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특집

인간이 없는 정보화는 없다

날로 위력을 더해가는 정보사회 속에서 ‘케케묵은’ 학문인 인문학이 과 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 살아남을 수 있다면 인문학의 역할은 무엇일까. 한양대 전자공학과 조성호 교수는 정보통신을 연구하는 주체가 ‘사람’ 이기 때문에 인문학은 여전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조 교수는 “정보통신의 연구는 하나의 팀을 바탕으로 이루어지게 마련이 며, 이 연구집단 내에서 의사소통의 중요성은 여전히 존재할 것”이라고 말한다. 또한 도구적이어야 할 정보통신이 마치 인간의 최종목적인 양 호 도되는 기술만능주의에 대해 인문학의 적절한 견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한 다.

고려대 임홍빈 교수(철학)도 기술정보시대에 대해 인문학이 비판적 거리 를 유지하며 적극적으로 개입할 것을 주장한다. 우선 인문학자들이 기술 을 부정적으로 바라볼 것이 아니라 그것을 현실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기능적 세계를 강건너 불보듯이 무관심하게 쳐다보거나 복고적인 낭만을 떠올렸다가는 인문학의 생명력이 없어진다는 것이다. 그는 유전자공학의 발달로 파생되는 생명윤리, 기술산업사회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며 대안사 회로 등장하고 있는 생명중심의 생태사회 등을 적극적으로 검토하는 것이 인문학이 해야 할 역할이라고 규정한다.

서울대 철학과 이태수 교수는 시장경제의 논리를 들어 인문학이 살아남을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기술산업이 발전할수록 문화적 욕구가 커질 것 이고, 기업이 개발하는 상품은 이런 문화적 욕구를 충족해야만 한다는 것 이다. 예를 들어 미래의 자동차를 설계하는 것도 사회구성원의 필요와 미 적인 감각을 전망하고 형상화해야 하는데, 이런 총체적 사고와 기획력을 뒷받침할 수 있는 것은 인문학적 상상력밖에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장밋빛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전주한일신학대 김영민 교 수는 인문학의 미래을 아주 비관적으로 바라본다. 낱말이나 숫자, 통계에 의해서 전체사회가 조직·운영되는 정보체제가 확대될수록 시적 상상력이 나 인문학적 지혜의 정신이 급격히 줄어든다는 것이다. 인문정신은 통합 적이며 인간적이고 전통적인 지혜와 깊이에 뿌리박고 있지만, 정보문화의 특성은 근본적으로 요소론적이고 기계론적인 세계관이기 때문이다. 결국 정보사회와 인문정신은 서로 양립할 수 없다는 것이 김 교수의 주장이다.

© 한겨레신문사 1997년11월06일 제 18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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