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지구촌

학살의 땅 동티모르

(사진/세계가 경악한 학살 현장. 학살자들은 성폭행과 잔혹행위로 숨진 사체에 대검으로 십자가를 그리거나 `노벨상 만세' 등의 낙서를 남겼다.)

11월20일 오스트레일리아의 한 인권단체에 의해 공개된 ‘참혹한’ 사진 이 국제사회를 충격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회의(AP EC)를 며칠 앞두고 ‘동티모르국제센터’(ETIC)가 공개한 이 사진은 인도 네시아 군인들이 동티모르 현지 여성들을 폭행·학살하는 장면들을 담고 있다. 그동안 전세계 인권단체들의 규탄을 받아온 인도네시아 정부의 동 티모르인에 대한 학살이 증언을 넘어 ‘물증’으로 제시된 것이다.


인도네시아에 점령당한 후 비극 계속

알몸이거나 반쯤 옷을 벗긴 여성의 배를 담뱃불로 지지거나 못을 박는 장 면, 이미 숨진 현지인들의 주검에 낙서를 하는 장면, 웃옷이 벗겨진 여성 을 나무에 묶어놓고 복면의 군인이 성폭행하는 장면, 등을 못으로 찌르는 장면…. 보는 사람을 몸서리치게 할 정도로 잔인한 학살장면을 담은 이 사진들은 20세기말 ‘아시아 최후의 식민지’인 동티모르가 인도네시아에 의해 얼마나 잔혹하게 압살되고 있는지 전세계인에게 전했다.

‘인간이 인간에게 가할 수 있는 가장 잔인한 행위’를 생생하게 고발하 고 있는 이 사진들이 국제사회에서 엄청난 충격을 불러일으키자 인도네시 아 정부는 서둘러 ‘조작된 것’이라고 해명하고 나섰다. 그러나 마리아 소아레스 ETIC대변인은 “이 사진들이 인도네시아군에 의해 지난해 12월 께 촬영됐으며 몇주일 전에 입수됐다”며 “이 사진들은 인도네시아 군인 들이 동티모르에서 저지르고 있는 행위를 기록한 것”이라고 밝혔다.

동티모르는 75년 12월 독립을 선포한 지 9일 만에 인도네시아에 무력으로 강점당해야 했던 슬픈 역사를 갖고 있다. 당시 인구 60만이던 동티모르 인구의 3분의 1인 20여만명이 ‘독립’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내놓았지만 인도네시아의 27번째주로 편입되는 것으로 상황은 종결됐다. 그리고 22년 째 인도네시아 정부의 ‘잔혹한 식민통치’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 20여년간 ‘피와 투쟁의 역사’를 일궈온 동티모르인들은 지난해 10 월 동티모르의 카를로스 벨로 주교와 호세 라모스 오르타가 모베레민족저 항평의회 지도자가 노벨평화상 공동수상자로 발표되면서 독립운동을 벌여 온 국제여론에서만큼은 승리자가 되었다. 유엔인권위원회도 “사법당국에 의한 처형 실종 고문 및 자의적 구금 등의 인권탄압행위가 이뤄지고 있는 데 대해 깊은 우려를 표명한다”는 내용의 결의안을 가결시켰다.

인도네시아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난은 더욱더 거세질 조짐이다. 11월19일 에는 “인도네시아 군부가 지난 75년 동티모르 침공 당시 현지 무장세력 에게 취재활동중인 외신기자를 죽이도록 사주했다”고 당시 무장세력 지 도자였던 카라스칼로가 폭로했다. 카라스칼로는 오스트레일리아의 한 방 송프로그램에 출연해 “인도네시아군 대령이 당시 동티모르 사태를 취재 하던 호주 기자인 하미시 맥도널드 기자를 살해해 달라고 요청했다”며 “당국은 성가신 외신기자들을 고의적으로 살해하기 위한 작전을 펴기까 지 했다”고 폭로했다. 이에 따라 국제사회에서는 동티모르에서 전투를 취재하다 숨진 외신기자 5명이 사실상 피살됐을 가능성이 있다며 재조사 가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까지 나오는 등 인도네시아 정부의 잔혹상은 다 시 한번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고 있다.

그러나 인도네시아 정부는 이런 국제사회의 비난에 아랑곳하지 않고 있다 . 동티모르 독립운동을 하다 투옥된 지도자 구스마오를 석방해 달라는 넬 슨 만델라 남아공 대통령의 탄원도 ‘내정간섭’이라고 일축했다. 이번에 공개된 40장의 ‘참혹한’ 사진에 대해서도 인도네시아 정부는 ‘날조된 것’이라는 주장만 되풀이하고 있을 뿐이다. 국제사회의 비난은 ‘말 뿐 ’이지만 티모르해의 풍부한 유전자원의 ‘경제적 가치’는 현실적인 번 영을 가져다 줄 것으로 믿기 때문이다.

송현순 기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12월04일 제 185호


커버스토리 포커스 문화시대 특집 지난호 전체보기 처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