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

차렷! 대우 앞으로

(사진/국회 국방위 국방부 확인 감사. 국방부는 사업자 선정을 차기정부로 넘기라는 국회의 요구까지 묵살했다. )

작전명 ‘제2율곡비리’. 국방부의 차기잠수함사업(SSU)을 두고 세간에서 일컫는 말이다. 국방부가 대양해군 건설을 목표로 추진중인 2조원 규모의 1천5백t급 차기잠수함 획득사업을 둘러싸고 제기된 의혹의 실체가 수면 위로 급부상하고 있다. <한겨레21 182호 참조>

국방부의 이청남 방위산업실장은 지난 21일 기자간담회에서 “1천5백t급 차기잠수함사업은 대우중공업이 맡게 된다”고 전격 발표했다. 불과 3일 전인 18일 이정린 차관 주재로 열린 국방부 확대획득협의회에서도 차기잠 수함 사업자를 선정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진 터여서 이 발표는 모두를 놀 라게 했다.

현대 가처분신청 내자 속전속결

국방부가 이처럼 속전속결 작전으로 나온 것은 현대중공업이 지난 11월18 일 국방부가 대우중공업과 수의계약을 할 수 없도록 해달라며 ‘방위산업 참여권 침해금지 가처분신청’을 서울지방법원에 낸 것이 직접적인 영향 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현대중공업의 김정국 사장은 가처분신청에서 “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국방부는 원칙적으로 차기잠수함사업을 경쟁입찰에 부쳐야 하고 예외조항에 의거해 방산업체로 부터 수의계약 방식으로 제조·구매하는 경우라 하더라도 반드시 2인 이 상으로부터 견적서를 받아 비교·검토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고 주장했 다. 그는 또 “더욱이 현재와 같은 어려운 경제상황에서 경쟁체제를 통한 다면 척당 1억달러 이상의 외화절감과 좀더 유리한 기술도입 조건이 가능 한데도 유독 특정업체와 수의계약을 한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강 조했다.

국방부의 전격발표에 놀란 것은 현대만이 아니다. 지난 10월25일 국회 대 정부 질문에서 잠수함 추가획득사업에 의혹을 제기하며 사업자 선정을 새 정부 출범 이후로 미룰 것을 요구했던 국회의원들도 당혹감을 감추지 못 하고 있다. 당시 고건 총리가 “국방부의 개량형잠수함획득사업은 최종 평가분석 결과가 나오는 대로 관련규정과 절차에 따라 공정하고 투명성있 게 추진하겠다”고 약속한 것을 믿고 있다가 뒤통수를 맞은 꼴이 됐기 때 문이다.

국방부가 수의계약 방식을 고집하면서 내세운 명분은 크게 두가지. 이청 남 방산실장은 “중복투자를 방지하고 국가자원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잠수함 건조업체를 1개 업체로 지정해 유지한다는 것이 국방부의 일관된 입장”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잠수함사업은 극도의 보안성이 요구되는 사업으로 우리가 요구하는 성능이 담긴 자료 등을 기술도입업체인 외국에 공개할 수 없어 공개 경쟁입찰이 어렵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현대는 전혀 납득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현대 관계자는 “현대와 양해각서(MOU)를 교환한 프랑스와 스웨덴의 경우 대우의 기술도입선인 독 일 HDW사에 비해 저렴한 건조비용과 유리한 기술이전을 약속하고 있는데 도 국방부가 대우와의 수의계약을 강행하려는 이유가 뭐냐”면서 “오스 트레일리아, 칠레 등은 잠수함 기종을 선정할 때 독일, 스웨덴, 프랑스 등의 국가를 경쟁시켰는데 우리만 보안을 이유로 경쟁입찰을 회피하고 있 다”고 비난했다.

국방부의 차기잠수함 사업방식 및 사업자 결정 절차에도 석연치 않은 점 이 많다. 우선 국방부는 지난달 18일 확대획득협의회에서 ‘개량형잠수함 사업 관련 규정’을 새로 만들어 차기잠수함사업을 수의계약 방식으로 추 진할 수 있는 근거는 마련했지만 사업자는 해군이 추후 지정토록 했는데 도 이청남 방산실장이 특정업체 선정 사실을 공공연히 밝힌 것은 납득하 기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한나라당 하경근 의원은 “방산실장의 발표는 명백한 절차무시며, 월권을 한 방산실장은 파면감”이라고 지적했다. 또 18일의 확대획득협의회에서는 지난달 17일 끝난 현대와 대우에 대한 평가 분석 결과가 전혀 논의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져 국방부가 처음부터 특정 업체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는 의혹이 불거지고 있다.

국방부 밖 특정권력 작용설도 파다

국방부 안에서도 이견이 커 결론을 내리지 못했던 사업자 선정방식이 전 격 결정된 배경에 대해서도 궁금증이 많다. 방산업계의 한 관계자는 “지 난달 열린 확대획득협의회에서는 별도의 규정신설을 통해 특정업체를 사 업자로 선정하는 것은 세간의 의혹을 살 우려가 있다는 입장과 수의계약 강행을 주장한 입장이 맞서 결론을 내리지 못했는데 한달여 만에 다시 열 린 확대획득협의회가 전격적으로 수의계약을 결정한 배경에는 국방부 밖 특정권력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얘기가 파다하다”고 말했다.

국방부가 사업자 내정 방침을 공표했지만 차기잠수함사업이 국방부의 뜻 대로 순항할지는 아직 미지수다. 당장 법원이 현대의 가처분신청을 받아 들일 경우 국방부는 제동이 걸리게 된다. 설령 가처분신청이 기각되더라 도 그동안 제기된 의혹이 불식되지 않을 경우 차기잠수함사업은 다음 정 권에서 다시 제2의 율곡비리로 도마 위에 오를 가능성이 높다는 게 중론 이다.

곽정수 기자 한겨레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