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표지이야기

“우린 못 나가, 니들이 나가라”

(사진/비주류 민주계 의원들의 조찬모임. 이회창 총재를 가장 효과적으로 제거할 방법을 찾는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관전자들은 '차라리 당을 떠나는 게 온당한 것 아니냐'고 말하지만 신한 국당내 비주류 민주계는 '어림없다'는 반응이다. 당장 나가봤자 대안이 뾰족한 것도 아니고 추위 모르고 따듯하게 지내온 터에 엄동설한을 이겨 낼 궁리도 떠오르지 않는다. 당장엔 이 총재를 제거하고 당을 접수하는 게 최선인 것이다. 정권은 잃어도 재산만은 챙길 수 있기 때문이다.


“몰아내는 게 더 빠르지”

요즘 이들의 눈에는 '핏발이 서있다'고 한다. 민주계의 한 중진의원은 “ 우리가 왜 나가. 신당을 만드는 것보다 이회창을 몰아내는 게 더 빠르지 않겠어…”라고 말했다. 이 총재를 당에서 축출하기 위한 결심을 굳혔다 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결심은 당 안팎의 상황을 볼 때 개인적인 바람일 뿐이다. 당장 쫓아내고 싶어도 최대 계파의 보스인 김윤환 고문이 이 총 재의 든든한 후원자로 뒷심을 대고 있고 이한동 대표마저 중립지대로 옮 겨앉은 상황에서 민주계는 열세일 수밖에 없다. 명분도 마땅치않다. 결국 이런 고려 속에서 민주계는 단일한 대안도 갖지 못한 채 이 총재 고사작 전에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고 있는 것이다.

민주계는 일단 27일 ‘정권재창출을 위한 국민연대’라는 협의체를 결성 해 ‘반DJP 연대’ 세결집에 총력을 기울이기로 했다. 이 총재를 몰아내 건 아니면 탈당하건 일정 규모 이상의 세력이 있어야 충격을 가할 수 있 기 때문이다. 그동안 민주계 일부의 ‘후보교체론’에도 다수의 비주류가 관망자세를 유지해왔다. 일부 민주계 의원들은 이 총재 적극 지지파로 돌 아서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섣불리 탈당 등 최종적인 선택을 할 경우 그나마 동조자 중 이탈자가 등장할 것은 자명하다.

민주계가 말하는 '국민연대론'이란 현재 35%대의 여론지지를 받고 있는 ‘DJP연대’에 대항할 수 있는 방법은 ‘반DJP연대’밖에 없다는 전제에 서 출발한다. 따라서 이회창 이인제 조순 후보를 하나로 묶어 일정한 시 점을 정해 그때 지지율이 가장 높은 후보로 단일화하기로 선언한다는 것 이다. 하지만 바닥세를 면치 못하는 이 총재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리라 는 것은 불보듯하다. 이 경우 민주계는 탈당의 명분도 얻을 수 있고 이 과정에서 ‘반DJP 정서’를 가진 중립지대와 관망파 의원들을 묶어 이 총 재를 고립시키는 이중의 효과를 노릴 수 있는 셈이다. 물론 이 기구는 언 제든 탈당을 위한 유용한 기구로 전환이 가능하다는 복안도 갖고 있는 것 이다.


또 ‘폭로’들이 준비된다

다른 한편에서는 ‘이회창 불가론’을 확산시키기 위한 조직적인 공격도 멈추지 않는다. 핵심은 이회창 총재에 대한 흠집내기다. 강삼재 전 총장 이 “김대중 총재의 비자금 관련자료는 총재가 줬다”고 주장한 것이나 박범진 의원이 “김대중 총재 비리조사팀을 당에 구성했고, 정연씨의 병 역 기록이 외부에 누출되지 않도록 내외경제정책연구원에 압력을 행사했 다”고 폭로한 것은 이런 공세의 연장선에 있다. 물론 이런 폭로전으로 국민회의 김대중 총재가 어부지리를 얻을 가능성이 많다는 점은 민주계도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그보다 이 총재 밀어내기가 우선이다. 특히 이 총 재의 정치개혁론이 여론을 탈 수 있는 만큼 이를 저지해야 한다. 민주계 의 한 핵심 관계자는 “이 총재는 항상 YS를 치받아 여론의 지지를 얻어 왔다”고 말했다. 이를 통해 이 총재의 지지율이 답보상태를 유지하거나 더 떨어진다면 당내의 ‘이회창 무망론’은 크게 세를 얻을 것이고 결국 주류 가운데 중도파나 관망파들까지 동요할 것이라는 계산이다. 비주류의 한 의원은 이와 관련 “이 총재에 대한 단순동조 의원들을 분리시킨 뒤 김윤환 의원의 주류계 핵심을 이탈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10월 24 일 이 총재 지지대회에 불참한 69명의 의원들 가운데 상당수는 관망파 내 지는 중립으로 분류된다.

국민연대론은 이런 방법으로 이 총재를 고립시킨 뒤 전국위원회나 전당대 회 소집을 요구한다는 것으로 이어진다. 물론 후보교체를 위한 대회이다. 명분도 쌓은 만큼 대회가 열리면 상당한 폭발력을 기대할 수 있다. 실패 하더라도 최종적으로 탈당에 따른 명분상의 부담을 덜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관련해 민주계는 이 총재의 경선자금출처와 사용처, 해외 재산 보유 설 등에 대한 잇따른 폭로를 계획하고 있다.

비주류쪽은 일단 '국민연대'를 위해 후보교체 서명운동과 세규합을 시도 하는 등 조직적으로 나서고 있다. 이미 서석재 의원이 이인제-조순-민주 계-통추의 4자연대를 추진하고 서청원 의원이 정치발전협의회, 신상우 의 원이 부산 출신 의원, 박관용 의원이 청와대 출신을 담당하기로 하는 등 역할 분담을 끝낸 상태다. 세력 확산이 일정 정도 성과를 얻게 되면 의원 총회나 지구당위원장 연석회의, 전당대회 소집 등을 공식 요구할 계획이 다.


실패할 경우엔 어찌할 것인가

이와 함께 일부는 이달 말쯤 신한국당을 탈당해 외부에서 ‘이회창 흔들 기’를 시도하는 방법도 추진하고 있다. 안팎에서 이 총재에 대한 협공을 벌인다는 것이다. 서석재 김운환 의원 등 조기탈당을 주장하는 민주계 의 원 일부와 이인제 전 경기지사 지지 의원으로 분류된 김학원 원유철 의원 , 그리고 김대중 총재 비리 조사팀을 구성했다고 폭로한 박범진 의원 등 이 그 대상자로 점쳐지고 있다.

하지만 이런 민주계의 ‘이회창 도려내기’ 구상이 얼마나 실효성을 가질 지는 미지수다. 비주류의 잇따른 공격에도 주류쪽의 진용에 특별한 동요 가 일지 않고 있다. 녹슨 칼이긴 하지만 이 총재가 쥐고 있는 당권도 무 시할 수 없는 존재다. 더욱이 허주가 민정계 의원들 47명과 원외위원장 1 6명 등이 강력한 뒷심을 제공하고 있어 이 총재가 쉽게 물러서지 않을 전 망이다.

한편 이 총재가 끝내 물러나지 않을 경우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민주 계의 대안 자체도 불분명하다. 이인제를 대안으로 세우자는 주장부터 조 순-이인제-통추-민주계 등 4자연대를 끝까지 밀고가야 한다는 세력, 눌러 앉아 버티자는 세력까지 다양하다. 민주계의 한 중진의원은 이와 관련 “ 이인제를 밀려면 진작 밀었을 것”이라며 “연대추진에 소극적인 사람은 이인제”라고 말하기도 했다. 국민연대 구상은 애초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 이와함께 후보등록이 한달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너무 한가로운 구상 이라는 지적도 있다. 이회창 도려내기. 마음은 굴뚝 같지만 현실은 따라 주지 않는 상황에서 민주계는 그야말로 ‘시렁 눈 부채 손’(식견만 높고 수완이 없음)신세다.

신승근 기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11월06일 제 18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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