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초점

'새 세상' 향한 재야의 두갈래 선택

(사진/국민승리 21의 중앙선거대책위원회 발족. 대선 때까지 2백~3백개의 지역지부 결성을 통해 대중정당으로 모양새를 갖춰나간다는 계획이다.)

대선 50여일을 앞두고 재야민주진영의 선택이 두 갈래로 나뉘고 있다. 이 미 진보세력의 정치세력화를 겨냥한 독자후보의 선거운동에 박차를 가하 기 시작한 '국민승리 21'이 한 방향이며 다른 한 쪽에선 정권교체를 최선 의 가치로 한 범야권 후보단일화 움직임이 구체화된 것이다. 대선을 앞두 고 예외없이 빚어졌던 재야민주세력의 분열로 비춰질 수 밖에 없는 현실 이다. 그러나 쌍방이 당장의 전략에선 차이를 보여도 장기적인 목표에서 하나로 모아지는 만큼 과거와 달리 소모적 대립보다는 발전적 양립을 추 구할 것으로 보인다.


11월 중순까지 1백여개 지부 건설

국내 최대의 전선운동체인 전국연합이 지난 6월14일 ‘국민후보’를 내기 로 한 결정에 따라 탄생한 ‘국민승리 21’은 10월26일 서울 올림픽공원 펜싱경기장에서 중앙선거대책위원회 발대식을 갖고 민주노총 권영길 위원 장을 진보민주진영의 대통령 후보로 공식 추대했다.

이날 행사는 각계인사 4천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일하는 사람들의 세상 ’을 열어가자는 진보진영의 결의를 다지는 자리였다. 특히 천영세 전국 연합 공동의장을 선거대책본부장으로 선출하는 등 보수정치판에 대한 정 식 도전장을 냈다. 창립선언문을 통해 “참된 개혁과 진보의 정치를 펼 때 정권교체와 세대교체를 뛰어넘는 진정한 ‘세력교체’를 이룰 수 있다 ”고 선언했다. 그리고 “대통령 선거에서 이룬 성과를 바탕으로 인간다 운 삶을 누리는 통일국가 건설을 위해 진보적 대중정당을 건설하는 데 앞 장설 것”을 천명했다. 권영길 후보는 후보수락 연설을 통해 “통일·민 주·자주에 앞장서온 사람과 땀흘려 일하는 보통 봉급생활자 및 평범한 납세자들이 주인되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역설, 이를 뒷바침했다. 이를 위해 ‘국민승리 21’은 주당 40시간 노동제 실현, 재벌해체와 경제개혁 을 통한 경제민주화 등 10대 핵심공약을 내놓았다.

또 ‘사회복지 대혁명’을 전면에 내걸었다. 지하경제로부터 세원발굴과 국방비 절감 등을 통해 사회복지 예산을 오는 2002년까지 전체의 20%선까 지 끌어올리는 야심찬 계획을 통해 국가적 공동육아 실시, 4대 사회보험 의 통합일원화 등 교육·의료·주거·노동 분야에서 기본권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킨다는 것이다. ‘국민승리 21’은 발대식을 계기로 그동안 거점 확보 수준의 활동에서 벗어나 광범위한 민족민주 세력의 세결집으로 선거 운동을 한단계 높이기로 했다. 11월 초순까지 전국 18개 광역시도협의회 발족을 완료하고 11월 중순까지는 주요 시군구에 1백여개 지부를 건설할 예정이다. 10월26일 현재 인천, 강원, 광주·전남지역을 제외한 15개 광 역시도협의회가 출범 날짜를 확정한 상태다. 또 노동자들이 중심이 된 ‘ 핵심 실천단’의 80%가 구성을 완료했다. 대학생 조직인‘희망 21’과 20 ∼30대 청년들의 정치참여에 새바람을 몰고왔던 ‘푸른 21’(회장 신동근 함운경)소속 3백여 회원들이 자원봉사단으로 참여, 본격적인 선거운동을 시작했다.

그러나 ‘국민승리 21’과 권 후보의 앞날이 희망적이지만은 않다는 분석 이다. 진보세력은 상대적으로 위축돼 있고 기업들의 노조탄압으로 노동조 합의 참여 역시 평탄하지 않다는 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더욱이 권영길 후보의 지지율은 아직 기대에 훨씬 못미친다. 여기에 진보민주진영 안에 서조차 ‘국민후보 전술’에 대한 회의론이 존재하는 등 발목을 잡는 요 소가 한두가지가 아니다.

하지만 선거는 이제부터를 시작이라는 게 ‘국민승리 21’의 주장이다. 당당한 목소리로 정치 보수화를 막아내자

유기홍 대변인은 “소극적이던 노조가 이제 달라지고 있다”며 “공익노 련의 실천단은 이미 목표치를 130% 초과달성했다”고 전했다. 특히 방송 토론회 등에서 권 후보가 배제돼 일반 유권자들은 물론 조합원들에게조차 인지되지 않던 한계도 극복되기 시작했다는 설명이다. 27일 한국방송공사 의 뉴스라인을 시작으로 11월 초순 평화방송의 대선주자 6자 토론회 등이 예정돼 있어 권 후보 지지율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것이다.이와함께 밑바 닥은 진작부터 달궈지고 있다는 게 관계자들의 주장이다. 안병욱(가톨릭 대) 손호철(서강대) 김진균(서울대) 김상곤(한신대) 교수 등 3백여명의 대학교수들은 오는 10월31일 대규모 정책자문단을 발족하는 등 본격적인 선거운동에 돌입한다. 또 지난 92년 민중후보 백기완 선거대책본부에 참 여했던 인사들도 적극 힘을 보태기로 했다.‘국민승리 21’에 전국적인 하부 조직력을 보태고 있는 한국민주청년단체협의회의 김종원 사무처장은 “수원·안양 지역에서 3백명의 핵심 실천단이 선정되는 등 전국의 하부 조직들이 구축되고 있다”며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대선 때까지 전국에서 2백∼3백개 지역지부 건설이 완료될 것 이고 이를 통해 선거 뒤 진보민주진영의 숙원인 진보정당 건설로 질적 비 약을 이뤄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전국연합의 한 핵심 관계자는 “이견 이 있지만 진보정당 건설의 필요성에는 모두 공감하고 있어 선거과정에서 구축된 조직력을 발판으로 당을 만드는 성과는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 고 주장했다. 더욱이 ‘국민승리 21’에 참여하고 있는 세력들은 “김대 중 총재의 당선 가능성이 높더라도 당당하게 진보의 목소리를 높이는 게 그들의 보수화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믿고 있다. 너도나도 보수를 표방하는 대선정국에서 진보의 목소리를 내고 조직화하는 것이야 말로 “미래에 대한 최선의 투자”라는 것이다.

한편 정권교체가 당면한 최선의 가치이며 여기에 민주진영의 모든 역량이 집결돼야 한다는 입장도 하나의 세력으로 구체화되고 있다. 지난 10월23 일 서울 한국프레스센터에서는 ‘정권교체 민주개혁 국민위원회 준비위원 회’(국민위원회)가 발족했다. ‘국민승리 21’이 조직적인 진보민주 세 력을 기반으로 출발한 것과는 달리 ‘국민위원회’는 재야 사회운동세력 의 명망가들을 중심으로 꾸려졌다. 변형윤(서울대 명예교수) 박용길(통일 맞이 이사장) 이소선(전태일 어머니) 구중서(민족예술인총연합회 이사장) 박정기(민주화실천유가족협의회 의장) 지선(백양사 주지)등 3백31명이 포 진해 있다.

‘국민위원회’는 발족 취지문에서 97년 대선이 “87년 6월민주항쟁에 참 여했던 국민이 새시대의 과제를 능동적으로 대비할 것인지, 권력독점의 병폐를 청산하지 못하고 구시대의 굴레에 머물고 말 것인지를 결정하는 갈림길이 될 것”이라며 “정권교체 경험의 부재는 정치세력의 정체화 및 보수성, 지역 갈등 심화 등 정치사회적 문제의 대부분을 심화시켰다”고 진단한다. 결국 “정권교체를 통해 이런 병폐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 다. 이들은 선거 막바지까지 국민운동 차원에서 대대적인 정권교체운동을 펼칠 계획이다.

이를 위해 10월29일 충북위원회 창립대회를 시작으로 전국지역위원회를 구성하고 종교인 여성 등 각계각층의 정권교체 선언을 추진하고 있다. 이 를 바탕으로 11월6일 국민위원회를 창립한다는 것이다. 국민위원회는 “D JP단일후보론, 민주당, 국민통합추진회의, 국민승리 21 등의 주장을 포괄 하는 정권교체와 민주개혁의 실현을 위한 ‘범야권 후보단일화’”를 추 진한다.


국민위원회 “정권교체가 민주개혁 지름길”

한편 이런 국민위원회의 방침에 대한 회의적 시각도 만만치 않다. 민주노 총의 한 관계자는 “87년 6월항쟁의 성과물인 직선제를 전면 부정하고 2 년 뒤 지지율 3%에 불과한 쿠데타 세력에 정권을 내주겠다는 김대중 총재 를 통한 정권교체가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반문했다. 이에 대해 국민위 원회의 한 관계자는 “특정후보를 지지하려는 게 아니라 국민을 분열시킨 지역주의를 극복하고 민주개혁과 통일의 시대를 맞이하는 교두보로서 정 권교체를 주장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진보민주세력은 겉보기에 또다시 두갈래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지난 87 년 DJ에 대한 비판적 지지와 후보단일화, 민중후보 등 3개 그룹으로 갈렸 고 92년 대선에서도 DJ와의 정책연합을 주장한 전국연합과 민중후보 백기 완 독자추대론으로 분열했던 민족민주세력이 이번에는 ‘국민승리 21’과 사실상 DJ 지지를 통한 정권교체에 희망을 걸고 있는 세력으로 양분된 것 이다. 그러나 이들은 서로가 '정권교체'의 가치를 부정하거나 '진보민주 진영의 정치세력화'의 목표를 부정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이들의 시도 는 새로운 질적 도약을 위한 서로 다른 시각에서의 모색으로 평가돼야 할 것같다.

신승근 기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11월06일 제 18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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