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초점

“안기부를 수사하라”

(사진/전시된 간첩들의 장비. 고영복 교수는 36년간 안기부의 안방을 드나들었지만, 최소한의 신원조회조차 받지 않았다. )


고 교수 과거전력, 정말 까맣게 몰랐나

국가안전기획부는 지난 11월20일 발표한 ‘북한 직파 부부간첩 및 연계 고정간첩망 수사결과’를 통해 이 초대받지 않은 손님의 암약상을 설명했 다. 북한에서 침투한 부부간첩 최정남과 강연정이 울산의 재야인사 정아 무개씨를 포섭하려는 것을 체포했다는 것. 이들 부부간첩이 접선한 고영 복 서울대 명예교수는 36년 동안이나 보수우익인사의 가면을 쓰고 ‘암약 ’해온 고정간첩이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고 밝혔다. 역시 이들과 접선한 서울지하철 동작설비분소장 심정웅씨는 북한이 유사시 우리나라의 기간 교통망을 마비시키기 위해 지하철에 침투시킨 고정간첩이며, 그 일가는 고정간첩의 지하가족당이라는 사실도 함께 발표했다.

안기부의 이날 수사결과 발표는 정계, 학계, 언론계 등 사회 각계각층에 있는 2백여명의 관련 ‘혐의자’를 대상으로 참고인 조사와 동향 내사를 계속하겠다는 수사방침을 밝히는 것으로 끝을 맺었다.

그러나 안기부의 발표가 모두 사실이라면 이날의 발표문 내용에는 안기부 스스로 자신의 무능을 깊이 반성하고 자기 내부부터 수사의 칼을 들이대 겠다는 다짐이 포함돼 있어야 했다는 지적이 높다. 고 교수가 최근까지도 이른바 ‘장성 프로젝트’로 알려진 안기부 프로젝트를 통해 대북정책에 관여해온 사실이 관계자들의 증언을 통해 드러났기 때문이다.

고 교수와 가깝게 지낸 한 사회학자는 “고 교수가 보직을 받지 못한 장 성 5∼6명과 팀을 이뤄 1주일에 한차례씩 정신문화연구원에서 만나 대북 관계에 대한 안기부 프로젝트를 수행해 왔다”고 말했다. 이 학자는 “고 교수가 체포되기 바로 전 주에도 프로젝트를 위해 정신문화연구원에 나갔 다가 장성들이 늦게 오는 바람에 정신문화연구원의 다른 교수와 예정에 없던 점심식사를 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고 구체적으로 증언했다. 장성 프로젝트의 구체적인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어쨌든 안기부의 안방이 ‘고정간첩’에게 열려 있었던 셈이다.

안기부가 직원을 채용하기 전에 그 후보자들에 대해 실시하는 신원조회는 특히 엄격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사관학교에 입학하거나 다른 중요 정부기관에 들어가려는 데 안기부의 신원조회에서 자신도 모르고 있던 친 척의 부역사실이나 월북사실이 문제가 됐다는 이야기가 우리 주변에서 그 리 듣기 어려운 이야기가 아니고 보면 안기부가 그 직원들에 대해 실시하 는 심사의 강도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직책상 안기부와 깊은 관련을 맺는 인사들에 대한 신원조회도 이에 못지 않게 까다로울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이번 수사결과 발표를 보면 고 교수는 서울대 재학 당시 6·25가 일어나자 의용군으로 자진 입대했다가 생포돼 거제도 포로수용소에 수용 된 전력이 있으며, 또 6·25 당시 월북해 김일성대 교수로 재직한 삼촌을 둔 것으로 돼 있다. 이에 대해 안기부는 “보수인사로 행세해 어용교수라 는 비난까지 받았던 고 교수가 고정간첩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었 다”며 스스로도 놀랐다는 말을 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놀랍다 못해 기 가 막힌 것은 이런 중대한 사안에 대해 안기부가 변명아닌 변명을 늘어놓 고 국민이 납득했으리라고 안이하게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참 이상한 고정간첩”

고 교수는 북한에 포섭된 뒤 사회보장심의위원회 위원(1967년), 국무총리 실평가교수단 교수(1968년), 남북적십자회담 자문위원(1973년), 국토종합 개발심의위원(1986년), 문화체육부 문화정책개발원장(1995년) 등의 요직 을 역임했다. 모두 국가의 정책결정에 영향을 끼치거나 중요한 정보에 접 근할 수 있는 자리다. 36년에 걸친 고 교수의 ‘암약’에 안기부과 그 전 신인 중앙정보부에 가장 큰 책임이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러나 고 교 수와 가깝게 지낸 사람들이 참고인 조사와 동향내사를 받고 있다는 이야 기는 나오고 있지만 고 교수에게 프로젝트를 주고 중요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길을 터준 관련자들에 대한 조사가 진행되고 있다는 소식은 어디에 서도 들려오지 않고 있다.

안기부는 고 교수에 의해 누출된 중요 정보가 별로 없다는 데 그나마 안 도하는 것 같다. 실제로 고 교수는 많은 중요 정보를 접할 수 있는 위치 에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직책을 통해 얻은 정보를 거의 북에 전달하지 않 았다고 한다. 안기부 발표에 따르면 고 교수가 36년간 암약하며 북한에 전달한 정보는 지난 73년 7월 평양에서 열린 남북적십자회담 때 “남쪽이 회담 마지막날 이산가족 확인과 상봉을 위한 면회소 설치를 제의한다”는 내용과 지난 89년 6월에 “박 대통령이 미국의 견제로 원자탄을 만들지 못했다”는 내용이 전부다. 고 교수를 잘 아는 일부 교수들 사이에 “고 정간첩이라도 참 이상한 고정간첩”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

이와 관련해 서울대에서 고 교수와 함께 오래 근무했던 한 교수는 “고 교수가 거제도포로수용소 출신이라는 것은 고 교수 주변에서 알 만한 사 람은 다 아는 사실”이라고 말하고 있다. 고 교수의 의용군 자원입대와 고 교수 삼촌의 월북사실을 이번 수사과정에서 처음 알았다는 안기부의 발표가 거짓일 수도 있는 것이다. 이 교수의 말이 사실이라면 안기부는 고 교수와 오랫동안 깊은 관계를 맺어오면서 누구나 다 아는 기초적인 사 항조차 몰랐을 정도로 ‘곰바우’ 였거나 아니면 다른 어떤 목적을 위해 진실을 은폐하고 있거나 둘 중의 하나다.

어쨌든 고정간첩이 국가 중요정책에 접근하는 것을 허용했다는 것만으로 도 보안감사권을 가지고 국가보안업무의 기획과 감독을 맡고 있는 안기부 와 그 전신인 정보기관은 책임을 면할 수 없다.

이번에 체포한 여간첩 강연정에게서 아무런 정보도 얻어내지 못하고 자살 하게 만든 것도 그냥 넘길 문제는 아니다. 침투한 뒤 석달 가까이 전국을 활보하고 있는데도 눈치조차 채지 못하고 있다가 주민의 신고로 경찰이 붙잡아 준 간첩을 지키는 일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우리나라 최고정보기 관의 현주소를 극명하게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간첩들이 잡힐 경우 독약 을 이용해 자살하도록 교육받고 내려온다는 것은 상식이다. 안기부는 알 몸 상태에서 엑스레이까지 동원해 입안과 항문 등 몸 구석구석을 뒤졌으 나 여성의 몸 은밀한 곳에 숨겨둔 이 독약앰플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변명 했다. 안기부의 변명을 수용하더라도 강씨에게서 잠시도 눈을 떼지 않고 철저히 감시했는데도 과연 강씨가 자신의 몸 깊숙한 곳에서 독약을 꺼내 입에 집어넣을 수 있었을지는 의문이다.

이와 함께 부부간첩 가운데 아내는 일체의 진술을 거부한 채 자살을 하고 남편은 자신의 임무는 물론 고정간첩망에 대해서까지 술술 털어놓았다는 것도 석연치 않은 뒷맛을 남긴다. 이 석연치 않은 느낌은 ‘수사보안상 문제 때문에 자세히 설명할 수는 없는’ ‘오랫동안 축적된 수사기술 및 기법을 총동원’한 결과라는 수사책임자의 설명만으로는 가시지 않는다.


‘수사계획 공개’에 미심쩍은 눈초리

이번 안기부 수사발표에서 또 한가지 의아한 점은 보안유지를 생명으로 하는 대공사건수사에서 이례적으로 자발적으로 대규모 내사사실을 알리고 수사계획까지 공개한 점이다. 안기부는 또 관계자의 입을 통해 “대선을 앞둔 시점이라 이번 발표대상에 포함시키지는 않았으나 정치권 인사 다수 와 서울대 교수 1∼2명 등 다수 인사들의 간첩연계 혐의가 잡히고 있다” 는 구체적인 정보까지 흘렸다. 이와 같은 안기부의 태도는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있는 정치권과 국민에게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키고자 하는 의도를 은연중 드러낸 것으로 해석된다.

이런 수사방침의 중요한 근거는 고정간첩인 고 교수가 안기부 조사과정에 서 했다는 진술인 것으로 보인다. 안기부의 수사발표에는 고 교수가 수사 과정에서 했다는 “각계에서 활동하고 있는 내 제자의 절반이 자생적 사 회주의자”라는 요지의 진술 외에 2백여명의 각계 인사의 관련을 뒷받침 할 아무런 구체적인 근거도 나타나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한 사 회학 전공교수는 “고 교수의 진술은 안기부의 수사확대의 근거가 되는 심각한 발언”이라면서 “그러나 그 이야기가 사회학 전공자들에게 끼칠 영향을 생각해보면 고 교수가 정말 그렇게 이야기했는지, 했더라도 어떤 맥락에서 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대학에서 사회학 물을 먹은 사람들은 고 교수가 진술하면서 ‘자생적 사 회주의자’라는 표현을 사용했다는 점에 대해서도 미심쩍어 하고 있다. ‘자생적 사회주의자’라는 용어는 지난 79년 당시 유신정권이 민주화운 동세력을 탄압하기 위해 조작한 크리스찬아카데미사건 때부터 공안기관들 이 쓰기 시작한 용어다.

김정수 기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12월04일 제 18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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