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김순경의 맛기행

함경도 입맛 ‘가자미 식해’

함경도 음식으로 냉면과 왕순대 그리고 가자미 식해 등은 우리에게도 친 숙한 먹거리들이다. 해방과 함께 월남한 이런 함경도 음식들은 실향민들 의 향수를 달래주고, 이들이 삶의 기틀을 다지는 데에도 큰 몫을 맡았다. 가업으로 이어져온 독특한 맛의 비결을 되살려 크게 성공을 거둔 이들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 해방과 6·25로 월남했던 1세대 들이 일손을 놓고, 새로운 세대들의 생각과 식생활이 급격하게 변해가면 서 지나치게 정성이 들어가거나 전수가 힘든 음식은 그 맥이 서서히 단절 되어가는 느낌이다.

함경도 사람들에게는 호남의 갓김치나 꼬들배기김치, 서울의 깍두기만큼 소중한 가자미 식해는 그들 1세대들이 직접 경영을 할 때만 해도 웬만한 음식점에서는 의례껏 찬으로 내놓았다. 그래서 함경도 사람이 직접 경영 한다는 상징물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가자미 식해로 입맛을 돋우어 야 할 계절이 닥쳤는데도 정작 순수한 가자미 식해 맛을 보기가 그리 쉽 지 않다.

가자미 식해는 본래 새콤하게 익혀서 먹는 것이고, 만드는 과정도 열흘 이상이나 걸렸다. 무엇보다 중요한 가자미는 싱싱한 동해안 것이라야 하 고, 크기도 손바닥만한 정도로 연한 것이라야 하는데, 여름철에는 산 거 나 다름없이 눈알이 투명한 새끼 가자미를 도심에서 구하기가 그리 쉽지 않았다. 그래서 찬바람이 설렁설렁 이는 지금부터 겨울까지를 그래도 신 선한 가자미 식해를 담가 먹을 수 있는 절기로 보는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함흥냉면의 맛이 살아있는 서울 중구 오장동 흥남집(02-266 -0735)에서 월남 1세대인 노노부가 손수 만들어 내어놓는 가자미 식해를 만날 수 있다. 경기도 광명시 광명5동에 사는 송하용(75)씨와 신한남(74) 씨 부부가 만든 것이다. 송씨 부부는 1945년 9월 해방과 함께 함경남도 흥남에서 월남한 1세대들로, 흥남집 주인과 동향인들이다. 음식 솜씨가 좋은 할머니가 미국과 캐나다에 이민간 친지들의 부탁으로 가자미 식해를 만들어 보내던 것이 차츰 주변에 알려져 흥남집에까지 내놓게 됐다고 한 다.

가자미 식해는 원래 찬밥에 먹어야 제맛이라지만 따끈한 밥에 먹어도 전 혀 비린내가 없다. 이처럼 싱싱한 가자미는 수산시장에 선금을 주고 부탁 해온 것이라는데, 뼈와 가시째 몽글몽글하게 씹히는 질감이 바로 맛의 진 수다. 고슬고슬한 조밥도 가자미와 함께 잘 삭아 새콤하게 입맛을 당긴다 . 더욱이 10여일의 과정을 거치는 동안 은은하게 익으며 깊이 배어든 새 콤한 맛은 먹고난 뒤에도 혀끝과 잇몸에 삼삼하게 스미며 온종일 입안에 침이 고이게 하는 묘한 작용을 한다. 함경도 사람들이 식구들의 입맛이 떨어지면 가자미 식해를 담가 상에 올리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모양 이다.

송씨 부부의 말로는 여가를 이용해 식해를 만드는 게 즐겁기는 하지만 재 료를 구하는 게 너무 어렵고, 요즘 젊은이들이 날것이라며 먹기를 거부해 속이 상한다고 한다.

마치 먼 곳에 간 자식들에게 보내듯 무채를 넣지 않고 가자미와 조팝만 넣어 물기가 전혀 배어나지 않도록 담가, 꼭꼭 눌러 포장해 놓은 모습이 마치 노모의 얼굴을 떠올리게 한다. 그냥 먹어도 맛있지만, 무채를 썰어 소금에 간간히 절였다가 물기를 꼭 짜서 생강과 마늘 다진 것을 약간 넣 고 무친 다음, 가자미 식해를 알맞게 꺼내 함께 비벼 하루쯤 지나 먹으면 무채가 들어간 완벽한 가자미 식해가 된다. 통일이 되기 전까지, 아마도 고유한 함경도 가자미 식해로는 마지막 작품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전화(02-614-5710)로 주문하면 우편이나 택배로 보내줄 수도 있다 고 한다.


가자미 식해, 이렇게 맛 낸다

가자미 식해를 담글 때는 먼저 가자미의 머리와 꼬리, 지느러미, 비늘 등 을 말끔히 손질하여 뼈에 칼이 들어가도록 칼집을 낸 뒤 소금에 한나절쯤 절인다. 이것을 꺼내 맑은 물에 깨끗이 씻어낸 뒤 물을 꼭 짠 다음, 소쿠 리에 담아 물기를 완전히 말린다. 다시 알맞게 소금간을 하며 항아리에 넣고 돌로 눌러놓는다. 이렇게 5일∼1주일쯤 둔다. 소금에 절으며 솟아나 는 물을 자주 떠내주어야 한다.

그동안 가자미는 간이 배고 알맞게 삭는다. 이것을 다시 꺼내 물기를 꼭 짜고 먹기 좋은 크기로 토막을 낸다. 이때 좁쌀밥을 꼬득하게 지어 식혀 놓았다가 고춧가루와 비벼 가자미 토막과 고루 섞어 항아리에 꼭꼭 눌러 담는다. 이것을 선선한 곳에 또 5일쯤 둔다. 이때도 군물이 솟으면 계속 떠내주어야 한다. 송씨 부부가 내놓는 가자미 식해가 바로 이 과정까지 완성시킨 것이다.

© 한겨레신문사 1997년11월06일 제 18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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