔론시비에서 벗어나기를 기대했던 국민회의로서는 선 거 막판에 편지내용을 공개한 안기부의 태도에 불쾌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그동안 지지도 1위를 유지해오고 있는 국민회의로서는 ‘북풍 악몽 ’이 되살아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조세형 국민회의 총재권한대행은 “이번 사건은 경제파탄으로 몰리게 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를 구출하기 위해 김영삼 정권이 저지른 정치적 음 모극으로 의심하고 있다”고 단정했다. 국민회의는 또 김종필 ‘국민회의 ·자민련 공동선대위’ 의장의 기자회견을 통해 오익제씨 편지사건의 진 상규명을 요구하는 등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는 논리로 색깔론시비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선제공격에 나섰다.

국민회의는 안기부가 이미 지난 1일 편지사본을 당에 전달해 놓고 4일이 지난 5일 뒤늦게 편지를 새롭게 발견한 것처럼 법원에 압수수색 신청을 하는 법석을 떠는 점에 주목했다. 또 평양에서는 제3국을 통해서만 한국 으로 편지가 전달되는데 제3국의 소인이 없는 점도 의혹으로 지적됐다. 이 편지에는 발신인이 ‘평양시 중구역’으로, 편지봉투 겉표지에 평양우 표와 평양우체국 직인이 찍혀 있다. 한편 국민회의 공안사건 때마다 거론 된 한나라당의 아무개 의원을 배후공작의 주인공으로 의심하고 있다. 국 민회의는 “한나라당 모 의원이 지난 11월 중순부터 21일까지 베이징에 머물면서 모 재미교포 주선으로 북한쪽 고위층과 빈번히 접촉했고, 그런 과정에서 이같은 조작음모극이 이뤄진 게 아닌가 주시하고 있다”며 “조 작된 편지뿐 아니라 이른바 ‘오익제 비디오’를 통한 공작 제2탄을 터뜨 릴 것이라는 정보도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조준상 기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12월18일 제 18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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