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프랑스 공산당의 역사 조르주 마르셰 사망

(사진/조르주 마르셰의 장례식. 우파인 자크 시라크 대통령이 "역사적 인물이 사라졌다"고 애도할 정도로 프랑스 현대정치사에 우뚝 선 거인으로 평가된다.)

“조르주 마르셰의 사망 소식을 전해 듣고 비통한 심경이다. 나는 그를 잘 안다. 그의 힘과 그의 신념의 진실성도 잘 알고 있다. 그는 오랜 세월 동안 프랑스 공산당의 역사뿐 아니라 프랑스 정치 전체에 한획을 그었다. 한 역사적인 인물이 사라진 것이다.”

지난 11월16일 숨진 전 프랑스 공산당수 조르주 마르셰의 죽음 앞에 이런 깊은 애도의 뜻을 표한 이는 공산당이나 사회당의 지도자가 아니다. 그와 는 적대적 입장에 있던 프랑스 우파 정치의 거장 자크 시라크 대통령이다 .

좌파 집권에 결정적 기여

말레이시아를 공식방문중이던 이날 조르주 마르셰의 사망소식을 전해 들 은 시라크는 평생 정적이던 전 공산당수의 죽음에 이념을 초월한 최대한 의 인간적 경의를 표했다. 리오넬 조스팽 총리를 비롯한 사회당 지도자들 도 잇따라 추도성명을 발표했다. 프랑스 정치계는 좌우정쟁을 초월해 ‘ 한 공산주의자의 죽음’을 프랑스 현대정치사를 풍미했던 ‘한 정치거장 의 죽음’으로 슬퍼했다. 공산당은 당사에 조기를 올렸고 전국의 공산당 사무실에 빈소를 만들었다. 이날 저녁 뉴스는 이 마지막 스탈린주의자의 죽음을 슬퍼하는 시민들의 표정을 비쳐 주었다.

조르주 마르셰의 장례를 맞는 프랑스인들의 이런 반응은 극단적 반공주의 에 익숙해 있는 우리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장면이었다.

11월16일 새벽 파리 라리부아지에르 병원에서 오랜 지병인 심장질환으로 세상을 떠난 조르주 마르셰는 프랑스 공산당이 창당된 해인 1920년에 태 어났다. 1972년 서기장에 취임해 1994년 현재의 당수 로베르 위에게 당수 자리를 물려주고 정계에서 은퇴하기까지 4반세기 동안 프랑스 공산당을 이끌어왔다. 그는 모리스 토레즈가 그랬던 것처럼 순수한 노동자 출신의 지도자였다.

그의 뛰어난 달변과 카리스마적 지도력은 프랑스 좌파를 이끌어온 힘이었 다. 서기장 시절 내내 줄곧 친소련 노선과 공산주의적 원칙을 고수함으로 써 ‘교조주의적 스탈린주의자’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마르셰의 죽음은 역사의 부침 속에서 현실보다는 원칙에 충실해온 프랑스 공산당을 객관적 으로 평가하는 하나의 계기가 되고 있다.

‘프랑스판 스탈린주의’로 평가되는 조르주 마르셰의 노선이 변화하는 국제정세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보다는 원론만을 고집하며 스스로 대중으 로부터 유리되어 갔던 것은 사실이다. 특히 프랑스 공산당은 79년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때 비판적 지식인들의 반대에도, 소련의 입장을 지지 하면서부터 결정적으로 대중의 지지를 상실했다.

70년대 초까지만 해도 제1당으로 30%를 넘는 표를 끌어모았던 프랑스 공 산당이 80년대 들어서는 10%대로 떨어지고, 에드가 모랭 등 쟁쟁한 지식 인들이 대거 공산당을 탈당했던 것은 이런 원칙주의적인 마르셰 노선의 실패로 평가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마르셰의 교조주의에도 불구하고 사회당 지도자들이나 일부 역사가들은 마르셰를 변화를 가져온 인물로 재평가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그는 당수 취임과 함께 72년 사회당-공산당 공동강령을 채택해 좌파연합 전선이라는 현실적인 노선을 채택했고, 81년 대통령선거 때는 사회당 후 보에게 표를 몰아줌으로써 미테랑의 당선과 좌파의 집권에 결정적 기여를 했다. 프롤레타리아 독재강령을 폐기했던 것도 마르셰였다.

서기장 사퇴해 공산당 혁신의 길 열어

소련과 동유럽의 공산주의 블록이 무너진 뒤 공산당의 변신이 요구되던 9 4년에는 스스로 서기장을 사직하고 개혁주의자인 로베르 위에게 당수 자 리를 물려주어 공산당 자기혁신의 길을 열어주기도 했다.

물론 우파 지도자 에두아르 발라뒤르 전 총리는 ‘다른 공산당들이 모두 자신의 과오를 반성할 때 유일하게 공산당 노선을 지켰던 것이 마르셰의 공산당이었으며 마르셰는 프랑스 공산당의 혁신을 가속화하기보다는 오히 려 제동을 걸었던 사람’이라며 혹독한 비판을 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좌파 내에서는 마르셰의 긍정적인 성과에 주목하고 있다.

조르주 마르셰에 대한 좀더 엄정하고 역사적인 평가는 시간을 두고 내려 질 것이다. 그러나 시라크 대통령이 말했던 것처럼 마르셰가 프랑스 현대 사에 굵직한 족적을 남긴 ‘역사적인 인물’이라는 사실에는 이론이 없어 보인다.

파리=최연구 통신원 한겨레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