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표지이야기/내가 좋아하는 대통령 후보

김대중 후보

강문규/ 전 YMCA 전국연맹 사무총장

지난 30여년을 통해 우리나라 정치인으로 김대중씨만큼이나 그 인품과 정 치노선에 대한 논란이 많은 사람도 드물다. 그것도 찬반의 양극적 태도가 충돌한다. 나는 지난 30여년간의 기독교관계 기관에서 일해 오면서 멀지 도 가깝지도 않는 적당한 거리에서 김대중씨를 지켜봐 왔다. 나는 권위주 의 시대에 민주화투쟁에 일생을 바친 김대중씨가 언론에 왜곡돼 비치는 것을 보면서 사람의 평가가 이렇게 다를 수 있는가를 느꼈다.

나와 김대중씨와의 첫 만남은 내가 일본 도쿄에서 기독교관계 국제기구의 아·태지역 책임자로 일하고 있을 때였다. 유신검거 선풍이 불어닥칠 당 시 일본을 방문하고 있던 김대중씨는 그곳에 일년 정도 잔류하다 73년 납 치되었다. 나는 김대중씨가 일본에 머무는 동안 조국의 민주화운동을 정 열적으로 전개하던 것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당시 일본을 주름잡던 보 수정치의 풍토 속에서 남한의 민주화운동세력을 규합한다는 것은 우둔한 정치적 행동으로 보였다. 그러나 그는 화려하게 지낼 수도 있는 망명정객 으로 호의호식하기보다는 우직하게 조국의 민주화운동의 길을 선택함으로 써 결국은 일본의 진보와 보수정치 모두로부터 지지와 후원을 얻어낼 수 있었다. 민주화운동을 하던 그는 본국으로 납치되었으나 김대중씨는 일본 사회에 한 사람의 신화적 정객으로 남았다.


늘 안타까운 편견과 비난

그뒤 미국의 외교적 압력으로 생명의 위협에서 천재일우로 살아난 그는 서울의 동교동 자택에 길고 지루한 연금생활을 강요당하게 된다. 그때 나 는 외국의 방문인사들을 그가 연금된 자택으로 가끔 안내하기도 했다. 그 가 결국 제5공화국의 조작된 정치재판으로 사형언도를 받을 때 나는 그의 재판을 방청하면서 그의 신념과 삶의 태도 등을 지켜볼 수 있었다.

내가 74년부터 96년까지 YMCA전국연맹의 사무총장으로 봉직하는 동안 그 도 다른 정치인들과 마찬가지로 우리 시민단체들의 감시와 비판의 대상이 었다.

김대중씨를 지지하는 데는 두 가지 큰 이유가 있다.

첫째 이유는 당시의 유신정치문화 속에서 다른 사회영역과 마찬가지로 정 치계도 결국은 위장적인 유신야당으로 전락해 가는 풍토를 우리는 참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사형언도를 받으면서도 민주주의를 포기하지 않 았다. 생명을 걸어 민주주의를 지킨 것이다.

두번째 이유는 군사정부가 끈질기게 그에게 가해오던 이른바 색깔론 시비 에 대한 문제였다. 우리 기독교관련 단체들은 그의 저서와 사상, 통일론 등을 통한 이른바 사상검증을 꾸준히 계속하였고, 결국 그에 대한 색깔론 시비는 독재정치가 타협하지 않는 민주투사에 대해 만들어낸 사상적 모함 과 매도작업의 결과임을 검증해낼 수 있었다.

나는 이른바 순수 영남인으로서 우리 영남인들이 그에게 갖는 편견과 비 난을 늘 안타깝게 생각해 왔다. 군사정권에 의한 영·호남 양극화 조작이 심할 때, 김대중씨가 해방직후 호남인 조재천씨가 대구에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사례를 회상하면서 안타까운 표정을 짓던 것을 기억한다. 그는 말 할 수 없는 노력가로서 나를 여러 번 놀라게 했다. 특히 70년 당시의 그 서투른 영어가 지금은 국제회의에서 자기주장을 당당하게 펼쳐갈 정도로 수준급에 이른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지금 내가 생각하는 것은 초지일관된 국정운영에 대한 균형잡힌 정치감각과 그의 지도력이다. 우리 국민이 한번 믿고 지원할 때 라고 본다. 그것이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를 진일보시키는 일이라고 생각한 다. 최근의 각종 토론에서 보듯 그의 해박한 지식과 예리한 분석력, 그리 고 그의 포용력을 믿어 국정을 맡겨도 손색이 없을 것으로 나는 믿는다. 국정책임자의 두뇌가 예리할 때만 예리한 두뇌들을 결집해 국가운영에 동 원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를 위해 지금은 정권교체가 최 우선 과제라고 믿는다. 그렇게 할 때 지금의 김영삼 대통령이 강조하는 역사청산도 결실을 맺을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 한겨레신문사 1997년12월04일 제 18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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