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사람이야기

가수 데뷔하는 술집주인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 있는 술집 ‘소설’과 신촌 기차역 앞에 있던 ‘한 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 이화여대 후문께 있던 ‘볼쇼이’의 공통점 을 아는가? 그것은 바로 염기정(37)씨다. 당당한 몸매의 염씨는 이 세 술 집의 주인이거나 주인이었다.

그는 술꾼들의 보금자리로 알려진 이 술집들을 이끌어왔다. 그는 주인도 없고, 손도 없는 듯 뒤죽박죽인 이 술집들의 공식적인 주인이었다. 보통 저녁 때가 되면 경기도 일산 집에서 나와 이 술집의 문을 연다. 그리고 저녁과 밤 내내 술벗들과 어울려 술잔을 기울이거나 이야기를 나눈다. 때 로 흥이 나면 기타줄을 퉁기며 그 특유의 우울한 분위기로 노래하기도 한 다.

그가 오는 12월1일 신촌 라이브극장 벗에서 공연을 하기로 했다. 그렇다 고 신인가수로 데뷔하는 것은 아니다. 그와 절친하게 지내는 한 신문사 기자의 취중 권유에 따른 것이었다. 공연장도 그 기자의 친구가 경영하는 곳으로 잡았다. 처음에는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컸지만 이제는 “까짓 거” 하는 자신감도 생겼다.

이 공연에는 연출자가 없다. 연출자 없이도 그와 술벗들은 그의 술집에서 즐겁게 떠들고 노래하고 춤췄다. 대신 술과 술벗들이 바로 연출자다. 이 공연에 참석하는 모든 사람들은 공연장 입구에서 한잔의 술을 받게 된다. 연출자가 없어도 “어쩐지 잘될 것 같다”는 좋은 예감이 앞선다.

그렇다고 걱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는 80년대 초중반 모임 ‘햇빛촌’ 시절 이후 사람들 앞에서 노래한 적이 없다. 사람들과 함께, 사람들 곁에 서 노래했을 뿐이다. 마이크도 써본 적이 없다. 마이크에 적응하기 위해 동네 노래방을 며칠 동안 날마다 찾았다.

또 사람들이 얼마나 찾아줄까 하는 것도 걱정이다. 그의 술집을 거쳐간 사람은 셀 수도 없지만 단골이라 할 사람은 적어도 2백여명 이상이다. 공 연장이 2백석이니 단골들만 와도 된다. 그러나 그들이 모두 와줄지, 적어 도 공연장을 썰렁하게 하지 않을 정도라도 채워질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

이번 공연은 내년으로 꼭 열해가 되는 술집 주인 시절을 한매듭 짓는다는 뜻에서 마련했다. 그리고 많은 술벗들과 한자리에서 동시에 만나고 싶다 는 바람도 있었다. 그는 이번 공연이 사람들에게는 이렇게 비쳐지길 바랐 다. “‘나도 할 수 있다’는 씩씩한 생각 자체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 는 것 아니겠어요.”

김규원 기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12월04일 제 18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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