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역사 속의 여성

대문호는 항상 정당한가

“아내가 나와 집안을 완전히 망치고 있다.”

이 말을 남기고 집을 뛰쳐나간 레프 톨스토이는 어느 시골 기차역에서 세 상을 떠났다. 그때 나이 여든둘. 그 뒤 톨스토이의 아내 소피아는 세상에 둘도 없는 악처로 사람들의 뇌리에 박혔다. 그리고 그로부터 약 70년 뒤, 소피아의 일기가 발견돼 출간됐다. 결혼 초부터 톨스토이가 사망할 때까 지 쓴 이 일기는 두 사람의 결혼생활에 대해 널리 알려진 것과는 상당히 다른 내용을 담고 있어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소피아 안드레예브나 베르스는 18세에 34세의 백작 톨스토이와 결혼했다. 둘의 결혼은 톨스토이의 열렬한 구혼이 있은 지 7일 만에 이루어졌다. 청 년시절, 방탕하기로 이름났던 톨스토이는 이미 하녀와의 사이에 티모페이 라는 아들을 하나 두고 있었다.

톨스토이는 아내에게 모성을 몹시 강조했다. 아마 두살 때 어머니를 잃은 탓일 게다. 그가 피임을 절대 반대했기 때문에 소피아는 아이를 열셋이나 낳았다. 게다가 여느 귀족들처럼 유모를 두지 않고, 직접 젖을 먹여 길렀 다. 그 중 여섯이 어려서 죽었다. 소피아가 겪었을 아픔이 짐작이 간다. 소피아는 톨스토이가 쓴 원고를 정서하고 교열, 교정하는 일을 맡아 했다 . 톨스토이는 지독한 악필이어서 아무나 그 원고를 읽을 수가 없었다. 결 혼 전 소설을 쓰기도 했던 소피아는 훌륭한 교열가였다. <전쟁과 평화> < 안나 카레니나>를 비롯해 톨스토이의 작품들이 소피아의 손을 거쳐 태어 났다. 끊임없는 출산과 육아, 교정과 정서, 소피아는 하루에 다섯시간 넘 게 자본 적이 없었다. 스스로를 ‘톨스토이 작품의 유모’라고 자조하면 서. 그러다 절망에 빠지기도 했다.

“나는 자동인형처럼 살고 있다. 걷고 먹고 잠자고 목욕하고 정서한다. 사생활이란 없고 독서도 놀이도 생각에 잠길 수도 없다…. 이것이 도대체 사는 걸까?”

만년의 톨스토이는 사유재산을 부정하고 농민계몽에 힘쓰는 금욕주의자로 변신했다. 소설도 그만 쓰고 농부가 되어 직접 밭을 갈았다. 이런 변화를 소피아는 어떻게 생각했을까? 그는 남편이 재산을 모두 버리려는 데는 불 만을 나타냈지만 남편이 추구하는 이상을 충분히 이해했다.

그러나 사상적 변화 뒤에도 톨스토이의 여성관은 매우 부정적이었다. 그 에게 여자란 남자를 유혹하는 존재, 성적 사랑밖에 모르는 속물에 불과했 다. 하지만 정작 문제는 자기 자신이었다. 자기는 성충동이 매우 강해서 여든한살까지 섹스없이 살 수 없었다고 톨스토이는 전기작가에게 털어놓 고 있다. 실제로 그는 소피아에게 ‘형제처럼’살 것을 강요해놓고는 스 스로 약속을 깨뜨리곤 했다. 완벽한 금욕주의를 실천하지 못하는 책임을 자신에게 물은 게 아니라 여자에게 돌린 셈이다.

두 사람은 서로의 마음에 상처내기를 거듭했다. 소피아는 여러번 자살을 시도했고, 톨스토이 또한 몇번이고 집을 나가려 했다. 1910년 7월, 톨스 토이는 극비리에 유언장을 새로 만들었다. 작품의 저작권을 모두 막내딸 에게 준다는 내용이었다. 며칠 뒤, 톨스토이는 한밤중에 소피아가 자기 서류를 뒤지는 것을 목격했다. 소피아는 새 유언장을 찾고 있었다. 화가 난 톨스토이는 그길로 집을 나가 기차를 탔다. 그리고 기관지염과 폐렴에 걸려 아스토포보역에서 눈을 감았다.

소피아는 정말 톨스토이를 조금도 이해못한, 돈밖에 모르는 속물이었을까 ? 소피아가 톨스토이와 달리 자식들에게 물려줄 재산을 지키려고 애쓴 건 사실이다. 이제 대문호 톨스토이와 그 집안을 망친 악처 소피아를 위한 변명이 나올 차례다.

박은봉/ 역사연구가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11월06일 제 18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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