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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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한국영화를 알리는 최고의 기획물은 ‘김기영 회고전’일 것이다. 특히 <하녀>, <충녀>, <이어도>는 꼭 권하고 싶은 작 품들이다. 하지만 60∼70년대에 그가 만든 표현주의와 스릴러가 어우러진 이 정서는 단절되고 말았다. 김기영은 저주받은 작가인 셈이다.
<올가미>를 앞에 두고 에둘러서 김기영을 이야기하는 것은 이러한 전통단 절의 아쉬움 때문이다. 한국에선 소위 장사가 안 된다는 스릴러를 고집하 는 김성홍 감독의 성정은 옆에서 지켜보기에도 안쓰럽다. 다양한 장르 개 발은 영화문화를 풍성하게 해주며, 할리우드의 스펙터클에 대항하지 못할 바에야 이러한 장르 개발은 무엇보다도 생존문제와 직결된다. 뉴질랜드영 화는 ‘호러’ 장르 하나만으로 세계시장을 개척했으며, 피터 잭슨이라는 걸출한 감독을 할리우드에 입성시켰다. 우리 영화의 가장 큰 문제점은 흥 행 강박관념 속에 천편일률적 코미디에 주력하였다는 것. 그 시효는 벌써 바닥이 난 상태다.
뻔한 얘기지만 <올가미>를 주목하고자 했던 건 <블랙잭>이 제값도 받지 못한 채 물러난 이 영화시장에 뭔가 활력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그 러나 <올가미>는 스릴러가 갖춰야 할 기본적 함량에도 이르지 못한다. 스 릴러는 어느 영화보다도 지적인 장르다. 관객들은 영화 속에서 공포와 전 율뿐 아니라 감독과 지적 게임을 즐기는 것이다. 하나 관객들의 아이큐를 평가절하해 버린 설정은 배신감마저 들게 한다. 고부간 갈등이라는 뻔한 소재를 드라마게임 이상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요소는 계산된 연출 과 시나리오일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표면적 이야기 외에 다른 요소를 아무 것도 끌어오지 못한다. 김기영 영화들이 표면적인 이야기 외에 사회 환경 문제나 가정파괴 문제 그리고 하층민 문제를 교묘히 배치시키는 것 에 비하면 하늘과 땅 차이다. 표현에서도 사운드와 이미지의 병치를 효과 적으로 쓴 김기영 영화에 비해 이 영화는 일련의 과장된 장면에선 웃음이 나온다. 공포를 느껴야 할 순간에 웃음이라니….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이 영화가 지닌 보수적 발언이다. 영화는 고부간 갈등을 과격하게 실컷 묘사한 뒤 마지막엔 모든 것을 관용으로 끝맺는다. 며느리는 사죄하듯 남편과 시어머니의 뼛가루를 강물에 뿌린다. 이것은 자신이 만든 이야기를 통째로 부정하는 논리와 같다. 결국 과잉과 억압 사이에서 헤매는 혼란이야말로 우리 영화의 현주소를 알려주는 거대한 ‘ 올가미’가 돼버린 셈이다.
이상용/ 영화평론가
© 한겨레신문사 1997년11월06일 제 18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