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작은권리 찾기

꼼꼼하면 권리가 보여요

가전제품 같은 비싼 제품은 물론이고 비교적 저렴한 아이들 옷을 한벌 사 더라도 김귀호(35. 인천시 남동구 만수동)씨는 꼭 제품 보증서를 꼼꼼히 살핀다. 구입한 물건이 비록 당장은 하자가 없더라도 하자보수 혹은 교환 기간중 고장이 발생하거나 미처 발견하지 못한 제품의 하자가 발생하는 경우를 대비하기 위해서다. 평소의 이런 노력은 구입한 물건이 하자 발생 때 큰 위력을 발휘한다.

96년 가을 동생이 구입했던 옷이 몇번 세탁을 하지도 않았는데 모양이 비 틀어져 못입게 되었을 때, 이미 생산이 중단된 모델임에도 새 제품으로 교환할 수 있었던 것도 김씨의 노력이었다. 처음에는 세탁 잘못과 생산된 지 1년이 넘는 제품이라는 이유로 교환을 거부했지만 신용카드 내역을 뒤 져 구입한 시기가 8개월 전이고 세탁방법 설명 어디에도 세탁기를 사용하 지 말라는 경고가 없는 제품 보증서를 들이미는 김씨 앞에서 꼼짝할 수 없었던 것이다.

김씨의 거실에 놓여 있는 텔레비전에도 사연이 있다. 백화점 할인판매를 통해 들여놓은 텔레비전이 구입한 지 일주일도 채 안돼 말썽을 부리기 시 작했다. 애프터서비스 직원이 한두시간 동안 끙끙대다 고쳤다고 돌아갔지 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다시 방문한 애프터서비스 직원이 이제는 괜찮 을 것이라고 큰소리 쳤지만 결과는 일주일도 못가 또 고장이었다. 다시 찾아온 직원은 방문수리로는 고칠 수 없으니 텔레비전을 들고가겠다고 했 다. 수리기간은 일주일이었다. 더이상 수리를 믿을 수 없었다. 무엇보다 도 더이상 그 제품을 신뢰할 수 없었다. 환불을 요구했다. 안 된다고 펄 쩍 뛰었지만 결국 그동안의 경위를 전단으로 만들어 아파트 단지에 돌리 겠다는 김씨의 공갈(?)에 손을 들고 말았다.

그러나 공갈만은 아니었다. 비록 김씨 때문에 손해를 입었다는 곳은 아직 없지만 김씨 때문에 장사가 나아졌다는 인사는 자주 듣는다. 괜찮다는 인 상을 남긴 상점은 어김없이 이웃들에게 추천하기 때문이다. “비록 구멍 가게일지라도 분명히 차별성이 있어요. 친절하고 성실하게 손님을 맞는 상점은 그만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김씨가 이웃들에게 신뢰를 받게된 것은 이런 것 때문만은 아니다. 받는 것 이상으로 돌려주기 위해 애쓰는 생활자세를 알기 때문이다.

김씨는 지금 자신이 살고 있는 인천시 남동구 남동사회복지관의 한글 선 생님이다. 한푼도 받지 않는 자원봉사 선생님이 된 것은 김씨 자신이 이 복지관에서 빵굽는 기술을 배우게 된 데 대한 보답이었다. “내 아이들에 게 기왕이면 엄마인 내가 직접 만든 빵이나 과자를 먹이고 싶었어요. 아 이들 건강에 해로운 재료는 안 쓸 수 있잖아요”. 빵굽는 기술을 배우면 서 의외로 한글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대학을 졸 업했다는 것을 알게된 복지관쪽의 부탁을 김씨는 거절하지 않았다. 한글 을 몰라 면허시험을 치르지 못했던 조그만 가구회사 사장, 버스 행선지를 읽지 못해 외출도 못했던 아주머니 등이 김씨의 제자들이다.

“남에게 피해를 주면서까지 살고 싶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피해를 감내하 면서 살고 싶지도 않아요.” 그러기 위해서 김씨는 남보다 조금 부지런히 산다. 권리는 지키기 위해 노력할 때 비로소 내것이 된다는 게 김씨가 경 험으로 찾아낸 권리찾기 방법이다.

윤승일 기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12월04일 제 18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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