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읽기

‘특별법’ 지켜져야 한다

올해 과학기술계에는 많은 일이 있었다. 무엇보다 ‘과학기술혁신을 위한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해 7월부터 시행되었다. 특별법 이전에 있었던 법 안들 중에도 기초과학연구진흥법처럼 괜찮은 법안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 다. 그렇지만 예산의 특정비율을 기초과학을 위해 써야 한다는 조항이 없 었고, 이를 관장하는 과기처의 위상이 높지 않아서 그 취지를 충분히 살 리지 못했다. 특별법에 기대가 컸던 것은 이 법이 정부 예산의 5%를 연구 개발(R&D)을 위해 써야한다는 규정을 넣어, 기초과학 투자를 실질적으로 만들려 했기 때문이었다. 예산을 집행하는 재경원의 반대 때문에 이를 특 별법에 명시하진 못했지만, 이 확대 목표치를 ‘과학기술혁신 5개년 계획 ’에 명시, 이를 해마다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국회가 감독하게 함으로써 정부의 의지를 국회차원에서 점검할 수 있게 한 것은 작은 성과였다.

대선이 얼마 안 남았고, 누가 대통령이 되어도 IMF 구제금융이라는 한국 의 새로운 경제현실 속에서 정책을 짜나가야 할 것이다. 따라서 이전에 짰던 과학기술 정책의 큰 청사진을 아무런 수정 없이 앞으로 5년간 유지 한다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이 와중에 ‘특별법’이 제대로 시행 도 못 되고 흐지부지될 공산이 커지고 있다. 이를 우려하면서, 여기선 새 정부에, 새 대통령에 바라는 과학기술 정책의 몇 가지 중요한 골격을 얘 기해 보고자 한다.

첫번째로, 기초과학에 대한 투자는 확대되어야 한다. 긴축재정을 하는 정 부가 가장 쉽게 손댈 수 있는 예산이 기초과학 예산처럼 당장 경제적 효 과가 없는 것인데, 이는 첨단 기술의 독자개발은 물론, 장기적으로 산업 과 경제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 지금까지 한국의 기술개발과 산업혁신을 지탱해온 “모방에 근거한 창조”의 방법으로는 21세기 기술경쟁에서 버 티기 힘들다는 인식은 백번 옳다.

두번째로, 자연과학, 공학, 산업기술을 매개해주는 연결 교량의 구축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과학의 모든 성과가 자동적으로 산업기술 로 이전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과학자가 산업기술의 구체적인 문제 를 풀기 위해 연구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것도 아니다. 지금까지 한국 과학기술 정책은 기초과학을 육성하고자 하면 경제적 이익이 없다는 비판 에, 산업혁신과 직접 관련된 연구에 중점을 두려 하면 기초과학의 경쟁력 을 떨어뜨린다는 비판에 직면하곤 했다. 과학과 기술의 관계는 단순한 협 동 관계가 아닌 ‘긴장’ 관계임을 먼저 인식해야 한다. 기술과 완전히 무관하지도, 그렇다고 기술이나 경제 논리에 종속되지도 않는 과학정책, 이를 위해 과학과 기술을 매개하는 인력들과 제도를 활성화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세번째로, 과학기술연구는 궁극적으로 과학기술자가 하는 것이다. 이들의 창조성을, 사기를 고양시키는 정책이 필요하다. 새 대통령이 그를 도와준 사람들을 위한 논공행상 식으로, 지연과 학연에 근거해 과기처에서 정부 출연 연구소의 장들을 임명하거나 교체한다면, 이것이 실제 연구를 수행 하는 연구원들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가장 큰 요인임을 알아야 한다. 물론 이것 이외에도, 연구원들을 위한 복지 확대, 인센티브 시스템의 광범위한 도입, 창의성과 업적을 높이 사는 제도와 분위기의 도입, 전문 과학기술 자의 공무원 특채 등이 이뤄져야 한다.

마지막으로, 대규모 과학기술 정책 수립에 과학기술 전문가만이 아니라, 시민의 참여를 유도하는 정부의 인식 전환이 있어야 한다. 시민들의 목소 리는 원전이나, 고속전철, 전자주민카드와 같은 국책정책의 걸림돌이 아 니다. 한국의 과학기술 수준이나 국민의 의식 모두 경부고속도로를 닦을 때의 그 수준이 아니다. 시민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정책을 수립하는 것은 더 큰 비효율을 낳을 수도 있다는 것을 우리는 여러 예에서 보고 있다. 한국의 전자주민카드는 정보시대의 프라이버시 문제와 관련해서 전세계 네티즌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는 미묘한 사안이 되고 있다. 차기 정부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