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건강만세

어린이 비만도 질병이다

살찐 것이 바로 부의 상징이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경제가 발달해 모 두가 풍요롭게 먹고 살 수 있게 되면서 이제 우리 사회도 비만을 근심어 린 눈으로 바라보게 됐다. 아기가 포동포동하면 건강하다고 좋아하는 부 모도 많지만, 살이 찌다 못해 뱃살이 접혀 층이 진 아기를 보는 소아과 의사의 심정은 착잡하다. 비만은 단순히 미관상 좋지 못하다는 것 이상으 로 아이의 육체와 정신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같은 나이, 같은 성별의 평균 몸무게보다 대략 20%가 많으면 일단 비만으 로 의심해야 한다. 비만의 대부분은 우리 몸이 필요로 하는 것 이상의 음 식을 먹어서 생긴다. 보릿고개를 겪던 시절에는 상상도 못할 만큼 식생활 습관이 바뀌어 기름진 음식을 많이 먹고 여러 가지 군것질 거리들이 주변 에 널려 유혹하니 아이들이 어찌 참겠는가. 게다가 최근에는 컴퓨터나 비 디오 따위의 운동과는 거리가 먼 오락을 즐기는 아이들이 늘어나면서 비 만인 아이들이 점점 많아질 수밖에 없다. 어린아이들조차 과거의 입시지 옥을 방불케 할 만큼 여러 가지 교습에 시달리다 보니 음식을 먹어 그 스 트레스를 푸는 아이들도 비만이 될 것이다. 물론 자발적으로 많이 먹는 아이들만 비만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포동포동한 아이들이 건강하다는 전통적인 관념에 사로잡혀 먹이고 또 먹이는 부모는 아기를 비만에 걸리 게 한다.

비만은 정말 곤란하다. 아이들에게 육체적 문제와 정신적 문제를 일으키 고 사회적인 생활을 위축되게 한다. 비만인 아이들은 흔히 성인병이라고 생각하기 쉬운 고혈압, 당뇨, 지방간, 동맥경화에 잘 걸리고 잠잘 때 숨 쉬기 힘든 경우가 생긴다. 게다가 몸무게가 늘면 다리와 척추에 무리가 와 관절염이 잘 생기고 어른이 돼서도 비만이 될 확률이 높다. 요즈음 아 이들은 다른 아이들의 시선을 무척이나 신경쓰기 때문에 자신감의 상실로 정신적인 타격을 입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부모는 잊지 말아야 한다. 심 한 경우 친구들로부터 따돌림을 받고 사회활동에 지장을 받는 수도 있다. 비만인 아이들은 치료를 해줘야 한다. 우선 비만이 문제란 것을 모든 식 구들이 깨닫는 것이 치료의 첫 단계다. 그리고 식사습관을 조절해야 하는 데 골고루 먹으면서 양은 줄이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어릴 때부터 일정 한 시간에 격식을 갖춰 식사하는 습관을 기르고, 텔레비전을 보거나 책을 보면서 식사하는 것은 피하는 게 좋다. 그릇도 조금 작은 것으로 주고 조 리하는 음식물의 크기도 조금씩 줄인다. 식사는 꼭꼭 씹어서 15분 이상에 걸쳐 천천히 먹어야 적게 먹어도 허기를 덜 느낀다.

비만 치료에는 가족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아이들은 인내심이 부족하므로 다른 식구들이 맛있는 것을 먹는 걸 보면 참지를 못한다. 아이에게만 먹 지 말라고 하는 것은 효과가 전혀 없다. 가족이 같이 식습관을 개선해야 하는 것이다. 적당한 운동도 필수다. 과격한 운동보다는 적당한 운동을 지속적으로 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파트 15층을 운동삼아 아이와 같이 걸 어다니는 부모도 있다. 만일 친구들에게서 뚱뚱하다는 이야기라도 듣는 날에는 속으로 고민하기 시작하므로 외로움이나 우울증에 빠지지 않게 아 이의 마음을 잘 헤아려 주는 것이 좋다.

하지만 아이 때는 어른과 달리 성장과 발달을 하는 중요한 시기다. 특히 어린아이 때는 몸과 두뇌가 가장 왕성하게 성장하는 때이므로 함부로 굶 겨 살을 뺐다가는 평생을 두고두고 고생할 수도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어린아이일수록 현재의 몸무게를 유지하고, 아이가 크면서 상대적으로 날 씬하게 만드는 방법을 택하는 것이 좋다. 간혹 교육상 아이들에게 음식을 남기지 말고 다 먹게 강요하는 경우도 있는데 비만인 아이들은 억지로 다 먹게 해서는 안 된다. 비만은 치료하기 힘든 것도 문제지만 좀 빠졌다고 조금만 방심했다가는 다시 찌게 된다. 꾸준히 몸무게를 재고 그래프를 그 리며 천천히 조절해 나가는 게 최선의 방법이다.

하정훈/ 소아과 전문의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12월04일 제 18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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