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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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해외여행은 우리에게 낯익은 일이 됐다. 80년대 후반 대학생 들의 배낭여행 바람에서 시작해, 패키지 해외여행이 과거 제주도, 설악산 단체여행처럼 일반화하고 있다. 하지만 해외여행 자유화 10년이 다 된 지 금까지 우리의 여행문화는 여전히 걸음마 수준이다. 해외 유명관광지의 현지인들은 호텔, 관광지, 식당 등에 많은 동양인 단체관광객 중 한국인 들을 쉽게 구분한다. 호텔에서는 인솔자가 커피숍, 로비 등으로 사람을 찾아 다니며 방열쇠를 전달하고, 관광지에서는 가이드의 설명 도중 주변 에서 사진찍기에 바쁘고, 식당에서는 여행자들이 준비해온 반찬이 식당음 식보다 더 많고, 쇼핑센터에선 거대한 쇼핑봉투를 들고 왔다갔다 하는 단 체의 90%는 한국인들이다. 현지인들이 우리의 나쁜 여행습관을 보고 한국 인을 선별하는 구분법은 단편적이긴 하지만 현실이다. 여행이 삶의 휴식 과 에너지가 되지 않고, 본인이나 사회에 짐이 되는 우리 여행문화의 현 주소를 말해준다.
관광지에서 한국인이 눈에 띄는 이유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가장 대중적인 여행상품인 패키지 여행의 장점은 가 격이 저렴하고, 짧은 시간에 많은 볼거리와 다양한 문화체험을 가능케하 고,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여행함으로써 각자의 위치에서 느낀 체험 내용 을 공유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런 점들은 역으로 단점일 수도 있 다. 비용이 많이 드는 관광지는 옵션화되어 있어 웃돈을 더 내야 하고, 짧은 시간에 많은 곳을 보아야 하기 때문에 수박 겉핥기 식으로 여행이 진행된다. 또 매일 어김없이 쇼핑센터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야만 한다.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커피 한잔 마실 수 있는 여유, 맨몸으로 그 나라 사람들과 문화와 마주하는 여행의 본질과는 거리가 멀어, 마치 온실 속에 갇힌 채 이동하는 느낌마저 든다. 그러나 패키지 여행은 외국어를 몰라도 되고, 안전하고, 무엇보다 왕복 비행기삯에도 미치지 않는 저렴한 가격 탓에 여전히 가장 선호되는 상품이다. 패키지 여행의 가격이 저렴한 이유 는 현지여행사의 수익에 쇼핑센터에서 나오는 커미션도 포함되어 있기 때 문이다. 이를 여행사의 덤핑으로만 욕할 순 없다. 소비자가 여행 전 가격 대 효용의 비율을 감안해, 거기에 합당한 서비스를 요구해야 한다고 본다 .
에티켓 결여로 현지인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것 외에 우리 여행자들의 고질병 중 하나는 그 나라 문화와 환경에 대한 이해를 섭취하기보단, 그 저 ‘나 여기 왔다 갔다’는 증명사진 찍기에 급급하다는 점이다. 워낙 사진찍기를 좋아하니, 이젠 현지가이드들도 촬영장소 헌팅맨이 되어가고 있다. 호주관광 단골코스인 동물원, 식물원에서 가이드들은 입구에서부터 , 어디에 가서 코알라를 안고 사진을 찍고, 어떤 동물은 위험하니 사진을 찍지 말라는 말만 할 뿐, 호주의 특수한 생태계에 대해선 설명이 없다. 호주의 특수한 이민역사와 다인종국가형성, 기타문제는 전혀 언급하지 않 는다. 아무도 들으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여행지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 하는 여행은 보이는 모든 것이 새로우며, 여행의 한 축인 이국의 정취를 충분히 느낄 수 있는데도 말이다.
8일의 여행 위해 8주를 준비하라
또 우리 여행자들의 숙식에 대한 불만은 관광지 개발이 덜 되어 있는 지 역이나 우리보다 생활수준이 떨어진 지역에서 극대화된다. ‘화장실이 불 결하다, 우리나라 시골보다 못하다, 50년대만도 못하다’ 등 불평만 늘어 놓다 보면 현지인을 무시하게 되고, 이로 인해 나쁜 인상을 현지인에게 주게 된다. 최근 중국에서 이같은 현상이 점점 심각해져 외교문제로까지 비화될 조짐까지 보이고 있다. 이렇게 되다 보면, 여행의 목적은 온데간 데없고, 오직 지저분하고 불편했던 기억만 남게 된다.
여행은 돈과 시간, 건강이 허락해야 가능하다. 해외여행이 많이 대중화되 었다고 해도 해외여행을 간다는 것은 아직까진 혜택받은 것이다. 혜택받 은 자로서 사회에 대한 약간의 책임감을 가지고 여행을 준비해보라. 아는 만큼 보인다. 8일의 여행을 위해선 8주를 공부하고, 기대하고, 확인할 때 느끼는 그 감동은 세상 어느 것에도 비할 바가 없다.
알 사파르, 알 자파르!(‘여행하는 자는 승리한다’는 뜻의 아라비아 속 담)
왕주현/ 여행전문가
© 한겨레신문사 1997년11월06일 제 18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