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논단

코리안인베스터스아브루탈…

채만수/ 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부소장

수백년간의 직·간접적인 식민지 착취로 빈곤이 가득한 마닐라지만, 비행 기 위에서 보는 야경은 거대한 그림이었다. 필시 그 땅을 영구히 식민지 로 지배하겠다는 야무진 꿈의 한 표현이었을 도시계획의 산물인 시내 중 심가의 거대한 원형 도로와 그로부터 뻗어나간 방사형 도로의 불빛은 장 관이었다.


필리핀 민중들의 희망

그런데 현지의 노동자들은 그 도시를 거리낌없이 ‘끔찍한’(terrible) 곳이라고 불렀다. 극소수의 엄청난 부자와 절대 다수의 빈민들이 어우러 져 빚어내는, 인구 1천7백만명의 마닐라는 언뜻 보기에도 정말 그러한 곳 이었다. 켜켜이 쌓여 있는 빈곤, 지저분하기 짝이 없는 길거리에 주저앉 아 아무렇지도 않은 듯 무언가를 먹고 있는 바짝 마른 사람들의 군상, 젖 먹이를 안은 채 도로 한복판에서 자동차 문을 두드리며 구걸하는 젊은 엄 마들(?)…. ‘과연 이들의 삶에 어떤 희망이 있는 걸까?’ 하는 의문을 자연스럽게 갖게 된다.

하지만 그러한 생각은 극히 피상적인 관찰이나 편견에서 오는 것이다. 대 지주들의 토지독점과 봉건적 수탈, 그들이 다른 한편에서 펼치는 자본주 의적 착취와 부패, 그들을 엄호하면서 자연자원과 노동력을 착취하는 제 국주의, 그리고 이러한 착취·빈곤·부패를 보증하는 정치적 억압에 맞서 싸우는 필리핀 민중(Bayan)의 투쟁과 그들의 검고 그윽한 눈에 담긴 결연 한 투지와 낙관. 이것들을 보게 된다면 이제, ‘과연 이들의 삶에 희망이 있는 걸까?’ 하는 의문은 당장 빈곤과 고통에 시달리며 싸우고 있는 민 중을 향해서가 아니라 그것을 강요하는 그들 사회의 지배자들과 제국주의 자들을 향해서 갖게 된다.

그런데 이 얘기는 또 다른 의미에서 바로 우리의 것이기도 하다.

홍콩의 한 사회운동단체가 주관하는 ‘지구화시대의 노동자 권리증진을 위한 워크숍’ 현장인 마닐라 교외의 한 노동자수련원에 한국의 우리 일 행이 도착한 것은 저녁 11시 경. 동남아 각국과 멕시코에서 온 20명 정도 의 노조지도자, 노동운동 활동가, 노동운동을 지원하는 변호사, 교수 등 이 모여서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만나서 반갑다’는 등의 의 례적인 인사를 나눈 뒤 그들은 얘기를 계속했는데, 한 5분쯤 지났을까, 일행 중 한명이 아직 화제에 끼어들지 못하고 있는 우리에게 미안했다는 표정으로 말머리를 돌렸다. 그런데 그 첫마디가 나를 아연 긴장시켰다. “유아프럼코리아?(한국에서 오셨지요?) 코리안인베스터스아베리브루탈( 한국의 투자자들은 아주 잔인해요).”

말문을 연 것은 타이에서 온 한 여성노동운동가였는데, 그의 말을 신호로 여기저기에서 “코리안인베스터스아브루탈! 코리안인베스터스아브루탈!” 소리가 잇따랐다. 베트남에서 온 두 사람은 60세 전후의 나이 때문인지 조용히 웃고만 있었는데 내가 “베트남에서는 어떻느냐?”고 묻자 그 대 답은 “올쏘노토리어스(역시 악명 높지요)”였다. ‘한국의 여성노동자와 그 운동의 실태’에 관한 발제와 토론이 있던 때에도 참석자들의 주요 관 심은 ‘한국의 여성노동자’가 아니라 오히려 한국 내의 ‘이주노동자’( 외국인노동자)의 실태와 그들에 대한 기업의 잔인한 처우에 관한 것이었 다.

그들에 따르면, 최근 동남아 국가들에는 일본, 대만, 홍콩, 한국 등 주로 동아시아로부터의 투자가 많은데, 노동자들에 대한 그들의 처우는 아주 형편없고 때로 잔혹하다는 것이다. 기아임금에 안전이나 보건시설이 전혀 안 되어 있거나 형편없을 뿐만 아니라 대개는 주야 맞교대로 장시간 노동 이 강요되고 있고, 폭행과 무단해고가 횡행하는데, 일본의 자본은 그래도 좀 나은 편이고, 대만과 특히 한국의 자본이 가장 잔인하다는 것이다. 노 동자들의 단결권과 단체교섭·행동권을 보장하고 일정 수준 이상의 노동 조건을 규정하고 있는 노동법들이 있지만, 외자유치에 급급한 정책 때문 에 억압적 규정 외에는 모두 사문화되어 있고, 당연히 산재사고도 많아 과로와 사고로 죽는 사람도 적지 않다고 보고되었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공장을 방문할 수 있겠느냐는 질문에는, “(마닐라 근교의) 한국이 투자 한 공장에는 노조가 한 군데도 노조가 없기 때문에 방문 교섭 자체가 불 가능하다”는 대답을 들었다.


왜 한국 자본은 특히 잔인한가

그들은 다행히 문제를 ‘한국’ 혹은 ‘한국인’의 문제로 파악하는 국가 주의적 사고 대신에 ‘자본의 착취’, ‘제국주의적 독점자본의 하청업자 ’(subcontractors) 등으로 파악하면서 한국의 노동자계급과 동남아 노동 자계급간의 ‘국제적 연대’를 강조했는데, 그럼에도 “왜 한국 자본은 특히 잔인하며,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거듭거듭 제기했 다.

“한국 자본이 동남아 등 해외에서 그 노동자들에게 그리고 국내에서 외 국 이주노동자들에게 벌이는 잔혹한 착취를 한국의 노동자계급이 단순히 초계급적인 인권문제로서만이 아니라 그들 자신에 대한 계급적 공격으로 인식할 때 상황은 바뀔 것이고, 그를 향해 지금 한국의 노동자들은 나아 가고 있다”는 것이 기껏 내가 줄 수 있는 대답이었다.

© 한겨레신문사 1997년11월06일 제 18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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