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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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땀흘려 일하는 사람들이 정치의 주인으로 나설 때만이 우리의 21세기는 희망적일 수 있다.” 국민승리21의 후보로 이번 대통령선거에 출마한 권 영길 민주노총 위원장의 출사표다. 권 후보는 이번 대선에서 사회복지대 혁명 5개년 계획 추진, 평생고용체계 구축, 주 40시간 노동제, 재벌 해체 , 30% 여성고용 할당제 등을 주요공약으로 내걸었다. 그러나 이번 출마에 서 주요 관심사는 권 후보의 당선여부가 아니라 득표율이다. 이번 대선을 통해 진보정당 건설의 교두보를 마련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가 권 후보 출마의 성패를 가르는 잣대인 것이다.
선거 끝나도 지역조직은 계속
그동안 몇차례에 걸쳐 시도된 진보진영의 독자적인 정치세력화 노력은 현 실정치의 두터운 벽에 가로막혀 번번이 좌절돼 왔다. 지난 92년 총선에서 민중당은 66명의 후보를 냈지만 의석을 한석도 얻지 못했고, 득표율도 정 당의 존립요건인 2%에 못미치는 1.5%에 그쳐 1년4개월 만에 좌초했다. 같 은해 대통령선거에서도 민중의 독자적 정치세력화라는 깃발을 내걸고 백 기완씨가 출마했지만, 역시 1%의 득표율에 그쳤다.
그러나 이번 대선에서 권 후보의 출마는 지금까지 진보진영의 선거 참여 와는 그 성격이 조금 다르다. 그동안 진보진영의 선거참여가 노동자들의 조직적 지원없이 이뤄졌다면 이번 선거는 87년 이후 노동운동 10년의 결 산이라 할 수 있는 민주노총이 주축이 돼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또 그동 안 독자적 정치세력화에 상대적으로 소극적이었던 전국연합도 전면적으로 결합하고 있다. 그런 까닭에 국민승리21이 이번 대선에서 어떤 성과를 내 느냐는 진보진영 독자적 정치세력화 가능성을 사실상 최종적으로 가늠하 는 시금석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정치조직으로 활동을 해온 국민승리21은 지난 11월19일 약식으로 창당대회를 열고 ‘정당’으로 출범했다. 선거운동 과정에서 무소속후보 로서의 불리함을 조금이나마 극복해보자는 뜻에서다. 선거가 끝나면 정당 은 곧 해산한다. 그러나 국민승리21은 지역조직 결성은 계속할 계획이다. 현재 15개 광역시·도를 비롯해 1백개 지역에 설립한 지역조직을 앞으로 2백개까지 확대한다는 것이다. 이번 선거를 통해 국민들에게 대안의 정치 세력으로서 존재를 확인받고, 이를 통해 내년 지자체 선거에서 정치조직 이름으로 대거 후보를 내는 방식으로 참여한 뒤, 다음 총선에서 본격적인 정당조직으로 후보자를 공천해 원내 의석을 얻겠다는 것이다.
등록 뒤 TV연설에 지지율 상승 기대
국민승리21쪽은 “이번 대선에서 도대체 얼마만큼 득표를 해야 성공이라 할 수 있느냐”에 대해 말을 아끼고 있다. 목표치가 주는 심리적인 부담 감도 있겠지만, 단순히 득표율만으로 성패를 판단하기는 곤란하다는 것이 다. 그러나 최소한 총선에서 비례대표 의석을 배분받을 수 있는 3%, 적어 도 정당의 존립요건이 되는 2% 이상은 득표해야 하지 않느냐는 것이 국민 승리21 안팎의 견해다. 현재 권 후보에 대한 지지율은 1.7%(<한겨레> 11. 17일 조사)에 머물고 있다. 이는 지난 8월의 0.7%, 9월의 1%에 비하면 꾸 준한 상승세지만 기대에는 아직 턱없이 못미친다.
이에 대해 국민승리21쪽은 “지지도가 제대로 반영된 것은 아니다”고 해 석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 3월과 5월 두차례에 걸쳐 <한겨레>가 조사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진보진영의 후보가 독자출마할 경우 지지율이 각각 7.6%와 7.0%로 나타난 바 있다. 권 후보에 대한 지지율이 떨어진 것 은 무엇보다 여·야간 정권교체 가능성이 커지면서, 진보세력의 독자적 정치세력화에는 찬성하면서도 당장은 ‘정권교체’쪽에 표를 던지는 사람 이 많기 때문으로 풀이되고 있다.
미디어선거라고 불릴 정도로 TV의 영향력이 커진 이번 선거전에서, 국민 승리21과 권 후보가 한번도 제대로 된 TV토론에 참가하지 못하는 등 언론 의 지나친 홀대도 지지율을 끌어올리는 데 어려움으로 작용하고 있다. 최 근 권 후보의 지지율이 그나마 상승하고 있는 것도 몇차례의 TV출연이 크 게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국민승리21쪽은 “후보등록 이후에는 돈을 들여서라도 TV연설이나 광고에 출연할 것인 만큼 지지율이 상승할 것”이 라고 기대하고 있다. 국민승리21은 민주노총 조합원들을 중심으로 25억원 , 전국연합 진보정치연합을 중심으로 25억원 등 모두 50억원의 선거자금 을 모금해, 그 가운데 절반을 TV출연과 언론광고에 투자할 계획이다. 물 론 그렇게 해도 다른 후보들에 비하면 3분의 1 정도에 그친다.
국민승리21이 선거전에서 집중공략할 대상은 지역적으로는 영남과 경인지 역, 세대별로는 20∼30대, 계층별로는 노동자와 고학력 사무전문직 등이 다. 또 지지층이 상대적으로 견고한 김대중 후보보다는 상대적으로 지지 의 견고함이 떨어지는 이회창 후보와 이인제 후보의 틈새를 노린다는 전 략이다. 이를 위해 국민승리21은 한나라당에 대해서는 그동안의 반노동자 정책과 경제파탄, 부패정치의 책임을 묻는 방식으로, 이인제 후보에 대해 서는 “3김씨에 기대어 일신의 안위를 이어온 출세주의자이며 다수결의 원칙을 무시한 민주주의의 파괴자”라는 내용의 공세를 펼칠 방침이다. 디제이피 연대에 대해서는 “군사독재시절 민주인사를 탄압한 수구세력과 함께 하는 정권교체는 반쪽 정권교체”라고 공세를 펼치고 있다.
긍정적인 측면에서의 홍보전략으로는 “사회복지를 통해 일하는 사람들의 인간적인 생활보장”과 함께 “보수 일색인 현 정치구도에서 진보세력의 형성을 통한 균형 발전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특히 “경제상황 이 극도로 악화된 상황에서 기득권세력이 이를 빌미로 서민생계 위협을 가속화할 것인 만큼, 이를 얼마나 막아내느냐는 국민승리21의 득표율에 달려 있다”는 점을 집중홍보할 방침이다.
조직력 면에서는 어느 후보보다 강점을 갖고 있다고 자신한다. 때문에 조 직 중심의 선거운동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 무급 중앙당 실무자만 1백20 여명이 일하고 있고,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꾸려지고 있는 ‘실천단’도 대선이 끝날 때까지 10만명을 목표로 계속 모집하고 있다. 이에 따라 국 민승리21쪽은 연설원을 중심으로 한 소규모 선거유세를 전국적으로 벌여 나가고, 권 후보도 지역을 순회하며 유권자들과 직접 접촉함으로써 “지 역감정을 뛰어넘는 민심의 대반란을 일구어 내겠다”는 계획이다.
“가장 큰 벽은 지역주의”
한때 거론되던 정책연합론이나 중도사퇴론은 국민승리21 안에서는 이제는 거의 자취를 감췄다. 국민승리21 관계자는 전국연합 소속 조직 가운데 전 국농민회총연맹이 국민후보에 소극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는 데 대해 “이 번 선거운동을 계기로 독자적 정치세력화를 추구하는 인사들과 제도정치 권으로 흡수될 인사들이 확연히 구분될 것”이라며 “선거전에서 끝까지 간다는 것은 이제 확고하다”고 말했다.
상대적으로 열세인 자금사정, 그리고 언론의 홀대 속에 국민승리21이 이 번 대선에서 과연 소기의 성과를 거둘 것인가? 국민승리21의 양시모 부대 변인은 “우리나라의 정치문화에서 진보세력이 넘어야 할 가장 큰 벽은 역시 지역주의”라고 말한다. 이번 대선을 통해 지역정치구도가 얼마나 깨트려지느냐도 국민승리21이 앞으로 의미있는 정치세력으로 등장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의 중요한 변수가 될 전망이다.
정남구 기자
© 한겨레신문사 1997년12월04일 제 18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