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권리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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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은평구 북가좌동 주택가. 골목엔 수도공사가 한창이지만 이 골목 에서만 30여년을 살아온 이신곤(63)씨는 수도로 인한 섭섭한 마음을 감추 지 못한다.
유난히 더웠던 95년 여름은, 30년 넘은 공직생활을 마치고 편안히 노후를 즐기던 이씨를 2년이 넘는 세월 동안 감사원에서 동사무소까지 쫓아다니 게 만들었다. 95년 7월 어느 날이었다. 몇년 전부터 시원찮던 수돗물이 눈에 띄게 쫄쫄댔다. 세탁기를 돌리는 데만도 다른 집에 비해 시간이 배 가 더 걸린다는 부인의 소리에 이씨는 수도사업소로 전화를 걸었다.
이씨의 집을 찾은, 사업소 직원인 듯한 사람들이 여기저기 살피더니 공사 를 해야겠다는 말과 함께 비용이 들 거라는 말을 남기고 돌아갔다. 그리 고 며칠 뒤 상수도공채 매입비용 1백22만5천원을 포함해 총 1백96만여원 의 공사비를 부담하라는 ‘급수공사 승인 및 공사비 납입통지서’가 날아 들었다. 공사를 하면 비용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했지만 1백96만여 원은 너무 비싸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군다나 상수도계량기까지의 상수도인입관은 서울시 재산이었다. 관리책 임이 시에 있는 인입관 공사비 부담도 받아들이기 어려운데 공채까지 매 입해야 한다는 것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다. 이씨는 서울특별시 상수도 사업본부에 자신의 생각을 알렸다. 일주일도 안 돼 “급수조례 8조에 의 거 급수공사비 및 상수도공채를 매입토록 한 처분은 정당하다”는 회신이 돌아왔다. 법이 있다면 어쩔 수 없지 않느냐는 생각이 들었지만 2백여만 원에 달하는 비용을 생각해 조금 불편하더라도 참고 살기로 했다. 그렇게 95년과 96년 여름을 보냈다. 유난히 더웠던 96년 여름 쫄쫄거리는 상수도 는 차라리 고문이었다. 이런 상태로 다시 여름을 맞을 수는 없다는 생각 이 들었다. 96년 12월 다시 공사를 요청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공사비가 89만원밖에 청구되지 않는 것이었다. 상수도공채 매입비용이 빠진 것이었 다. “법이 바뀌어 96년 1월부터 공채매입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거였 다. 진작에 알았더라면 지난 여름 물 고생은 안 해도 됐을 텐데라는 생각 이 들자 억울했다.
30여년이 넘는 공직생활을 했던 이씨의 상식으로서는 당연히 공채매입이 없어졌다는 사실을 알려줬어야 했다. 따지고 들었다. 수도사업소에서 내 미는 관련규정을 구해 읽었다. 서울특별시 급수조례 제8조 3항의 단서에 는 “노후관 개량사업을 시행하는 지구 안에서의 급수장치 개량공사와 수 요자의 신청에 의한 노후된 급수장치의 개량공사에서 수도계량기까지의 급수장치 개량공사에 대한 공사비는 전부 또는 일부를 시에서 이를 부담 한다.”
이씨의 생각으로는 인입관이 노후해서 물이 안 나오는 것이니 이 조례에 따르더라도 공사는 당연히 시에서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 따지는 이씨에게 지금은 수돗물 공급을 원할하게 하기 위해 이전의 13m m 직경의 관을 사용하지 않고 20mm 관을 사용하기 때문에 공사비를 부담 해야 한다는 답변이었다. 13mm 관으로도 충분한데 20mm 관을 사용한다는 것도 받아들일 수 없었다. 81년 이전에 개축하거나 신축한 집의 인입관 공사는 비용을 시에서 부담하지만 81년 이후의 경우는 개인이 부담해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됐다.
그간의 사정을 정리하고 원하지도 않는데 20mm로 인입관을 교체하는 것의 부당함과 81년 이전과 이후를 나눠 비용을 부담케 하는 것이 부당하다는 내용을 정리에 다시 진정서를 작성했다. 답변서에 적혀 있는 내용은 수도 사업소의 지금까지 주장과 조금도 달라진 게 없었다. 배급수관개량공사지 침과 조례 8조 2항 “건물 증축에 따른 급수관 구경확대공사는 기존 건축 면적을 제외한 증축면적을 기준으로 정액공사비를 적용한다”는 규정 때 문에 공사비는 개인이 부담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급수조례를 면밀히 살펴보았다. 관이 노후해서 공사를 다시 해야 한다는 표현만 받아낸다면 8조 3항의 단서 조항 “수요자의 신청에 의한 노후된 급수장치의 개량공사에서 수도계량기까지의 급수장치 개량공사에 대한 공 사비는 전부 또는 일부를 시에서 부담한다”의 적용을 받을 수 있다는 생 각이 들었다.
수도사업소로 다시 급수이상신고를 냈다. 이번에는 “저의 견해로는 수도 본관에서 수도계량기 사이의 인입관이 노후하여 누수가 되는 것으로 추정 된다”는 내용을 적어 넣었다.
답신이 왔다. ‘인입관 노후와 관경축소 인해…’라는 내용이 들어 있었 다. 다시 진정서를 수도사업소로 보냈다. 답변은 조금 구체적이 되었지만 달라진 것은 없었다.
이번에는 감사원으로 진정서를 넣었다. 서울시의 그동안 답변과 그에 대 한 이씨 자신의 견해, 그리고 2년여에 걸쳐 알게 된 법적 문제까지 포함 시켰다.
답변서가 날아왔다. 서울시로 이첩했다는 내용이었다. 서울시에서도 답변 이 왔다. 2년 동안 진정서 공방을 벌였던 수도사업소로 이첩했다는 내용 이었다. 수도사업소에서도 답변이 왔다. 달라진 것은 없었다.
감사원에까지 진정을 낸 것은 서울시나 수도사업소에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인데…. 화를 참을 수 없었다. 감사원으로 쫓아갔다. 담당사 무관을 만나 어떻게 민원을 이렇게 취급하느냐고 따졌다. 최소한 상부기 관에 진정을 냈다면 납득은 못시키더라도 조금은 더 자세한 답변이 나오 도록 노력은 해야 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담당사무관은 그 자리에서 수 도사업소로 전화를 걸었다. 그렇게 해서 공사비를 부담하는 경우와 안 되 는 경우, 구경을 확대해야 하는 경우 등이 적힌 답변서를 받을 수 있었다 . 섭섭했던 마음이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었지만 조례 8조 3항이 자꾸만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러던 참에 바로 옆동네에서 상수도 공사를 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 주민들에게 얼마나 비용을 부담했냐고 물었다. 비용부담은 전혀 없었다 는 답변이었다. 8조 3항 단서 가운데 ‘노후관 개량사업을 시행하는 지구 안에서의 급수장치 개량공사’에 해당되는 공사였다.
바로 옆동네인데 한쪽은 무료로 해주고 한쪽은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는 것이 또 이씨를 자극했다. 이번에는 이웃의 여섯집들과 함께 공사청구를 했다. 물론 인입관의 노후라는 이유에서였다. 세집은 81년 이전에 개축한 집이었고, 나머지 세집은 이씨처럼 81년 이후에 개축한 집들이었다. 짐작 했던 대로 81년 이전에 개축한 집들은 곧 공사가 시행되었지만 나머지 집 들에 대해서는 공사비용이 청구되었다. 이씨는 다시 진정서를 작성했다. 한가위가 지난 9월24일 답변이 날아왔다. 1항과 2항의 가, 나, 다는 이전 까지와 전혀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러나 마지막 ‘라’는 이제까지와 다른 내용이었다. 이씨의 동네에 대해 97년 하반기 노후관 개량공사 사업이 추 진중이라는 것이었다. 한편으로는 반가웠지만 한편으로는 괘씸하다는 생 각도 들었다. 97년에 들어서만도 5차례가 넘는 진정서 공방이 있었다. 그 동안 단 한번도 노후관 개량공사가 추진중이라는 이야기는 없었다. 무엇 때문일까?
이씨의 주장이 타당하지만 수도사업소쪽이 지난 2년여 동안 주장해왔던 공사비용 개인부담 주장을 체면상 철회할 수 없자 수도사업소쪽이 생각해 낸 편법인지, 아니면 공사계획이 이미 잡혀 있었지만 지긋지긋하게 진정 을 해대는 이씨를 골탕먹이기 위해 공사추진계획을 알려주지 않았던 것인 지…. 공사는 끝났지만 이씨에겐 여전히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다.
윤승일 기자
© 한겨레신문사 1997년11월06일 제 18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