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동하는 재벌/효성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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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탈섬유에 상당한 성과를 올렸던 효성T&C공장. 외형은 12%나 성장했지만, 순익은 오히려 줄어 애를 태우고 있다. )
효성그룹은 지난 4월1일 30대 그룹 가운데 처음으로 계열사의 모든 대졸 사원을 대상으로 연봉제를 도입했다. 효성의 연봉제는 5단계평가를 통해 1등급(전체의 10%)에게는 전년도 연봉의 20%, 2등급(20%)에게는 10%를 추 가 지급하고, 4등급(10%) 10%, 5등급(5%) 20%를 감액하는 실로 파격적인 방식이다. 신상필벌을 강화한다는 취지에서였다. 아직 사원 개개인에 대 한 평가는 나오지 않았지만, 그룹 안팎에서는 내년 초가 되면 회사를 떠 날 사람이 상당수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임원들의 경우 책임경영 에 대한 요구의 강도는 더욱 거세다. 그룹 경영혁신팀은 지난 9월 전 임 원에 대해 상사, 동료 및 부하직원에 의한 다면평가, 임원들에 의한 개별 인터뷰를 통해 임원을 평가하는 새로운 인사시스템을 마련했다.
‘벤처조직제’에서 ‘사내도산제’까지
“고비용 저효율 구조를 고효율 저비용 구조로 바꾸라.” 조석래(62) 효 성그룹 회장이 올해 신년사에서 강조한 말이다. 그는 올해를 ‘변화와 개 혁의 해’로 정하고, 21세기 초일류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한 기반다지기를 위해 노력해 달라고 임직원들에게 강조했다. 그는 또 “사고의 틀 전체를 바꾸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 진취적인 모습으로 변신해 세계 속의 효성으로 거듭나자”라고 강조했다. 임금체제와 인사 혁신은 경영효율성 제고를 강조하는 조 회장의 의지가 반영된 첫 작품이다.
지난해 말부터 매주 토요일 오후 전 임원이 참가하는 토요세미나를 열도 록 했다가 결국 몇달 만에 이를 중단하는 등 ‘의욕과잉’이라는 말을 듣 기도 했지만, 조 회장의 경영혁신 요구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젊은 시 절 교수를 꿈꾸다 아버지의 부름을 받고 사업에 뛰어들 만큼 학구파이기 도 한 조 회장은 임직원들의 교육에도 강한 의욕을 보이고 있다. 지난 8 월부터 사내 MBA과정을 개설해 각사에서 근무성적이 우수한 과장·부장급 40명을 뽑아 6개월 동안 매주 9시간씩 특별강좌를 마련해, 수료자에게는 학위를 주도록 했다.
몇개 팀을 선정해 독립채산제로 운영하도록 하고, 미리 정한 이익률을 초 과한 부서에는 초과이익을 해당부서의 직원에게 나눠주는 이른바 ‘벤처 조직제’가 이미 시범적으로 실시되고 있다. 앞으로는 일정기간 계속해서 적자를 낸 부서나 사업부문을 아예 없애는 ‘사내도산제’까지도 도입할 계획이다.
효성그룹의 이같은 움직임은 ‘탈섬유’라는 한마디 말 속에 집약돼 나타 난다. 사실 지난 7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경제발전의 견인차였던 섬유산업 이 90년대 들어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섬유를 주력으로 가진 기업들은 자 연히 다른 분야로 눈을 돌려야만 했고, 그렇지 못할 경우 무너지는 운명 을 맞기도 했다. (주)대농이 바로 그런 케이스였다. 대농그룹은 주력기업 을 유통인 미도파로 바꿨음에도, 면방제품을 장기보유하다가 이 부문에서 지난해 2천9백억원의 적자를 내는 등 면방분야 축소시기를 놓쳐 결국 올 해 초 부도를 내고 말았다. 동양나일론을 모태로 성장한 효성그룹도 변신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중압감에 계속 시달려 왔다. 70년대 재계 10위권 에서 그동안 17위까지 떨어진 것이다.
가벼운 사업분야 적극 진출
(사진/효성T&C, 효성생활산업 울산공장 전경. )
효성물산을 비롯해 19개 계열사로 구성된 효성그룹의 주력은 국내 최대의 나일론 생산업체인 효성T&C(옛 동양나일론)다. 지난해 1조1천50억원의 매 출을 올린 효성T&C는 그동안 폴리프로필렌, 컴퓨터, 강선재, 정수기(효성 듀라인) 등의 생산에 꾸준히 진출해 86년 섬유 매출비중을 83%에서 올해 53%로 줄이는 등 그동안 탈섬유에 상당한 성과를 올렸다. 그러나 외형은 12%나 성장했지만, 순익은 95년 1백22억에서 75억5천만원으로 줄어드는 등 아직까지는 이렇다할 성과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종합무역업체 대부분이 그렇듯 효성물산도 수익에는 별 도움을 주지 못하 고 있다. 효성물산은 지난해 매출액이 2조7천억원에 이르지만, 순익은 16 억5천만원에 그쳤다. 부채율도 지난해 기준 881%로 해마다 100∼200%씩 누적됐다. 뚜렷한 흑자사업을 갖고 있지 못한 까닭이다. 폴리에스터, 마 그네틱필름 등을 생산하는 효성생활산업(매출액 4천4백억원)은 아예 적자 다. 그러나 효성중공업, 한국엔지니어링플라스틱 등이 흑자를 내 그룹 전 체로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3백50억원의 순익을 냈다.
올해 들어 효성은 불황에도 공격적인 경영전략을 펴왔다. 경영효율성 제 고가 올해 사업기조의 한축이라면 새로운 전략산업 육성은 또다른 축인 셈이다.
효성은 우선 석유화학분야 중심의 투자를 확대했다. 효성생활산업이 올 5 월 울산공단에 2천5백여억원을 들여 폴리에스터 필라멘트의 원료인 PTA공 장을 지은 것이다. 이로써 원료에서 수지, 원사, 직물, 염색가공으로 이 어지는 화섬의 수직계열화가 이뤄졌다. 효성바스프(매출액 2천1백억원)도 전기·전자제품의 핵심소재인 ABS수지 생산설비를 대폭 증설했다.
그동안 무거운 사업들 중심에서 가벼운 사업분야로 신규사업에도 적극 진 출하고 있다. 효성은 지난 2월 수처리 및 폐기물 소각사업과 자원재활용 등 환경사업을 확대하기 위해 효성에바라 환경엔지리어링을 설립했다. 이 어 4월에는 종합물류회사인 효성트랜스월드를 설립하고, 5월에는 효성파 이낸스를 설립해 팩토링금융업에도 새로 진출했다.
계열사들도 사업다각화에 적극 나서고 있다. 효성T&C는 안양공장 사택부 지 아파트 모델하우스에 2백평 규모의 할인매장을 시범적으로 운영한 뒤 내년 2월에는 1천평 규모로 할인매장을 정식 오픈해 유통사업을 시작한다 . 또 효성생활환경은 미국의 샌드위치전문점 찰리와 손을 잡고 오는 11월 서울에 1호점을 열 계획이다. 효성생활환경은 또 지난 8월 일본 히타치맥 스웰사와 리튬이온전지 국내독점 판매계약을 체결하고 기술을 이전받기로 했다. 그룹 관계자는 “전지사업은 내년에 우선 90만개, 2000년 1천만개 의 생산 시설을 확보하게 되면, 2003년에는 이 품목에서만 5천억원의 매 출을 올린다는 야심을 가질 만큼 사업성이 높다”고 강조한다.
화훼단지·효성원넘버는 삐거덕
효성이 미래의 주력사업으로 육성하려는 분야로는 정보통신사업을 빼놓을 수 없다. 90년대 들어 미래주력 사업의 하나로 정보통신을 꼽은 효성은 9 4년 효성정보통신, 96년 효성원넘버를 설립했으며, PCS 사업자인 한통프 리텔에 2.8%의 지분을 갖고 참여하고 있다.
그러나 효성의 신규사업이 모두 순조롭기만 한 것은 아니다. 우선 1만평 규모의 화훼단지를 조성하고 광범한 대리점망을 구축할 계획이던 화훼사 업은 거의 진척을 보지 못하고 있다. 효성원넘버는 또 지난 5월부터 상용 서비스를 시작했지만 극심한 불황으로 가입자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 다. 원넘버서비스란 개인이 갖고 있는 다양한 통신단말기의 번호를 하나 로 통합해, 고객이 그 번호에 다이얼링하면 원넘버 시스템이 가입자의 위 치를 확인해 연결시켜주는 부가통신서비스다. 효성은 미국의 ATI사, 일본 의 NTT 등과의 합작으로 시작한 이 서비스를 바탕으로 합작사들의 기술을 이전받아 장기적으로 국내외에서 다양한 통신사업을 벌여나가는 기초를 다지려는 뜻을 갖고 있다. 장거리시외전화 및 공단과 지방대도시를 중심 으로 한 초고속망 설치 사업에도 나설 계획이다. 효성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위성통신을 비롯 초고속인터넷서비스, 케이블TV를 이용한 통신서비 스 및 차세대 공중육상이동통신 등 첨단 통신서비스사업에도 진출한다는 방침이다.
효성은 이같은 경영혁신과 사업다각화를 통해 올해 매출목표를 9조원, 투 자목표를 1조3백억원으로 책정했다. 매출을 20% 정도 늘리겠다는 것이다. 그룹관계자는 “올해 매출목표는 순조롭게 달성될 것 같다”며 그러나 “ 수익성이 얼마나 호전될지는 장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아직도 혁신의 길은 멀다는 것이다.
심벌변경 계획 등 제2창업 준비
효성그룹은 현재 컨설팅회사인 맥킨지사와 함께 지난해부터 그룹 전체의 경영진단과 포트폴리오 구성 및 비전설정 등의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 이 결과에 따라 효성의 사업구조는 다시 한번 재조정 과정을 거치게 된 다. 그러나 “장사가 안 되면 버려라”는 조석래 회장의 지침은 앞으로도 변함이 없을 것이라고 그룹 관계자는 말한다.
효성은 지난해 그룹의 지주회사격인 동양나일론의 이름을 효성T&C로 바꾸 는 등 계열사 이름을 효성***으로 대부분 통일했다. 맥킨지사의 컨설팅작 업과 함께 효성은 그동안 사용했던 그룹심벌도 새로 만들 예정이다. 가끔 ‘소머리’가 아니냐는 오해를 받기도 하는, ‘거목’을 상징하는 효성의 심벌이 바뀌는 날, 효성은 제2의 창업을 맞을 전망이다.
정남구 기자
© 한겨레신문사 1997년11월06일 제 18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