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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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월드컵을 정치적으로 이용한 무솔리니(흰 모자 쓴 사람)가 우승한 이탈리아 선수들에게 메달을 걸어주고 있다.)
수많은 지구가족의 관심이 쏠리는 월드컵은 독재정권의 선전에 이용당하 기도 했다.
1934년 제2회 월드컵은 독재자 무솔리니가 통치하던 이탈리아에서 열렸다 . 1929년부터 세계를 휩쓴 공황은 당시까지도 세계 각국의 경제를 혼란에 빠뜨리고 있었다. 1932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때 브라질선수단은 커피 실 은 배를 타고 로스앤젤레스항에 도착, 그 커피를 팔아 경비를 장만했을 정도였다.
제1회 대회가 남미의 우루과이에서 열렸으니 제2회 대회는 무슨 일이 있 어도 유럽에서 개최돼야 했다. 그러나 당시 유럽에서 월드컵 개최의 의지 와 능력을 갖고 있던 나라는 파시스트당으로부터 전면지원을 받아 적자를 무릅쓰고라도 대회를 치르겠다는 이탈리아뿐이었다. 파시즘의 선전무대가 될 것을 꺼림칙하게 여기면서도 FIFA(국제축구연맹)는 창설 30주년 기념 행사인 제2회 월드컵을 연기할 수 없어 이탈리아의 개최신청을 받아들였 다.
양식을 지닌 많은 사람들이 염려했듯이 독재자 베니토 무솔리니는 파시즘 의 정당성과 이탈리아의 위대성을 온세계에 알리는 차원에서 월드컵 개최 를 지원했다. 무솔리니가 앉힌 이탈리아축구협회 회장 박카로 장군은 “ 이번 월드컵의 최종 목적은 파시스트 스포츠의 위대함을 보여주는 것”이 라고 공언하기도 했다.
우승에 혈안 유명선수 무차별 귀화
무솔리니는 스포츠의 정치적 이용가치를 충분히 알고 있던 지도자였다. 1 936년의 베를린 올림픽 개최를 처음에는 별로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던 독 일의 독재자 아돌프 히틀러도 1934년 이탈리아 월드컵의 성공적인 개최에 자극받아 베를린 올림픽에 힘을 쏟기 시작한 것만 보아도 스포츠의 정치 적 이용에 관한 한 무솔리니가 히틀러보다 한수 앞을 내다보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전통적으로 지중해의 푸른색을 팀컬러로 삼고 있는 이탈리아의 축구대표 팀은 ‘무솔리니의 청(푸른색)’이라 불리게 됐다. 월드컵 개최권을 따내 자 무솔리니는 동맹국인 독일의 협력을 얻어 대회준비를 진행시켰다. 대 회 포스터는 오른손을 높이 들어올리는 파시스트식 경례를 하는 선수를 주제로 했다.
무솔리니로부터 “꼭 우승하라”는 지상명령을 받은 비토리오 포초 감독 의 이탈리아팀은 지난 대회 결승에 올랐던 아르헨티나 선수들을 이탈리아 로 귀화시켜 전력을 보강했다. 공격진의 올시와 구아이타, 수비의 핵심 몬티는 아르헨티나 선수였지만 그들의 선조가 이탈리아 사람이었다는 이 유로 귀화해 이탈리아 대표팀 유니폼을 입게 됐다. “이중국적을 갖고 있 어도 병역을 면제받지 못하고 1차대전에 이탈리아군 병사로 종군했던 실 례가 있으니 이탈리아 사람의 후예인 선수는 당연히 이탈리아를 위해 뛰 어야 한다”는 것이 이탈리아쪽의 강변이었다.
이탈리아대회에서는 리그전을 치르지 않고 본선 진출 16개팀이 토너먼트 로 패권을 가렸기 때문에 우승을 차지하려면 단 한차례의 패배도 허용되 지 않아 이탈리아팀은 무거운 정신적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포초 감독은 체력강화에 중점을 두고 개성이 강한 선수들을 하나로 묶는 데 성 공했다. '싸우는 기계'라고까지 불렸던 스키아피오, 메아트아, 페라리 등 은 다른 팀들의 공포의 대상이었다.
이탈리아는 미국을 7-1, 스페인을 1-0(재경기), 오스트리아를 1-0으로 꺾 고 결승전에서 체코와 마주쳤다. 그동안 무솔리니는 로마에서 치러진 경 기는 꼭 참관했다. 결승전 날 로마의 PNF(국민파시스트당) 스타디움에는 4만5천명의 관중과 함께 무솔리니를 비롯한 정부 고관, 왕족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1-1 동점 끝에 들어간 연장전에서 스키아피오가 결승골을 터뜨려 2-1로 이탈리아가 우승하자, 무솔리니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오 른손을 들어올려 파시스트식의 경례를 선수들에게 보냈다. 우승컵인 줄리 메 트로피를 받아든 주장 콤비도 오른손을 들어 답례했다.
이탈리아의 국민도 정부도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무솔리니는 호화로운 축하잔치를 베풀고 푸짐한 보너스를 선수들에게 지급했다. 하지만 각국의 기자들은 “월드컵이 스포츠 아닌 국력과시의 수단으로 변질돼가고 있으 며, 승리를 추구하는 것 말고 그곳에는 아무런 스포츠적인 배려가 없었다 ”고 비판했다.
“월드컵 유치해 혁명을 막자”
78년 제11회 월드컵은 남미 아르헨티나에서 열렸다. 대회가 열리기 2년 전 아르헨티나에서는 쿠데타가 일어나 군사정권이 군림하고 있었다. 서구 여러 나라의 좌파들은 “아르헨티나의 축구경기장은 노동자나 학생들을 연행, 학살하는 마당으로 쓰여졌으며 죽거나 행방불명된 사람들이 수만명 에 이르렀으니 아르헨티나 월드컵을 보이콧하자”는 목소리가 일기도 했 다.
그러나 군사정권 아래에서도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월드컵을 자기네 나라 에서 연다는 보람에 하나로 뭉쳤다. 막대한 외채를 안고 있으면서도 정부 는 4억5천만달러를 월드컵 개최에 내놓았다. 군사정권의 수뇌들은 차례차 례 합숙소를 찾아 선수들을 격려했다.
메노티 감독이 이끄는 아르헨티나가 결승에서 네덜란드를 연장전 끝에 3- 1로 물리치고 우승하자 아르헨티나는 환희로 발칵 뒤집혔다. 반정부 게릴 라까지도 월드컵 기간중 휴전으로 협조했으니 “중남미에서 혁명을 막자 면 월드컵을 유치하면 된다”는 말이 과연 나올 만도 했다.
고두현/ 스포츠평론가
© 한겨레신문사 1997년11월06일 제 18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