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

“왜 ‘인권’ 공약은 없는가”

(사진/12월5일 출판문화회관에서 열린 '제15대 대통령선거 후보진영 정당정책 비교평가 토론회'에선 각 당 후보들의 공약에 대한 비판적인 평가가 주조를 이뤘다.)

“대선후보들의 공약 중 최대 문제점은 재정조달 등 구체적인 실현방안 제시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특히 인권부문에 대한 공약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은 인권상황과 관련해 우려되는 대목이다.”

시사주간지 <한겨레21>이 12월5일 민변과 민교협, 학술단체협의회, 민예 총, 월간 <말> 등과 함께 공동 주최한 ‘15대 대통령선거 후보진영 정당 정책 비교평가 토론회’의 결론이다. 한마디로 대선후보들의 공약이 ‘빛 좋은 개살구’식으로 겉만 번지르르하고 속은 별 내용이 없거나 실현불가 능한 부분이 많다는 것이다. 특히 민주주의 발전의 중요한 척도인 인권부 문에 대해 각당이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는 것은 큰 문제점으로 지적됐 다.

IMF 체제로 경제정책 수정 불가피

대선후보들의 공약에 대해 이같이 ‘인색한 평가’가 내려진 것은 이날 토론회를 주최한 단체들이 진보적 성향의 단체들이라는 점도 반영된 것으 로 보인다. 그러나 각 정당들이 지나치게 보수화하는 상황에서 진보적인 시각으로 각당의 전반적인 공약을 평가했다는 점에서 이날 토론회는 나름 대로 의미있는 자리였다고 할 수 있다. 토론회는 정치부문과 경제, 노동, 복지, 문화, 인권부문 등 6개 분야에 대한 후보들의 공약을 평가대상으로 삼았다.

경제정책 공약에 대한 발제를 맡은 김상조 한성대 교수(경제학)는 “국제 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 요청으로 각 후보가 제시한 경제공약 중 정부 의 예산지원을 필요로 하는 부문 등 IMF가 부과하는 이행조건에 직·간접 으로 저촉되는 것은 수정돼야 할 상황에 놓여 있다”며 “이에 따라 각 후보의 경제정책을 비교평가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 전제했다. 김 교 수는 재벌정책과 관련해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와 김대중 국민회의 후보 , 이인제 국민신당 후보는 재벌이 과거 경제성장의 주역이었음을 인정하 면서 동시에 문제점도 안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는 등 재벌에 긍정적인 평 가와 함께 부정적인 평가를 동시에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모두 공정거래법에 의한 불공정거래 규제 및 경쟁촉진, 다양한 수단을 통한 기 업경영 투명성 제고를 주요한 재벌정책 수단으로 내세우는 공통점을 보이 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공정거래법의 운용에서 이회창 후보는 불공 정거래 행위에 대한 규제를 지적한 반면, 김대중 후보와 이인제 후보는 규제보다는 경쟁촉진쪽에 무게를 두고 있는 차이점을 보이고 있다고 분석 했다.

이에 반해 진보정당 건설을 내걸고 후보로 나선 권영길 국민승리21 후보 는 재벌을 모든 구조적 모순의 근본원인으로 지적하고 재벌해체를 주장하 는 차이를 보이고 있다고 평가했다. 권 후보의 재벌정책의 핵심은 재벌총 수의 소유에 대한 제한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노동분야 공약에 대한 발제를 맡은 노중기 한신대 교수(사회학)는 “경쟁 력 없는 재벌의 문어발 확장은 김영삼 정부 초기 기조와는 달리 한국경제 를 결국 현재의 좌초 위기로까지 몰아넣는 주된 요인임이 판명됐다”며 “그럼에도 각 후보의 공약은 근본적 원인접근이나 대책없이 경제위기 회 복을 단지 노동자들의 고통분담으로 전가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주장했 다. 노 교수는 노동시장정책과 관련해 한나라당과 국민신당은 경제위기 타결과 국제경쟁력 강화를 위한 방안으로 산업구조조정개편을 꼽고 있다 고 지적했다. 이로 인해 대량해고와 정리해고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했 다. 국민회의는 고용안정을 최우선으로 하고 있지만 ‘해고요건 엄격화와 해고자제’ 공약 등에서 알 수 있듯이 정책대응에서 정리해고제도 자체와 고용유연화 추세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수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민 회의는 한나라당이나 국민신당에 비해 추상적이나마 고용안정을 강조하고 , 상대적으로 치밀한 실업대책과 노사 형평성인식 등을 갖추고 있다는 점 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대목이 있다며 한나라당과 국민신당에 비해 상대 적으로 높은 점수를 매겼다.

사회복지 분야, 한나라당이 최악

(사진/양심수 문제 등 인권분야에 대해 별도의 공약을 발표한 정당은 3당 중 한군데도 없었다. )

사회복지분야 공약에 대한 발제에 나선 김종일 건국대 교수(사회복지학) 는 정책의 종합성과 포괄성 측면에서 국민회의와 국민승리21의 공약에 대 해 상대적으로 높은 평가를 내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두당에는 소득과 의료, 주거보장과 공적부조는 물론 여성과 아동, 노인, 장애인 등 각종 사회복지 분야에 대한 정책이 언급돼 있다는 것이다. 국민신당은 종합성 에서 이들 두당에 비해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지만 기본적으로 사회복지 정책의 틀을 갖추려는 노력이 보인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국민회의가 복 지예산을 해마다 30% 이상 증액하겠다는 약속은 IMF 구제금융시대에 실현 불가능한 일이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재원조달 방안이 현실적으로 어렵 게 돼 ‘지키지 못할 공약’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국민신당도 재원조달방법이 구체적으로 언급되지 않았으나 학교사회사업을 제도하겠 다는 공약과 치과진료의 보험확대 등은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고 평가했 다. 한나라당에 대해서는 전체적인 사회복지 정책 자체가 매우 빈약하고 몇개의 현안들을 단편적으로 언급하는 선에서 그치고 있다고 가장 낮은 점수를 줬다.

문화부문 공약과 관련해 박인배 민예총 정책실장은 발제를 통해 “한나라 당은 현행 김영삼 정권의 문화정책을 대부분 이어가고 있다”며 현 정부 와의 차별성을 찾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국민회의쪽은 문화산업의 중요 성을 강조하는 데 알 수 있듯이 문화예술에도 시장경제의 원리를 적용하 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국민회의 공약은 경쟁력의 확대 나 재원확보의 측면에서는 유리할 수도 있으나 문화분야에서 상업주의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문제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국민신당은 ‘문화한국’ 이라는 구호를 통해 문화복지를 매우 강조하고 있으나 구체적인 내용에 들어가서는 현 정부의 정책내용이 뒤섞여 있는 등 약간의 혼란을 초래하 고 있다고 주장했다. 문화예술에 대한 사전검열 등 예술표현의 자유과 관 련해서 국민회의는 사전검열 폐지를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으나 한나라당 과 국민신당은 사전심의를 존속시키면서 ‘자율심의’를 주장하는 차이를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문화산업의 육성과 관련해서는 한나라당은 문화 산업 중에서도 관광산업을 중심에 놓고 있고, 국민회의에서는 전통적인 예술장르의 산업화까지를 비롯해 문화산업과 영상산업, 관광산업을 각기 별도 항목으로 중요성을 인정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국민신당은 문화산업 의 영역을 정보화와 연결된 문화벤처산업쪽으로 부각시키려 하고 있는 차 이를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다.

양심수와 전·노 바꾸지 말아야

인권부문 공약에 대한 발제에서 이덕우 변호사는 “인권분야에 대한 각 정당들의 관심이 부족하다는 점에서 실망이 크다”고 지적했다. 인권분야 에 대해 별도의 공약을 발표한 정당이 3당 중 한 군데도 없다는 지적이다 . 이 변호사는 인권분야와 관련해 시급히 해결할 문제 중 하나인 양심수 석방에 대해서도 후보들이 보수적 언론의 비판적 태도로 기존의 견해에서 마저 후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특히 “부정축재와 광주학살의 책임자들 인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과 양심수 석방이 동일선상에서 논의되는 것 은 잘못”이라며 양심수 석방은 인권침해에 대한 구제차원에서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과거 인권침해 사례에 대한 진상조사와 관련 책임자 처벌과 관련해서는 국민회의가 국가인권위원회 설치를 공약하고 있어 차별성을 드러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표적 악법 중 하나인 국가보 안법 개폐와 관련해서도 한나라당과 국민신당은 현행 법의 고수를 주장하 고 있으며, 국민회의조차도 보안법 존치를 전제로 법운영 과정에서 인권 침해 소지를 없애는 방향으로 후퇴했다고 지적했다. 다만 권영길 후보의 국민승리21쪽만 보안법 폐지와 안기부법 폐지를 공약하는 등 특별한 차별 성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다.

정치분야에서 손호철 서강대 교수(정치학)는 “내각제는 한국정치의 문제 점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이 될 수 없다”며 “중앙정부에 권력이 집중되 는 현재의 단방제적 국가체제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켜 외교와 국방 등 필 요불가결한 권한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권한을 지방정부에 이양함으로써 권력을 분산시키는 새로운 한국형 국가체제인 ‘연방제’를 대안으로 생 각해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발제에 이어 종합토론자로 나선 이대훈 참여연대 협동처장과 조형준 환경 운동연합 기획국장, 하승창 경실련 정책실장은 “후보들의 공약과 정책 등이 이번 대선에서도 제대로 쟁점화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쉬운 대목 ”이라고 평가했다.

김성호 기자 한겨레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