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리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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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가 나던 해 세밑/ 우리는 오후 다섯시에 만나/ … 불도 없이 차가 운 방에 앉아/ 하얀 입김 뿜으며/ 열띤 토론을 벌였다/ 어리석게도 우리 는 무엇인가를/ 정치와는 전혀 관계없는 무엇인가를/ 위하여 살리라 믿었 던 것이다/ 결론 없이 모임을 끝낸 밤/ … 우리는 때묻지 않은 고민을 했 고/ 아무도 귀기울이지 않는 노래를/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노래를/ 저 마다 목청껏 불렀다/ … 노래는 겨울밤 하늘로 올라가/ 별똥별이 되어 떨 어졌다/ 그로부터 18년 오랜 만에/ 우리는 모두 무엇인가 되어/ … 다시 모였다/ … 처자식 안부를 나누고/ 월급이 얼마인가 서로 물었다/ 치솟는 물가를 개탄하고/ … 모두가 살기 위해 살고 있었다/ 아무도 이젠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 오랜 방황 끝에 되돌아온 곳/ 우리의 옛사랑이 피 흘 린 곳에/ 낯선 건물들 수상하게 들어섰고/ 프라타너스 가로수들은 여전히 제자리에 서서/ 아직도 남아있는 몇 개의 마른잎 흔들며/ 우리의 고개를 떨구게 했다/ 부끄럽지 않은가/ 부끄럽지 않은가/ 바람의 속삭임 귓전으 로 흘리며/ … 한발짝 깊숙이 늪으로 발을 옮겼다”.
김광규 시인이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를 발표한 지 공교롭게도 또다른 18년이 흐른 어느 날, 우리는 우연찮게 마포에서 만나 밤늦게 북창동을 떠돌았다. 지금의 나를 미워하고 또 연민하고, 너를 조금은 경원하고 서 로를 한탄하며, 그렇게 술을 마셨다. 18년 전, 신림동에서 광화문 태평로 로 내달리고, 느린 놈은 짭새에 끌려가고, 영등포 로터리에서 삐라를 뿌 리고, 공단에 숨어들어가고, 밤낮을 바꿔 조직하고, 술에 취해 고단함에 찌들려 휴짓조각처럼 구겨져 잠들고, 그래도 무언가 이룰 수 있다는 꿈 하나만으로 서로에게 따뜻했던 그때를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180호 만리 재가 지독하게 편향됐느니 차선도 아닌 차악에 매달렸다느니 현실을 내세 워 간단히 우리의 가치를 포기했다느니 너도 줄을 섰냐느니, 그것은 인간 으로서 최소한의 연민인데, 다가오는 사태의 위험을 전하려 한 것인데 라 느니, 대선을 앞둔 논란도 잠시였다. 아이들은 그렇게 살지 않게 하겠다 고 누군가 이야기했고, 차라리 멀리 떠나버렸으면 하는 희망이 헛기침처 럼 쏟아지고, 결국 후회할 수밖에 없다는 음울한 내일에 대한 자조가 이 어졌다. 모두 꿈을 버렸다고 허세를 부렸지만 벌거벗은 나뭇가지 사이를 삐져나가는 바람보다 공허했다. 새벽녘 그래도 오기는 남아 태평기원에 들어가 졸린 눈 비벼대며 공연한 적의를 흑백의 반상에 토해냈다. 새벽을 기다리는 중늙은이 셋만이 우리와 함께했다.
바람이 긴 한숨처럼 밀려오고 움츠린 어깨 위로 낙엽이 쏟아졌다. 낙엽은 차갑게 내리꽂히는 가로등 불빛에 반짝이며 태평로에 흩날렸다. … 그날 도 옥상에선 삐라가 하얗게 뿌려졌고, 단 몇분도 되지 않아 친구는 끌려 갔고, 그래도 삐라는 계속 뿌려지고 친구들은 짓밟히며 끌려갔고 끌려가 며 노래를 불렀다. … 그마저 거부하는 현실에 어쩌면 우리는 몸을 맞춰 야 한다. … 낙엽 밟히는 발바닥을 비튼다.
아무도 말이 없었다. 그러나 그래도 ‘일하는 사람들의 세상’을 위해 몸 바치는 친구들, ‘권력독점의 병폐를 극복하기 위한 정권교체’를 국민운 동화하는 데 헌신하는 친구들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었다. 우리는 눈짓으 로 서로가 조금은 힘이 들고 조금은 외롭기 때문일 거라 생각하며 헤어졌 다. 연말엔 모처럼 신나는 망년회나 한번 하자며.
한겨레21 편집장 곽병찬
© 한겨레신문사 1997년11월06일 제 18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