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지성

정보처리, 소리로 끝내라

(사진/컴퓨터 음성인식 시스템 '바이어 보이스'. 손으로 문자를 입력하지 않아도 사람이 말하는 대로 문서를 만든다. )

“두손을 자유롭게….”

현대인에게 손은 정보를 처리하는 주요한 인체 부위이다. 회사에 출근한 직장인은 하루종일 손으로 전화를 걸고 받고, 손으로 문서를 작성하고 컴 퓨터 작업을 한다. 직접 발로 걸어가 말로 처리하던 일의 상당량을 손이 대신하는 것이다. 이러다보니 손의 활약상은 이제 자동차 운전을 하면서 동시에 전화를 걸고 받아야 하며, 사람과 말을 나누며 컴퓨터 작업을 해 야 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이런 손의 과중한 업무를 일부 대신하는 음성인식 기술이 최근 정보통신 제품의 한 흐름이 되고 있다. 차분하게 책상 앞에 앉아 일하기보다는 자 리를 옮기면서 일하는 경우가 잦아지면서 때로는 자동차 운전중에 필요한 아이디어와 정보를 그때그때 입력해야 하는 일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 “본부, 본부 나와라”를 열차 위에서 다급하게 외치는 영화배우 안성 기 주연의 텔레비전 광고는 이런 상황을 극단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필요한 아이디어·정보는 어디서든 입력

음성정보 처리는 이미 우리 주변으로 다가오고 있다. 간단한 음성인식 기 술을 활용한 유·무선전화기와 이동통신 단말기들이 경쟁적으로 잇따라 선보이고 있다. 삼성전자와 엘지정보통신이 자주 쓰는 전화번호들을 미리 입력해둔 뒤 음성으로 전화를 걸 수 있도록 한 음성인식 이동전화 단말기 를 내놓았고, 대우통신과 엘지전자가 수화기를 들지 않고도 목소리로 전 화를 받을 수 있는 ‘여보세요’와 ‘오케이폰’ 등을 시판하고 있다. 또 가정용 전화기 중소업체인 KVS는 최근 최대 98%까지 정확하게 사람 말을 알아들어 자동으로 전화를 걸어주는 전화기 ‘말로폰’을 선보였다.

지난달엔 상당한 소음을 일으키는 시속 100km의 고속 주행중인 자동차 안 에서 차량 소음은 없애고 사람의 목소리 명령만을 최대 94%까지 인식해 0 .5초 안에 자동으로 전화를 걸어주는 고성능의 음성인식 시스템을 삼성종 합기술원과 삼성전자가 공동으로 발표하기도 했다.

컴퓨터 분야도 예외는 아니다. 기존에 사람과 컴퓨터 사이의 의사소통 수 단이었던 마우스나 글자판 외에 목소리만으로 컴퓨터 데이터를 입력하는 새로운 음성인식 제품이 곧 실용화할 전망이다. 미국 아이비엠이 최근 발 표한 이 기술은 지난 25년간 계속해온 아이비엠의 음성인식 기술 ‘보이 스 타이프’를 이용한 것으로, 사용자 목소리를 임시저장해두었다가 다시 문서로 바꿔주는 것이다.

올해 초부터 ‘말하는 컴퓨터’라는 광고문구로 크게 인기를 모았던 ‘음 성합성’(TTS:Text To Speech) 기술 과정을 거꾸로 실현한 셈이다. TTS는 미리 수천∼수만개의 글자 음을 미리 데이터베이스로 갖춰둔 뒤 문서를 자동인식하는 프로그램을 통해 글자마다 해당하는 음성을 불러내 재생하 는 기술이다.

아이비엠이 인텔 등과 공동개발한 음성인식 시스템 ‘바이어 보이스’(Vi aVoice)는 사람이 컴퓨터의 문서작성 프로그램(워드프로세서)을 실행해 문자를 입력하지 않더라도 컴퓨터가 사람이 말하는 대로 이를 문서로 바 꿔주는 것이다. 원리는 간단하다. 사용자가 디지털 녹음기에 메모·보고 서, 편지 따위를 음성으로 입력하면 이는 임시저장 메모리카드에 저장된 다. 그런 뒤 저장된 음성 데이터가 피시로 전송되면 음성인식 프로그램을 통해 음성이 글자 형식으로 바뀌어 저장되는 것이다. 즉 손가락으로 글자 를 입력하는 자판기 대신 목소리의 입력자판이 생기는 것이다.

내년 1사분기 안에 영문판을 시작으로 출시될 예정인 이 제품의 주요 소 비자는 자주 자리를 옮기면서 정보처리작업을 하거나 두손으로 다른 작업 을 하면서 정보메모를 남겨야 하는 변호사·의사·언론인·비즈니즈맨 등 이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약속 데이터만 처리… 변형정보 인식은 요원

그렇지만 아직까지 목소리만으로 사람이 컴퓨터, 정보통신 단말기나 전자 제품들과 자유롭게 소통하기엔 역시 무리다. 넘어야 할 산은 한두개가 아 니다. 먼저, 컴퓨터와 전자제품은 미리 약속해둔 목소리 데이터만을 인식 할 뿐이기 때문에 다른 잡음이나 목소리가 섞여 들어가면 사람의 명령을 엉뚱하게 수행하기 일쑤이다. 그래서 ‘본부’나 ‘회사’ 등처럼 꼭 정 해진 음성정보 외에 조금만 변형된 음성정보는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한 계를 갖고 있다. 더욱이 하나의 낱말이 아니라 여러 개의 낱말이 섞인 문 장을 인식하기까지는 머나먼 개발과정이 필요하다.

그렇지만 간단한 음성인식에서 점차 복잡한 음성인식으로, 점차 100%에 도전하는 음성인식률을 보이는 제품들은 앞으로도 더욱 활발히 개발될 것 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손으로 글자를 입력하거나 버튼을 누르 는 것보다는 말로 정보를 처리하는 일이 보통사람에겐 아무래도 더 자연 스런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오철우 기자/ 한겨레 생활과학부 한겨레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