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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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얗다. 연습중에 만난 배우 조용원(30)씨의 얼굴은. 뮤지컬 <101 1004>( 백일천사)에서 ‘천사’역을 맡았다고 하니, 그의 조그맣고 하얀 얼굴이 더욱 인상깊게 다가왔다. 이젠 결코 적은 나이가 아니지만, 그는 아직도 <고교생 일기>에 나오던 그때의 10대 소녀 같다.
하지만 그는 이제 극단 대표다. 극단 이름은 자신의 이름 끝자를 따 ‘원 ’이다. 이 어려운 때 세상물정 모르고, 극단을 세운 이유에 대해 그는 “제가 하고 싶어서요”라며 빙긋이 웃었다. 더 구체적인 이유는 아역시 절까지 올라가는 오랜 연기생활 중, 첫 연극무대인 지난 5월의 뮤지컬 < 동백아가씨>에서 “10년 만에 처음 카타르시스를 느꼈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변사람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극단을 세우고, 작품을 선정하고, 연출과 스탭진을 꾸리고, 오디션을 통해 30여명의 배우들도 모집했다. 친 분을 이용, 이효정, 변우민, 윤현숙 등 스타급들도 끌어왔다. “출연료를 한푼이라도 아끼기 위해”(?) 본인도 직접 출연한다. 연기와 공부밖에 몰 랐던 그가 연극기획을 맡고, 협찬사를 구하기 위해 온종일 이곳저곳을 뛰 어다녔다. 그러나 경기불황 탓에 단 한군데의 협찬사도 얻지 못했다. 자 력갱생만이 남았다. “계산을 해보니, 2억7천만원 정도의 비용이 들어갈 것 같고, 공연기간 내내 객석점유율 130%가 된다 하더라도, 7천만원 정도 의 손해는 피하지 못할 것 같아요”라고 씁쓸해 하면서도, 그는 웃었다. 그가 무대에 올리는 <백일천사>는 백일극단 연출가 박길만이 경영난으로 문을 닫는 극단의 마지막 작품 ‘로미오와 줄리엣’을 연출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다. 극에서 고아소녀인 그는 극중극의 줄리엣 역을 맡았 고, 자신을 천사로 아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기꺼이 천사가 되어주는 정말 천사 같은 역이다.
줄거리는 소박하지만, 겉은 화려하다. 20여곡의 현대음악에 정보통신망을 구축한 현란한 극장무대 위 또다른 극장무대, 10여대의 대형 오토바이. 잠시 들여다본 연기자들의 군무는 <웨스트사이드 스토리>를 연상시켰다. 또 연기자의 노래는 모두 라이브다. 자연 연출이 까다로울 수밖에.
그래서 그의 요즘 하루는 더욱 고달프다. 오전 9시부터 사무실에 출근해 사람들을 만나고, 오후 1시부터 밤 10시까지 연습, 그리고 10시 이후 기 획회의, 서류정리. 거의 매일 밤을 새다시피 한다. 입맛을 잃어 식사를 자주 거른 탓에 급성위염으로 쓰러져 병원신세를 지기도 했다. 병원에선 장기입원을 권유했지만, 그는 연극이 끝날 때까진 안 된다며 뛰쳐나왔다. 연약해 보이는 그의 어디에 이런 악바리 근성이 숨어 있었는지. ‘100% 창작극, 공연 일류화’ 등 원대한 꿈을 안고 출발하는 극단 원이 그의 하 얀 얼굴에 핏기를 좀 돌게 해주었으면 좋겠다. 그는 인터뷰 내내 엷은 흰 빛 미소를 머금었다.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건 그래서 힘들어도 좋은가 보다. 그의 연극은 12월12일부터 21일까지 동숭홀에서 열린다(문의: 02-5 17-7607).
권태호 기자
© 한겨레신문사 1997년12월04일 제 18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