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작은 정성, 큰 기쁨

좋은 생각의 감동이 쏟아진다

국민회의 임복진 의원의 비서 이성환(31)씨. 그는 요즘 눈코뜰새 없이 바 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국회에 들어온 지 일곱달 남짓. 아직도 신참티를 벗지 못한 그로서는 국정감사와 정기국회, 또 뭐가뭔지 알 수 없이 숨가 쁘게 돌아가는 정치판 속에서 여유를 기대할 형편이 아닌 것이다. 숨돌릴 틈조차 없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 석달 전부터 빼앗길 수 없는 작은 여유가 하나 생겼 다. 이름하여 ‘화장실의 행복’이다. 변기에 앉을 때마다 읽어내려가는 손바닥만한 책을 통해 느끼는 행복과 즐거움이 바로 그것이다.

이 행복은 한 친구의 선물로 시작됐다. 지난 7월 첫아들 중호의 백일 잔 칫상에서였다. 몇몇 친구들을 초대해 식사나 하자고 만든 자리에서 그는 대학 때 학보사일을 하면서 알게 된 권기덕씨로부터 의외의 선물을 받았 다. 기저귀 한 꾸러미와 은수저 한벌, 엄마와 아이가 함께 듣는 음악 테 이프 한개. 종류가 좀 많기는 하지만 여기까지는 그러려니 생각했다. 그 런데 권씨는 갑자기 자그마한 책 한권을 더 내미는 것이었다. <좋은생각> . 눈에 띄거나 두드러질 것 없는 월간지였다. 그리고 책갈피에는 1년치 정기구독권이 들어 있었다. “우연히 서점에서 봤는데 혼자 보기 아까워 서….” 이렇게 말을 꺼낸 친구 권씨는 “각박한 삶속에서 여유를 갖고 조그마한 일에 감사하며 살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그때부터 그는 화장실 변기에 앉는 일이 마냥 즐거워졌다. 책을 펼치면 매월 첫날부터 마지막날까지 날짜별로 두쪽씩 나눠 그날그날 명상할 소재 와 잔잔한 감동을 담은 이야기가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시저가 “주사위 는 던져졌다”는 말을 하게 된 배경 설명을 통해 인생은 순간마다 결단이 필요하다는 점을 가르쳐 주기도 하고, 또 어떤 날은 옹알이 하던 아이가 처음 “아빠” 하는 외침을 던졌을 때 느낀 어느 아버지의 기쁨을 잔잔하 게 담기도 했다.

“바쁘게 살다 보면 생각하기 싫어하고 일상에서 부닥치는 일들을 사소한 문제라며 그냥 쉽게 지나쳐 버리잖아요. 그런데 그 친구가 삶을 윤택하게 하는 작은 행복을 느낄 수 있는 방법을 선물한 것이죠.” 흔히 형식적이 고 외양만 번듯하게 오가는 선물에 비해 초라하기 짝이 없는 2천원짜리 책 한권을 통해 그에게 세상을 행복하게 보는 법을 가르친 셈이다.

그런데 고민이 생겼다. 부인 최현숙씨까지 이 기쁨에 빠져 화장실에 들어 가면 나올 생각을 않는 것이다. 더욱이 하루 두쪽씩 읽어야 하지만 재미 와 감동에 빠져 일주일이면 독파해 버린다. “여유를 가지고 조금씩만 읽 어야죠. 그 여유가 친구가 나에게 준 진정한 선물일 테니까요.”

신승근 기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11월06일 제 18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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