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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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텅빈 인문과목 강의실. 인문학은 수강생 부족으로 폐강이 늘고 대학원진학 희망자마저 줄어 대가 끊길 위기다.)
넓게 보면, 인문학이 위기에 봉착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근대화’의 초석이었던 효자 자연과학도 아니고, 치열한 사회적 고민을 담아내는 사 회과학도 아닌 그저 말만 많고 벌이는 시원찮은 서자노릇만 해온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서자자리조차 빼앗기고 언제 문 밖으로 내 팽개쳐져 쪽박을 찰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인문학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대변신을 모색할 수밖에 없는 실정인 것이다. 인문학 위기의 다양한 현상 들은 인문학의 성격에 대해 근본적으로 재검토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한국적 위기냐, 세계적 위기냐
인문학 위기의 원인이 내부에 있든 외부에 있든, 대안을 모색하는 움직임 들은 모두 전통적인 인문학에 대한 도전을 공통기반으로 삼고 있다. 인문 학이 순수하고 불변하는 그 어떤 것이라는 환상, 셰익스피어나 플라톤의 고전만 읽으면 삶의 모든 가치를 추출해낼 수 있다는 생각, 그리고 그 환 상의 유지를 가능케 했던 분과학문체계라는 폐쇄적인 틀 따위에 대한 도 전인 것이다. 소장파 학자들을 중심으로 하는 이러한 움직임은 기성 연구 자들의 사고와 방법론을 해체하려 한다는 측면에서 주목받고 있다.
대안을 모색하는 움직임은 한국적인 상황에 천착해야 한다는 쪽과 세계적 인 보편성을 강조하는 두 흐름으로 나뉜다. 먼저 한국적인 상황을 강조하 는 쪽은 인문학이 도전받고 있는 이유를 우리의 삶, 즉 ‘한국적인’ 삶 에 주목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세계’ 인문학의 위기보다는 ‘한국’ 인문학의 위기가 우리의 당면과제라는 얘기다. 이들은 학문의 주체성 회복을 강조한다.
김영민 전주한일신학대 교수(철학)는 한국의 인문학이 한번도 고유의 인 식틀을 갖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식민지 경험, 전쟁, 개발독재 그리고 경 제제일주의, 문화식민주의의 와중에서 스스로의 전통과 역사를 돌볼 겨를 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한국의 인문학은 자생력을 갖지 못한 채 하베르마스와 푸코 중 누가누가 더 잘났는지를 열심히 따지기만 했다 는 것이다. 지식은 현실을 반영할 때만, 현실적합성을 가질 때만 유용성 과 활력을 갖는다. 그런데 한국적인 삶과는 유리된 외래사조를 들여와 한 국의 현실을 재단하려 하니 메아리 없는 소리처럼 맥이 빠진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마치 70년대 우리 국민의 단백질 공급원으로 수입된 베스와 블루길이 90년대 우리 민물생태계를 심각하게 훼손시켰듯이 외래사조의 수입도 닮은꼴을 겪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외국사조 유행타는 풍토를 버리자
김 교수는 사대주의적이고 외국사조에 유행을 타는 현재의 학문풍토를 버 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면 대안은 있는가. 단순히 캠페인성 구호에 그치는 것은 아닌가. 김 교수는 일단 한국적인 삶의 복잡다단하고 모호한 양상을 일면적으로 재단하기보다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문학적 상상력을 극대화시킬 필요가 있다. 하지 만 현재의 논문중심주의는 인문학적 상상력을 억압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외국에서 도입된 각주달기, 치밀한 논리 중심의 글쓰기를 버릴 때 한국적 인 삶을 이해할 수 있는 다양한 해석틀이 나온다는 것이다. 그럴 때만이 우리 사회에서 통용되는 대안 지식이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비판도 만만찮다. 한국적인 삶에 주목해야 한다는 사실 은 인정하면서도 한국사회가 세계적인 흐름과 분리될 수 있는가 하는 문 제가 제기될 수 있는 것이다. 성균관대 양재혁 교수(동양철학)는 “포스 트모더니즘도 한국사회에 적용할 수 있는 일면타당한 진리를 포함하고 있 다. 한국적 특수성이 무슨 실체가 있는 양 주장하다 보면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봉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외국 이론을 수입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수입된 외국 이론을 검증하려는 노력이 부족했던 게 문제라는 것 이다.
세계적인 흐름 속에서 한국 인문학의 위기에 대한 대안을 모색하는 노력 도 활발하다. 이들은 인문학의 현실개입을 주장한다. 70∼80년대의 서구 에서 일기 시작한 미디어연구, 시각문화연구, 여성연구, 환경연구처럼 인 문학이 현실에 개입해 유용성을 인정받을 때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주장 이다. 중앙대 강내희 교수(영문학과)는 “이를 위해서는 여성연구가 문학 , 미학, 철학, 정치, 경제, 사회 등 다양한 학문분야들을 동원해 통합적 성격을 띠는 학문이 되는 것처럼 기존의 학문분야들 사이에 존재하는 벽 을 허물 필요가 있다. 인문학에 불변하는 것이 어떤 것이 있는 양 하는 태도를 버려야 한다. 대학 내 인문학의 수강과목도 이런 추세에 맞춰 전 반적인 검토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결국 인문학은 ‘기획자로서의 역할’로 위치지어진다. 현장에 매몰되어 서도, 현장을 완전히 벗어나서도, 이론을 무시해서도, 이론에 매몰되어서 도 안 되는 성격의 일이 기획자의 일인 것이다. 하지만 이런 분석틀과 대 안이 서구의 것을 빌려왔다는 점에서 철저한 검증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
인문학 경시는 시장경제의 현실
한국적인 삶에 주목하든, 세계적인 흐름에 주목하든 대안을 모색하다 막 상 현실로 돌아오면 인문학의 미래는 어떤 식으로든 낙관적이지 못하다. 강내희 교수는 “자본주의 시장경제 안에서는 인문학이 홀대당하고 무시 당하는 것이 현실일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게다가 정보기술사회로 접 어들면서 인문학은 상대적으로 더욱더 수세적 위치에 몰릴 것이다. 김영 민 교수도 “배금주의와 소유중심의 삶이 팽배한 우리 현실사회 속에서 인문학이 어떤 대접을 받을지는 너무 뻔하다”고 말한다.
어쨌든 소장파 학자들을 중심으로 이러한 ‘한국적’ 인문학의 위기에 대 한 논쟁과 대안의 모색이 이뤄지는 것은 일단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학과와 학과 사이에서, 아니면 같은 학과 내에서도 학문 외적인 것으로 갈등을 겪어온 기성 연구자들에 비하면 말이다. 하지만 이런 논의들이 어 떻게 제도적 성과와 연결될지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다면 또다시 공염불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이용인 기자
© 한겨레신문사 1997년11월06일 제 18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