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격동하는 재벌/동국제강그룹

“철강으로 세계재패!”

(사진/동국제강의 인천 제강소 전기로. 철강 외길만을 고집해온 동국제강그룹은 포항에 제2공장을 지음으로써 곧 연산 5백만t 생산규모를 갖추게 된다.)

서울 중구 수하동 을지로입구역 앞, 보람은행을 오른쪽에 끼고 골목 안으 로 들어서면 빌딩 숲속에 넒은 주차장이 딸린 3층짜리 건물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재계 18위 동국제강그룹 본사 사옥이다. “낡은 건물을 허물고 고층빌딩을 짓는다는 소문이 5년에 한번씩은 나돌았지요.” 지난 74년 청 계초등학교 교사를 인수해, 지금껏 쓰고 있는 이 건물에 대해 사원들은 이렇게 기억한다. 소문은 20년 넘게 그렇게 주기적으로 반복됐다. 지난 3 월에 건물 안쪽을 전면 개조했으니 빌딩을 짓는다는 얘기는 이제 몇년 동 안은 나오지 않을 것이다. 사원들은 “우리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비싼 주 차장에 차를 댄다”고 우스갯소리를 한다. 왜 1천3백평이나 되는 비싼 땅 을 주차장으로 놀리느냐는 말이다. 그러나 장상태(69) 회장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는 “제조업체는 1백만원만 있어도 설비투자에 먼저 써야 한다 ”는 말로 이에 대한 답을 대신한다. 동국제강의 3층짜리 사옥은 그런 기 업정신의 상징인 셈이다.


투자수익률, 30대 그룹중 1위

올해들어 철강기업들은 명암이 크게 엇갈렸다. 한보, 삼미는 무너졌고, 포철과 동국제강은 한마디로 잘나간다. 실제로 지난해 동국제강이 거둬들 인 실적은 잘나간다는 30대그룹조차 고개를 숙이게 만들 정도다. 동국제 강그룹은 지난해 매출액 3조7백50억원에 9백16억원의 당기순이익을 냈다. 수익력과 사업의 효율성을 나타내는 투자수익률(ROI)은 2.49%로 30대그룹 가운데 단연 1위였다. 2위인 선경의 1.29%의 2배에 이르는 수치다. 선진 외국에서도 우량기업으로 통하는 정도다. 물론 동국산업(39억) 조선선재( 34억) 동화산업(12억) 세화통운(6억) 4개사가 지난해 적자를 냈지만, 적 자액은 적었다. 자기자본비율 31%에 부채비율 217%로 재무구조도 탄탄하 다. 동국제강그룹의 이같은 선전은 극심한 불황 속에서 이뤄졌다는 점에 서 더욱 눈에 띈다.

동국제강그룹은 지난 54년 창업주인 고 장경호 회장이 설립한 동국제강을 모태로 성장해, 오늘날 16개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이 가운데 9개 기 업이 철강관련 업체다. 건설이나 운송도 철강사업과 간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기업들임을 감안하면 철강과 무관한 업체는 중앙종합금융과 신중앙 상호신용금고, 그리고 연합철강을 인수하면서 떠맡은 농기계 생산업체 국 제종합기계 정도에 불과하다. “어느 한분야에서 1등을 하지 못하고서는 다른 분야에서도 1등을 할 수 없다.” 장 회장이 그동안 철강 외길을 걸 어오면서 내세운 지론이다. 동국제강그룹은 실제로 지난 85년 연합철강을 인수한 이래 더이상 기업인수에 손대지 않았고, 사업다각화에도 나서지 않았다.

동국제강의 지속적인 성장에는 물론 ‘시운’도 많이 작용했다. 봉강(철 근)을 주로 생산해오던 동국제강은 지난 88년 1천5백억원을 투자해 포항 에 연산 1백만t 규모의 후판(厚版)공장을 세웠다. 당시 후판은 포철의 독 점품목으로, 민간업체들이 신규진출을 망설이던 때 과감히 투자한 것이다 . 공장이 막 가동될 무렵, 90년부터 조선 경기가 활기를 띠면서 동국제강 은 그 해에만 3백억원의 순익을 냈다. 92년 2천억원을 투자해 첨단 전기 로 철근공장을 세웠는데, 그것도 곧이어 신도시 건설 등으로 철근수요가 폭증하면서 풀가동됐다.

그러나 동국제강이 오늘날 건실한 성장을 계속하고 있는 비결은 “호경기 에는 내실을 다지고 오히려 불경기때 투자를 늘리는 경영전략이 더 크게 작용했다”는 게 주변의 평이다. 그룹의 한 관계자는 “우리는 10년 동안 한번도 단기자금을 써본 일이 없다. 설비투자할 때는 금리가 싼 외화자금 을 얻어 쓰고, 이익이 남으면 현금으로 보유했다. 그리고 번 돈이 쌓이면 그것으로 다시 투자했다”고 말한다. 지난 93년 아직 철강경기가 호황일 때 동국제강은 감량경영에 들어갔다. 장 회장이 일본의 철강업체들이 엔 고로 몸살을 앓는 것을 보고 일찌감치 내실화에 착수한 것이다. 당시 동 국제강은 명예퇴직제를 도입해 관리직 4백여명을 유통쪽으로 분가해 내보 내고, 신규인력채용도 거의 중단했다. 반대로 불황이 시작되던 지난 95년 부터 모두 8천억원을 들여 포항에 제2공장을 짓기 시작했다.


철근 대신 후판을 주력품목으로

(사진/장상태 동국제강 회장이 공장을 돌아보며 사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동국제강이 이때 연산 1백만t의 봉강을 생산하는 부산공장의 부지 13만평 을 평당 3백만원에 매각한 것도 부동산 팔기가 극도로 어려워진 지금 생 각하면 절묘한 적시타였다. 이는 당시 한보철강이 1백만t 생산규모의 봉 강공장을 짓고 있어 공급초과가 우려된데다 설비도 낡아 봉강의 생산규모 를 감축하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그때 시기를 놓쳤다면 제값을 받기 어 려운 것은 물론이고, 부동산 매각조차 생각하기 어려울 일이었다.

동국제강은 올해 말부터 포항제2공장의 후판(1백50만t)과 형강(型鋼)공장 (72만t)이 본격적으로 가동을 시작하면, 연간 5백만t의 생산규모를 갖추 게 된다. 현재 봉강 1백80만t, 후판 1백10만t, 형강 40만t을 생산하고 있 는 동국제강그룹은 특히 후판공장의 가동으로 봉강에 비해 부가가치가 큰 후판을 앞으로 주력품목으로 생산하게 된다. 봉강은 내년부터 부산공장이 가동을 중단함에 따라 생산규모가 크게 줄어든다.

철근장사는 사실 별로 남는 게 없다는 게 그룹 관계자의 말이다. 특별한 기술이 필요하지 않은 만큼 원가를 얼마나 줄이고 설비를 하는 데 얼마나 돈을 아끼느냐가 성패의 열쇠라는 것이다. 실제로 장 회장이 가장 신경을 쓰는 부분도 고철수입가격이다. 해마다 3달가량 해외에 머무르는 장 회장 의 출장은 대부분 고철수입과 관련한 협의 때문이다. 올해 고철가격은 지 난 여름 1t당 최고 1백62달러까지 올랐다가 지금은 1백50달러로 조금 낮 아졌다. 그러나 환율이 크게 오르면서 원가부담은 크게 늘었다. 철근은 수출가격이 1t에 2백70달러 정도로 낮은 까닭에 수출은 거의 하지 않는 만큼, 환율상승에 따른 부담이 크다. 물론 국내 철근 가격이 지난해 27만 원대에서 올해는 재고부족으로 최고 32만원대까지 올라 여전히 수익은 좋 은 편이다.

동국제강그룹은 당분간 신규투자는 자제한다는 방침이다. 코렉스 설비를 짓는다는 장기계획도 아직은 검토단계일 뿐이다. 어차피 포항 제2공장이 가동을 시작하는 만큼 이제 수익을 내야 다른 투자도 생각해볼 수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포철과 함께 공동인수의사를 밝힌 바 있는 한보철강에 대해서도 입장은 단순하다. “철강산업은 뻔하다. 경기가 좋다고 해서 매 출이 폭증하는 것은 아니다. 어느 정도 가격에 인수해야 이익이 남는지 뻔한데 무리하게 베팅을 할 수는 없다.” 동국제강은 포항 제2공장을 지 으면서 생산규모 2백60만t 설비에 8천억원이 들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10 만t생산규당당 가격을 3백억원으로 잡으면 적당하다는 것이다. 한보철강 A지구(봉강 1백만t, 핫코일 2백만t)의 경우 생산규모가 3백만t인 만큼 인 수가격은 9천억원, 많아도 1조원 정도여야 수지가 맞는다는 게 동국제강 쪽 주장이다.


현대 제철산업 진출 “신경 쓰이네”

한보철강의 인수문제는 인수가격 협상이 결렬됨에 따라 일단 뒤로 미뤄졌 다. 하지만 동국제강이 한보철강을 인수할 경우 얻을 수 있는 것도 많다. 핫코일을 직접 생산하면 연합철강과 동부산업에서 전량을 소화할 수 있다 . 그동안 포철과 수입에 의존하던 핫코일을 확보함으로써 명실상부한 철 강그룹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되는 것이다.

그룹쪽은 최근 현대가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제철산업 진출에 대해서 는 ‘노코멘트’로 일관하고 있다. 그룹 관계자는 “그쪽은 고로방식 아 니냐”고 말한다. 동국제강은 전기로 방식인만큼 별 영향이 없을 것이라 는 얘기다. 그러나 현대가 제철사업에 뛰어들 경우 동국제강이 주력품목 으로 생산할 후판부문은 서로 조금 겹치게 되는 만큼 조금은 신경이 쓰인 다는 눈치다. 그러나 동국제강이 앞으로도 철강 외길을 걷는다는 데는 결 코 변함이 없다. 장 회장은 “사람들은 철강산업을 사양산업이라고들 하 지만, 세계 최고기업은 어차피 살아남는다. 아직 철기시대인만큼 앞으로 도 철강수요는 줄지 않을 것”이라고 사원들에게 강조한다고 한다.

동국제강 사원들은 올해들어 고철값이 크게 오르자 매월 팀을 나누어 공 장 주변에 흩어져 있는 고철줍기행사를 정기적으로 벌이고 있다. 원자재 비용을 한푼이라도 줄여보자는 뜻에서다. 지난 1/4분기에만 동국제강 한 회사에서 1백억원의 세전수익을 올렸고, 국제 고철가격도 이제 내렸지만 고철줍기는 요즘도 계속되고 있다. 세계 최고의 철강그룹 꿈은 어쩌면 그 런 작은 일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정남구 기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12월04일 제 18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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