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초점

선경, 표정관리 하세요

(사진/선경건설이 지난 94년 완공한 멕시코 케데레이타 석유화학공장. 선경은 2000년 6월까지 이런 공장 9개를 더 짓게 된다.)

선경건설이 우리나라 해외플랜트 건설사상 최대규모의 해외건설공사를 따 냈다. 선경건설은 지난 11월17일 멕시코 국영석유회사(PEMEX)가 발주한 석유화학공장 건설공사를 25억달러(2조5천억원 가량)에 수주했다고 밝혔 다. 외환위기로 정부가 IMF 구제금융을 신청하는 등 한국 경제에 대한 우 울한 전망이 팽배한 가운데 나온 한줄기 햇살 같은 소식이다.


겸손전략으로 일본 등 경쟁사 제압

선경이 수주한 이 공사는 멕시코 북부 몬테레이시 근처의 석유화학공단인 케데레이타 지역에 청정연료를 생산하는 공장 9개를 새로 짓고, 기존의 1 4개 공장을 현대화하는 프로젝트다. 설계는 물론 기자재구입과 시공, 유 지·보수까지 전 공정을 선경의 컨소시엄이 직접 담당하게 된다. 지금까 지의 대형 해외건설공사가 대부분 토목공사 중심이었던 것과 비교할 때, 이는 한국의 건설업체가 해외에서 설계를 포함한 종합적 건설 능력을 인 정받기 시작했음을 상징한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실제로 지난 70년대 말 중동특수 이후 그동안 우리나라 건설업체들은 해 외시장에서 고전을 면치 못해왔다. 단순시공을 넘어선 종합적인 건설능력 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탓이었다. 그런 까닭에 토목공사보다 부가가치가 높은 플랜트 분야에서는 미국과 일본의 건설업체들이 그동안 세계시장을 독점하다시피 해왔다. 우리나라 건설업체들의 해외수주실적은 중동특수가 막바지에 이른 지난 81년 1백37억달러를 최정점으로 줄곧 하강곡선을 그 려 92년에는 28억달러까지 떨어지는 부진을 보였다. 그러다가 93년(51억 달러)부터 조금씩 살아나기 시작해 올해에는 선경건설, 그리고 최근 20억 달러 규모의 인도네시아 석유화학공장을 수주한 대림건설 등의 선전에 힘 입어 마침내 81년의 최고기록을 갈아치울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선경은 이번 수주전에서 미쓰비시상사 등 일본의 7개종합상사 컨소시엄, 멕시코의 건설회사인 부페테사 중심의 컨소시엄과 막판까지 치열한 경합 을 벌였다. 선경의 수주전략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겸손’전략. 선경은 지난해 9월 페텍스사가 처음 입찰초청을 했을 때만 해도 “규모가 너무 커서 들어갈 수 없다”며 올해 5월까지 줄곧 소극적인 태도를 고수했다. 물론 25억달러를 한꺼번에 조달해야 하는 파이낸싱 문제가 고민거리였다. 선경은 페텍스사가 “일본만 입찰에 참여하면 정치적으로 문제될 수 있다 ”는 뜻을 내비친 올해 6월에야 “그렇다면 초청자의 체면을 고려해 거절 할 수 없다”는 식으로 입찰 참여쪽으로 태도를 바꿨다. 그러나 이때는 이미 고민중이던 파이낸싱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상황이었다. 이번 공사 는 미국의 BTAB사를 중심으로 한 금융단이 공사진척도에 따라 우선 선경 쪽에 공사비를 지급하고, 공사가 끝난 뒤부터 페텍스로부터 공사대금과 이자를 10년 동안 나누어 받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직접 받는 공사비만 12억달러 넘어

선경건설은 이 공사를 수주하기 위해 독일의 지멘스(지분 15%), 멕시코의 트리바사 그룹(지분10%)과 컨소시엄을 구성했으며, 선경의 지분은 전체의 75%다. 공사비 가운데 금융단에 이자로 지급되는 8억달러를 빼고, 실제로 선경이 직접 받게 되는 공사비만도 12억7천5백만달러에 이른다.

해외건설시장은 최근 들어 경기침체를 겪고 있는 동아시아지역의 경우 당 분간 침체를 면하기 어렵겠지만, 중남미의 건설경기 활성화, 동유럽의 민 영화 작업 완료 뒤의 신규공사, WTO체제 등장으로 인한 국제입찰 증가 등 으로 앞으로 매년 6∼7%씩 성장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선경건설 김재 명 전무는 “그동안 우리나라 건설업체들이 해외시장에서 고전한 것은 설 계능력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데 원인이 있다”면서 “해외시장에서 경쟁 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현재 대부분의 건설회사가 분리해 운영하고 있는 엔지니어링 부문을 통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남구 기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12월04일 제 18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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