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

심장이 터질 듯한 마지막 승부!

11월26일 대통령 후보 등록과 함께 본격적인 선거운동이 시작됐다. 사실 상의 선거운동이 올초부터 진행돼왔던 만큼 마라톤에 비교하면 대선전은 이제 결승점을 눈앞에 둔 셈이다.

많은 주자들이 당초 대선 마라톤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시간이 경과하면 서 뒷심이 부족한 후보들은 스스로 포기하거나 다른 후보와 손을 잡고 중 도 하차했다. 이제 남은 사람은 한나라당의 이회창 후보와 국민회의 김대 중 후보, 국민신당의 이인제 후보 그리고 국민승리21의 권영길 후보 등이 다.

이인제 2위 회복에 비관적 전망

그동안의 많은 부침이 있었다. 11월 초순까지만 해도 김대중 후보의 독주 속에 이인제 후보가 2위로 뒤쫓는 형국이었다. 이회창 후보는 제1당 후보 로서는 전례없는, 여론조사 3위를 벗어나지 못해 후보교체론과 민주계의 탈당 압력에 시달렸다. 그러나 이회창 후보는 11월 중순 갑자기 10% 이상 의 지지율 상승을 보이면서 이인제 후보를 누르고 2위에 올랐다. 김 대통 령에 대한 탈당 요구로 시작된 홀로서기와 11월 중순 신한국당과 민주당 의 합당 성사가 그 원인으로 분석됐다.

앞으로 주요 관전 포인트는 유력한 3후보간의 판세가 1강2중 구도로 가느 냐 아니면 2강1중 형태를 띠느냐이다. 이는 이회창 후보의 지지율 상승폭 에 달려 있다. 즉, 이회창 후보의 지지율이 계속 상승세를 유지할 경우 대선전은 김대중-이회창 두 후보간의 양강싸움으로 좁혀질 전망이다. 반 면 이회창 후보의 상승과 이인제 후보의 하락 추세가 멈춰 두 이 후보간 의 지지율 격차가 5% 이내에 머물 경우 대선전은 김대중 후보의 독주 속 에 두 이 후보간의 2위 다툼이 끝까지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물론 이인제 후보가 이전처럼 다시 기운을 회복해 2위로 올라서 3위를 큰 폭으로 앞설 경우에는 김대중-이인제 후보간의 싸움으로 압축된다. 그러 나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정치판을 뒤흔드는 변수가 발생하지 않는 한 이 인제 후보가 이회창 후보를 따돌리고 재역전시키기는 힘들 것으로 보고 있다. 이회창 후보의 지지율 상승으로 인해 한나라당의 당 내분이 일단 가라앉았으며, 대규모 추가 탈당 가능성이 거의 없어졌다는 점이 한 요인 으로 지적된다.

이러한 기본 구도에도 앞으로 남은 기간 동안 대선판도에 크든 적든 영향 을 끼칠 변수들은 아직 수없이 많다. 이들 변수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할 경우 판도 자체가 뒤흔들 수 있다. 따라서 현 시점에서 누구도 최종 승자 를 점치기가 어렵다.

남은 변수 가운데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3당간의 ‘폭로전’이다. 폭로전 의 효과는 이미 증명된 바 있다. 7월21일 신한국당 전당대회 이후 50%에 가까운 폭발적인 지지율을 기록했던 이회창 후보가 10%로 지지율이 떨어 졌던 것은 아들의 병역문제였다. 이인제 후보도 30%에 육박하는 지지율에 서 김 대통령의 신당지원설이 나오면서 그야말로 하루아침에 이회창 후보 에게 2위자리까지 내줬다. 네거티브 전략이 선거전 판도에 얼마나 큰 영 향을 끼치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영남정서’야말로 최대 변수

따라서 각당과 후보들은 겉으로는 정책대결을 외치고 있지만, 자신이 불 리해지는 상황이나 상대가 유리해지는 상황에서는 언제든지 새로운 폭로 전을 단행할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다. 각당이 이에 대비한 비밀팀을 꾸리고 있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국민회의와 국민신당은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에 대한 폭로전을 이미 재개했다. 국민회의는 새로운 내용의 병역 문제를 다시 제기하고 있으며, 국민회의와 결합한 자민련은 이회창 후보의 부동산 투기 의혹을 제기했다. 국민신당도 이회창 후보에게 타격 이 될 만한 소재를 수집해 이를 사용할 시기만 재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 다. 한나라당쪽도 상대 특히 이인제 후보에 대한 파일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폭로전이 어느 쪽에게 플러스가 되고 마이너스가 될지는 폭로가 현실화되기 전에는 전혀 감잡기가 힘들다. 폭로의 근거가 있느냐 여부와 설령 근거가 있다고 하더라도 막판에는 지지자들을 더욱 결속하게 하는 역효과(?)도 발휘하기 때문이다. 92년 대선 때의 부산 초원복국집 사건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와 연관된 것이 바로 ‘지역감정’ 변수이

다. 지역감정 폭발 우려지역은 물론 영남이다. 지역에 기대는 우리 정치 의 문제로 인해 어떤 지역이든 ‘지역주의’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지 만, 영남의 경우는 특정후보나 지역을 외면하는 배타성을 깔고 있기 때문 이다. 바로 영남의 ‘반김대중’ 문제이다. 영남의 경우 후보에 대한 지 지의 기준이 개인적인 선호도가 아니라 때때로 ‘저 후보는 절대로 안 된 다’는 배타적인 선입견이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정치인들은 이를 자신 에게 유리하게 이용하려 한다.

이번 대선에서도 지역감정의 문제는 예외가 아니다. 이미 한나라당에서는 영남권 단합론을 내세워 지역감정 변수를 활용하려는 움직임이 구체화되 고 있다. 김윤환 공동선대위원장은 이미 11월18일 경남 필승결의대회에서 “우리가 남이냐. 영남이 단합해 이회창 후보를 대통령에 당선시키자”고 말했다. 현재 대구·경북=이회창 후보 우세, 부산·경남=이인제 후보 우 세로 나뉘어 있는 영남권의 판도가 막판에 어느 한쪽으로 몰릴 것이라고 한나라당이나 국민신당쪽이 기대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실제로 영남표는 막판에 어느 한 후보에게 몰릴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정 치권에서는 보고 있다. 부산출신의 한 재선의원은 “부산·경남의 유권자 들은 현재 이회창 후보와 이인제 후보로 나뉘어 있지만, 막판에는 김대중 후보의 당선을 막기 위해 대부분 될 사람에게 몰릴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회의 김대중 후보가 영남 표쏠림을 막고 일정 부분 지지표로 흡수하 기 위해 박태준 의원을 끌어들여 ‘DJT연합’을 성사시켰지만, 당장 별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점도 이런 현상을 어느 정도 예고하는 것이라 고 할 수 있다. ‘영남정서’야말로 앞으로 최대의 변수인 셈이다.

이회창-이인제 단일화 가능성은?

이와 관련된 다른 문제는 이른바 ‘여권후보 단일화’ 변수이다. 이회창 후보와 이인제 후보가 단일화하거나 한 사람이 포기해 사실상의 단일화가 이뤄지느냐의 문제이다. 재미있는 대목은 종래에는 이회창 후보의 사퇴론 이 큰 흐름을 이뤘으나 이제는 이인제 후보사퇴론이 집중적으로 제기되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김덕룡 선대위원장을 비롯해 한나라당 민주계 의원들이 선봉에 서고있어 눈길을 끈다. “김대중 후보의 당선을 막기 위 해서는 지지율이 낮은 이인제 후보가 사퇴하는 것이 도리”라는 게 이들 의 주장이다.

그러나 이인제 후보는 어림없다는 반응이다. “지지율은 언제든지 바뀔 수 있으며, 설령 3위를 하더라도 이회창 후보의 손을 들어주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게 이인제 후보 측근들의 한결같은 얘기이다. 한 측근은 “끝 까지 가서 패배하면 다음을 기대할 수 있지만, 도중에 그만둘 경우 정치 인 이인제는 끝장이다”고 말했다. 다른 한 핵심 측근도 “만약 그만둘 경우 차라리 김대중 후보를 지지하면 했지 이회창 후보를 밀지는 않을 것 ”이라고 말했다. 여권 후보단일화의 가능성은 그만큼 낮아 보인다.

선거에 영향을 끼칠 주요 변수 중 하나는 ‘언론문제’이다. 언론 변수는 먼저 대선 사상 처음 이루어질 후보자간 합동 텔레비전 토론회가 있다. 개별 후보자를 상대로 한 토론과 달리 합동토론회는 후보자간 비교 검증 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부동표를 끌어들일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각당이 지역별 유세보다 합동TV토론회에 더욱 신경을 쓰고 있 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언론 변수에서 토론회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보도의 편파성’ 문제이다 . 보도의 편파성 문제는 항상 논란이 돼 왔지만, 이번 선거에서는 더욱 심하다는 게 정치권의 대체적인 평이다. 이인제 후보는 이와 관련해 “특 정신문이 특정후보를 밀고 있다”며 “특정후보를 민다면 정정당당 그 이 유를 밝히라”고 문제제기를 했다. 언론이 특정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혹은 낙선시키기 위해 노골적이면서도 교묘한 형태의 불공정보도를 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어쨌든 언론의 편파성도 하나의 대선변수 임에는 틀림없다.

이와 함께 후보의 건강 문제 등도 돌발적인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 특히 고령으로 건강 문제를 공격받고 있는 김대중 후보가 건강에 이상 증상을 조금이라도 보일 경우 상당한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고정간첩 사건, 북풍도 심상찮아

또 선거 때만 되면 나타난 북한과 관련한 북풍 변수나 경제·사회적 문제 가 발생해 변수로 작용할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 북풍 변수는 고영복 서 울대 명예교수의 고정간첩 사건으로 이미 잠복돼 있다. 공안당국이 고 교 수의 간첩사건과 관련해 정계와 학계, 언론계 인사 등에 대한 광범위한 내사를 진행중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변수가 선거판을 완전히 좌우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이들 변수들 을 극복할 수 있거나 유리한 상황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역시 각당 이나 후보들의 주체적인 대응이다. 결국 12월18일 대선 마라톤의 최후 승 자는 각종 변수들의 도전에 대한 후보쪽의 응전 결과에 따라 결정날 것이 다.

김종철 기자 한겨레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