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표지이야기

허주, DJP와 손잡는가

(사진/허주는 24일 원내외위원장 1백50여명이 참석한, 이회창 총재를 지지하는 모임을 주도했다.)

“우리는 이미 선거 결과에는 마음을 비웠다. 정정당당하게 싸워서 이기 는 것이 최선이지만, 국민들이 등을 돌려 지게 된다면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 다만 앞으로 ‘이회창씨가 대한민국 선거 문화를 바꿨으며, 짧은 기간이지만 정치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는 평을 후세에 듣는다면 그것으 로 만족할 수밖에 없다.” 이 총재가 김 대통령의 탈당을 요구한 데 이어 여당의 프리미엄이었던 지정기탁금의 폐지를 선언하는 등 일련의 움직임 을 하고 있는 데 대한 한 측근의 배경 설명이다.


정말 마음을 비웠기 때문일까?

이 총재도 한 모임에서 “나는 대통령병에 걸린 환자가 아니다. 이기고 지는 승패와 상관없이 3김청산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이제 기득권에 연연하지 않고 모든 것을 털고 새출발하겠다는 의미로 한 말이 지만, 뒤집어 해석하면 연말 대선에서의 패배도 각오한다는 뜻이다.

야당을 각오한다는 것은 말이 쉽지 만년 여당을 해온 입장에서는 쉬운 일 이 아니다. 민주계가 해당행위라는 비난을 감내하면서 줄곧 후보 교체론 을 주장해 온 것은 ‘어떤 일이 있어도 정권을 못내놓겠다’는 여당 특유 의 정서를 대변하는 사례에 불과할 정도로 여당의 정권집착은 특히 집요 하다.

그렇다면 이회창 총재나 김윤환 공동선대위원장 등 주류쪽은 왜 ‘야당이 되어도 좋다’고 하는 걸까. 그만큼 열린 마음을 가져서일까? 이 물음에 대한 해답은 ‘아직은 우리 정치인들이 그처럼 순수하지만은 않다’고 말 하는 것이 좀더 정확할 것이다. 설령 정치신인인 이 총재는 그럴지 몰라 도 그를 둘러싼 기성 정치세력은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정확히 움직이 는 프로 정치인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주류쪽이 야당되기를 각오하면서 그리는 앞으로 구상은 무엇일까. 이와 관련해 정치권 일각에는 ‘역 3당 연합’에 의한 내각제 개헌 시나 리오가 나돌고 있다. 여권 일부에 돌고 있는 ‘DJP’ 집권 이후 국민회의 와 자민련 그리고 허주의 신한국당 등 3당의 제휴에 의한 내각제 개헌 추 진설이 그것이다. 99년 말 내각제 개헌 약속을 주요 고리로 한 ‘DJP 연 대’는 현재의 의석 분포상 다른 정파의 협조없이는 약속 실현이 불가능 하다. 바로 그때 야당이 된 신한국당의 사실상의 주인은 이 총재가 아니 라 자기 세력을 가진 허주일 수밖에 없는데, 허주가 내각제 개헌에 동의 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평소 허주가 내각제주의자라는 점은 이런 분석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되고 있다. 국민들이 반대하는 개헌은 안 된다는 단서를 항상 갖고 있지만, 허 주는 일본식 내각제를 이상적인 정치구조로 생각하는 것은 분명하다. 또 그는 한때 자민련의 김용환 의원 등을 수차례 접촉해 큰 그림을 그리는 등 내각제를 타진했던 흔적도 있다. 그와 가까운 한 의원은 “이번에 정 권 창출이 안 되면 결국 DJP의 공동집권으로 이어질 텐데 그것은 바로 내 각제 개헌을 의미하는 것 아니냐. 차선의 방안으로 그것도 괜찮다고 허주 는 생각하는 것 같더라”고 말했다.


PK·YS에 대한 포위전략

허주가 DJ와 JP 두 사람 모두와 사이가 나쁘지 않다는 점도 대선이후 DJ 와 JP, 허주 3자간의 연대설에 무게를 실어주는 요인이 되고 있다. 비주 류의 한 3선 의원은 “허주와 DJ간에는 옛날부터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 왔다”며 “두 사람이 은밀하게 얘기를 하지 않아도 서로 대선 이후의 판 변화에 대해 이심전심 공감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YS와 결 별한 허주가 갈 길은 DJ와 제휴하는 길이며, DJ 역시 TK세력의 대주주인 허주와 손잡는 것이 불리할 게 없는 등 서로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다는 것이다.

이런 구상대로 ‘내각제 3자연대’가 이뤄진다면 이는 ‘역3당 합당’에 다름 아니다. 90년 3당 합당이 지역적으로는 호남, 인물로는 DJ를 포위한 기타 세력의 연합이었던 데 비해 ‘내각제 3자연대’는 지역적으로는 PK, 인물로는 YS를 고립시키는 YS에 대한 포위전략이기 때문이다.

이번 신한국당 내분이 지난 90년 합당으로 뭉쳤던 허주와 YS간의 싸움이 라는 시각도 여기에서 나온다. 90년 3당 합당으로 DJ를 고립시켰던 YS와 민주계가 7년 만에 거꾸로 고립당하는 설움을 당할지 여부도 여기에 달렸 다.

김종철 기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11월06일 제 18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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