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삶

전교조 최고령 해직교사로 정년퇴직 맞는 이규삼씨

(사진/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이 있는 동심의 천국을 가꿔온 이규삼씨. 아이들은 할아버지 선생님과 함께 교실을 해방구로 만들었다.)

난장판이었다. 쉬는 시간에 찾아간 그의 교실은 온통 아수라장이다. 꼬맹 이 서너명이 옹기종기 머리를 맞대고 수다를 떨다가는 이내 까르르 웃음 을 터뜨린다. 한 남학생은 살금살금 뒤꿈치를 들고 여학생 뒤로 가더니 플라스틱 자로 뒤통수를 톡 때린다. 여학생이 관심없다는 듯 뚱한 표정을 짓자, 머쓱해진 녀석은 제자리로 돌아와 늘어지게 하품을 한다. 이 정도 는 그래도 양반축에 든다. 숨바꼭질 하는 녀석, 으랏샤 한판 씨름판을 벌 이는 녀석들, 교실에서 띵요띵요 총싸움을 하는 꼬맹이들을 보면 혼이 쏙 빠지는 것 같다. 그렇게 쉬는 시간이면 교실은 온통 아이들의 해방구가 된다.

정작 이상한 것은 선생님이다. 목청을 돋우며 떠들지 말라고 고함을 지르 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무관심하게 아이들을 방치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 다. 오히려 십여명의 아이들에게 포위돼 같이 수다를 떤다. 게다가 그의 무릎은 세상에서 가장 안락한 의자다. 벌써 두세명의 아이들이 엄마 무릎 인 양 올라앉아 응석을 부리고 있다. 이쯤되면 그의 무릎은 이미 그의 것 이 아니다. 옆반의 학생들까지 원정을 오기 때문에 그의 무릎을 차지하기 경쟁은 늘 치열하다. “선생님, 이번 생일날 초대할게요.” “응, 그래 고마워. 하지만 엄마한테는 신경쓰지 말라고 전해줘.” “선생님, 사랑해 요.” “응, 나도 사랑한단다.” “선생님, 우리 엄마하고 아빠하고 어저 께 싸웠어요.” “응, 그러니? 앞으로 싸우지 말라고 네가 말해 보렴.” 그의 가슴과 무릎을 차지한 아이들은 금세 순한 어린양이 돼버린다.


아이들의 ‘키팅 선생님’, 부인은 보조교사

서울 중랑구 망원동 동원초등학교 2학년 1반 이규삼 선생님.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 나오는 키팅 선생님을 쏙 빼닮았다. 이마쪽으로 쭉쭉 내 린 숫없는 머리칼하며, 펑퍼짐한 얼굴. 웃음 소리까지 키팅 선생님(로빈 윌리엄스)를 닮았다. 하지만 그는 할아버지 선생님이다. 올해 나이 예순 다섯, 내년 2월이면 정년퇴직이다. 그나마 담임으로서 아이들과 함께 호 흡하는 것은 올 11월 말까지 뿐이다. 퇴직을 앞둔 3개월은 관례상 휴가이 기 때문에 신참 강사에게 담임자리를 내줘야 하는 것이다. 어느새 그가 수업할 수 있는 날은 손가락에 꼽을 정도가 됐다.

교실엔 그말고 교사 한명이 더 있다. 할아버지 선생님이라고 학교에서 배 려해준 보조교사는 아니다. 일부러 자원봉사를 나온 학부모도 아니다. 그 의 아내 강규희(58)씨다. 강씨가 교사자격증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무면허에 무보수 교사일 뿐이다. 아이들도 강씨가 담임선생님의 아내인 줄은 까맣게 모른다. 애초부터 ‘미술 선생님’이라고 소개했기 때문이다 . 눈치빠른 동료교사들도 반신반의하면서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지만 딱히 자세한 내막은 모르는 모양이다.

강씨가 남모르게 ‘늙은’ 남편의 일을 도와주게 된 과정을 이해하는 데 는 한참의 설명이 필요하다. 정년퇴직을 눈앞에 두고 있지만 이 교사의 공식경력은 4년차 풋내기 교사일 뿐이다. ‘89년 전교조 해직교사 1호’ ‘최고령 해직교사’였던 그가 94년 ‘신임교사’로 발령받았기 때문이다 . 교육운동, 파면, 복직…. 돌아보면 참 얄궂은 운명이었다. 그게 덫이라 면, 자신이 놓은 덫에 걸려든 형상이었다.


‘빨갱이’ 잡으려다 ‘참교육’에 반해

(사진/이규삼씨는 '빨갱이' 교사를 잡으려다 젊은 교사들의 열정에 반했다. 해직기간에 고난을 함께 한 부인 강규희씨는 보조교사로 남편의 일손을 덜어주었다. )

그가 몸담고 있던 초등학교의 교장은 직원조회 때마다 입버릇처럼 되뇌곤 했다. “일부 젊은 교사들 가운데 빨갱이가 있다. 그들이 경거망동하면서 교육계를 좀먹고 있다.” ‘빨갱이’란 소리를 들으니 피가 거꾸로 솟았 다. 존경했던 친형이 한국전쟁 때 교사라는 이유만으로 빨갱이한테 ‘처 형’을 당했던 것이다. 팔을 걷어붙이고 이 놈들을 발본색원하겠다고 달 려들었다. 그게 얄궂은 운명의 시작이었다.

하지만 종로의 한 허름한 다방에서, 이 교사가 자청해서 만난 빨갱이 교 사들은 좀처럼 본색을 드러내지 않았다. 오직 우리나라 교육현실의 문제 만을 이야기할 뿐이었다. 속이 타들어갔다. 술을 잔뜩 먹이면 본성이 드 러날 거야. 젊은 교사들과 코가 삐뚤어지도록 술을 마셨다. 그리곤 젊은 교사들의 교육에 대한 열정에 반해버렸다. 빨갱이의 본색을 벗기기는커녕 그도 빨갱이가 돼버린 것이다.

연이어 그의 마음을 뒤죽박죽 헤집는 사건들이 터졌다. 같은 교회에 다니 던 신도의 아들이 삼수를 하다 천호대교에서 자살해버린 것이다. 서울대 법대를 진학하려던 그의 조카딸은 수학문제를 풀다가 문제지를 찢어 허공 에 던지고는 갑작스럽게 발작을 했다. 그리고 식물인간. 교사라는 직업이 한없이 부끄러웠다. 하나님께 매달렸다. “죽어 넘어지는 나의 아이들을 위해 내가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가족회의에서 아내는 한술 더 떴 다. “당신이 한두번 생각하고 결정한 것도 아니고 오랜 고민 끝에 결정 한 것이다. 이 나라 교육을 위해 나서는 게 올바르다고 생각한다.” 숫제 그의 등을 떠미는 듯한 말투였다. 수배, 도청, 미행은 이제 그와 아내가 공동으로 부담할 몫이 되었다.


4년차 신임교사?… 부부의 천국 만들기

복직을 하고 첫 출근하기 전날, 아내는 남편의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았 다. 설레는 마음은 부부가 마찬가지였지만, 그새 부쩍 늙어버린 남편의 얼굴이 안쓰러웠다. 남편도 은근히 외모에 신경이 쓰이는 눈치였다. 아내 는 오이를 썰어 정성껏 마사지를 해주었다. 출근하는 날 아침은 얼굴에 파운데이션을 발라주었다. 다소나마 주름살을 감추기 위해서였다. 아이들 한테 ‘늙은이 냄새’가 난다는 쑥덕거림을 듣지 않기 위해 옷에 향수도 뿌렸다.

복직하고 난 뒤 2년간은 담임을 맡지 않았기 때문에 그나마 부담이 덜했 다. 하지만 지난해 처음으로 3학년 담임을 맡고부터는 사정이 영 달랐다. 40명이나 되는 아이들 한명 한명에게 모두 정성을 쏟자니 손이 부족했다. 보조교사가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갈수록 간절해졌다. 학부모를 모시자니 맞벌이 부부가 많아 그것도 여의치 않았다. 내심 아내를 염두에 두고 집 에 가서 하소연을 했다. “이제 아이들과 생활할 시간이 얼마남지 않았다 . 알뜰하게 아이들을 키우고 싶은데 손이 너무 달려 속상하다.” 아내에 게 보조교사로 도와달라는 말은 입 밖에 꺼낼 수 없었다. 월급 한푼도 없 는 일을, 게다가 해직이다 뭐다 고생만 시켜온 아내에게 차마 다시 한번 고생해달라고 대놓고 말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냥 에둘러 이야기할 뿐 이었다.

서너차례 이야기를 하자, 아내는 남편의 작전이라는 것을 금세 눈치챘다. 거부하자니 딱히 집에서 할 일도 없었다. 무엇보다 남편이 그렇게 원했던 일을 돕고 싶었다. 아내는 국문학을 전공한 데다 미술에 남다른 소질이 있었다. 결혼 전에는 교사생활을 했으니 일부러 구한다 해도 그만한 적임 자가 없었던 것이다. 일주일에 두세번씩, 아내는 그렇게 무자격 무보수 교사로 남편과 손을 꼭잡고 출퇴근을 시작했다. 아내는 교실 뒤쪽에 자리 잡고 앉아 장난치는 아이들, 한눈파는 아이들을 조용이 다독여준다. 머리 를 쓰다듬기도 하고, 손을 꼭 잡아주기도 한다. 미술시간에는 담임과 보 조교사의 위치가 뒤바뀌기도 한다. 그런 아내가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지 모른다. 부부는 아이들의 교실을 그렇게 ‘천국’으로 바꿔 나갔다.

강씨가 무면허 교사로 일한 지 벌써 2년째. 하지만 고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보조교사 생활을 시작한 지 서너달 만에 그만두려고 했던 적이 있었다. 힘에도 부치고 아이들과 너무 정드는 게 왠지 두려웠다. 고민 끝 에 하루는 아이들에게 물었다. “얘들아, 아줌마가 보조교사 이제 그만 할란다. 한달에 한번 정도만 나오면 안 되겠니?” 2학년 꼬맹이들은 어디 서 배웠는지 오른팔을 쭉쭉 뻗으며 격렬하게 데모를 했다. 그래 아이들이 저렇게 원하는데. 그래서 눌러앉은 게 남편과 함께 무자격 교사로 정년퇴 직을 하게 됐다.


“아이들이 정말 보고 싶을 거예요”

하교시간이면 교실은 더욱 북적거린다. 집으로 갈 때 ‘문안인사’를 하 러 찾아오는 꼬마손님들을 맞느라 두 부부교사는 정신이 없다. 모두 지난 해나 지지난해 그와 아내의 손을 거쳐갔던 아이들이다. 그 아이들을 일일 이 손을 꼭 잡아주거나 등을 두드려준다. 늘 보면서도 오랜만에 만나는 신랑각시처럼 그렇게 다정하기만 하다. 그가 반을 맡고 있는 꼬마들도 이 에 질세라 “선생님, 빠빠이 안 하면 나 집에 안 갈래” 하며 사랑투정을 부린다. “응. 그래그래 알았어. 집에 잘가∼.”

아이들을 보내고 남은 교실엔 두 부부가 덩그러니 앉아 있다. “떠난다고 생각하니 너무 아쉬워. 40여년을 넘게, 정말 지겹도록 교단에 섰는데도 왜 이렇게 서운하지.” 그의 뒷주머니에서 나온 하얀 손수건이 눈가에서 멈춘다. 아이 사랑은 아내도 남편 못지 않다. “당신이 정년퇴직하면 나 도 아이들이 정말 보고 싶을 거예요. 특히 뒤에서 소외됐던 아이들이 더 보고 싶을 것 같아요.” 손을 꼭 잡고 운동장을 구석구석 둘러보는 두 부 부의 눈엔 풀 한포기도 예사롭게 보이질 않는다.

이용인 기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12월04일 제 185호


커버스토리 포커스 문화시대 특집 지난호 전체보기 처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