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표지이야기

YS, 통일민주당 재건?

(사진/비극의 씨앗. 신한국당 내분의 뿌리는 90년 3당합당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민주계 신당은 YS당?

“이회창 총재와 김영삼 명예총재간의 싸움은 결국 당의 분당사태로 이어 지지 않겠습니까. 그 경우 민주계가 중심이 돼 만드는 당은 YS당이지 누 구 당이겠습니까?” “몇달 뒤면 대통령직에서 물러날 김 대통령으로서는 통일민주당의 재건이야말로 퇴임 후 자신을 ‘보호’해줄 정치적 안전판 이라고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더구나 김종필 총재를 끌어들인 김대중 국 민회의 총재의 집권이 유력한 상황에서 신한국당을 3당합당 이전으로 쪼 개는 것이 향후 영향력 확대를 위해서도 더 유리하다는 판단이겠지요.” 신한국당의 내전을 바라보는 관전자들의 시비 평가는 제각각이지만, 결과 에 대한 전망은 대체로 일치한다.


“평화적 후보교체는 불가능하다”

신한국당의 내전이 가속화되면서 주류쪽과 비주류쪽은 각자 제갈길을 가 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비주류쪽은 이 총재가 10월22일 기자회견에서 명예총재인 김 대통령의 당적 이탈을 요구한 직후만 하더라도 당내에서 후보교체를 시도한다는 방침이었다. “누가 만든 당인데 우리가 나가느냐 ”는 게 이들의 지배적인 정서였다. 그러나 당내 최대 계파보스인 김윤환 고문이 이 총재에 대한 지지를 분명히 함에 따라 후보교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쪽으로 마음을 돌렸다. 비주류쪽의 한 초선의원은 “김 대 통령이 당초 이 총재의 당적 이탈 요구를 거부한 것은 민주계에 ‘당내에 서 이 총재를 쫓아내라’는 정치적 메시지였다”며 “그러나 허주(김 고 문의 아호)가 끝까지 이 총재와 함께 가겠다는 뜻을 굳히고 이한동 대표 마저 중립적 태도를 유지하고 있는 한 당내에서 후보교체를 ‘평화적’으 로 달성하는 것은 불가능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후보교체의 명분 이 약한 만큼 정치적인 힘이라도 월등하게 강해야 성공할 수 있는데 주류 쪽의 대응과 결속이 생각보다 강하다”면서 “국민들에게 비난을 적게 받 는 길은 이제 반이회창 세력을 가능한 한 많이 규합해 하루빨리 탈당하는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비주류 진영이 23일 강삼재 총장의 비자금 자 료 출처에 대한 공개를 시작으로 이 총재에 대한 폭로전에 나선 것은 이 들의 행로를 분명히 보여주는 사례다. 강 총장은 이날 사무총장직을 사퇴 하기에 앞서 가진 고위당직자회의에서 “김대중 비자금 자료는 이회창 총 재가 구기동 자택으로 불러 나에게 준 것”이라고 말했다. 연출자는 어디 까지나 이 총재이며 자신은 단순한 하수인에 불과했다는 주장이다. 김영 삼 총재비서실장을 지낸 박범진 의원도 25일 기자회견을 자청해 비자금 자료 수집에 이 총재가 개입됐다고 주장했다. 즉, DJ 자료 수집은 이 총 재가 당 대표로 있던 지난 8월 말 고위당직자회의에서 DJ에 대한 약점을 수집하는 특수팀을 구성하기로 한 데서부터 시작됐다는 것이다. 정적의 약점 수집과 폭로를 이 총재 자신이 주도했다는 점은 그의 도덕성에 먹칠 을 가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이는 이 총재에 후보직 사퇴를 촉구하는 압박도 되지만 장차 갈라서기 위한 명분쌓기용이라는 게 정가의 일반적인 분석이다. 세를 모으는 데도 유용한 수단이다. 이어 ‘문제가 있는’ 후 보와는 함께 갈 수 없다는 선언이 뒤따를 것이라는 이야기다.


정권재창출 포기했다는 뜻

(사진/신한국당 경선대회에서 이회창당선자와 함께 기쁨을 나누는 김 대통령. 그러나 이후 이 후보에 대한 지원은 석연치 않았다. )

물론 갈라선 뒤 비주류의 행로는 여전히 혼란스럽다. 이 혼란이 당내에서 의 진흙탕 싸움을 연장시키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민주계 일부는 이인제 후보의 국민신당으로 곧바로 들어가자는 의견을 내놓는 반면 다른 한편에 서는 ‘국민연대’와 같은 정치적 협의체를 만든 뒤 국민신당과 민주당, 통추 등을 함께 묶자는 주장을 하고 있다. 또 독자 정당을 만들어 박찬종 고문 등 제3의 인물을 후보로 추대해 대선에 나가자는 의견도 있다. 그러 나 대선 이후의 행로에 대한 전망은 대체로 일치한다. ‘주력은 부산·경 남을 중심으로 한 YS신당으로 모아지리라’는 것이다.

대선을 코앞에 둔 상황에서 민주계가 탈당을 감행하려는 이유는 이런 전 망 속에서 살펴볼 때 찾아진다. 탈당은 90년 3당합당의 해체와 여권의 핵 분열을 의미하며 그나마 남아 있는 정권재창출의 가능성마저 아예 포기했 음을 말한다. 물론 여권의 무게중심이 이인제 전 지사에게로 집중될 경우 싸워볼 만하다는 기대를 갖게 할 수 있겠지만 아직 민주계 주력은 이 전 지사를 경원한다.

실제로 민주계의 어떤 인사도 신당의 집권 가능성을 믿지 않는다. 특히 이회창 총재가 제1당의 후보로 남아 있어 여권이 분열된 상태로 존재하는 한 그 가능성은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다. 비주류의 한 핵심인사는 “이 회창 후보가 신한국당 후보로 있는 한 우리 모두가 설령 현재 2위를 달리 고 있는 이인제 후보를 지원하고 다른 세력이 뭉치더라도 대선에서 승리 하기는 어려운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는 각종 여론조사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그렇다면 왜 김 대통령은 정권창출을 포기하고 분당의 길로 몰아가고 있 는 것일까. 단순히 이회창 총재에 대한 감정 때문일까. 그러나 그는 이 총재의 국무총리 재임시 자존심이 짓밟히는 경험을 하고서도 그를 신한국 당에 영입했고, 다른 중진들의 반대에도 후보경선을 목전에 둔 시점에서 당대표에 임명했다. 더구나 전임 대통령들은 정권재창출을 목적으로 후임 자에게 ‘필요하다면 나를 밟고 가라’면서 스스로 희생양을 자처한 예도 많다. 또 김 대통령은 이같은 양해가 있기도 전에 노 전 대통령을 밟고 섰다. 감정만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대목이다.

청와대 출신의 한 초선의원은 “이 총재와의 결별은 곧 여권의 공멸이라 는 점을 모를 리 없는 김 대통령이 이회창 총재의 도전을 ‘용서’하지 않고 정면대응해 갈라서는 쪽으로 방향을 정했다는 것은 사실상 정권창출 을 포기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김 대통령 은 지난 24일 김대중 총재와의 회동에서 “나는 반드시 누가 대통령이 돼 야 한다거나, 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 없다”고 말했다. 속내는 모르겠지 만 명시적으로는 이른바 정권재창출을 포기했다는 표명이다. 정권재창출 이라는 목적 하나를 위해 ‘반DJ연합’까지 추진하려고 했던 그간의 태도 와 비교할 때 놀라운 변화가 아닐 수 없다.


‘퇴임 뒤 영향력’포기않는 YS

(사진/"과연 청와대 몰래 했을까." 김태정 검찰총장의 비자금 수사유보 발표 모습. )

이런 태도 변화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정치권은 그 답을 김대중 총재 가 집권할 경우 제기될 내각제 개헌에서 찾는다. DJP연대의 핵심고리인 내각제 개헌 약속이 김대중 총재 집권 이후 실천에 옮겨질 수밖에 없으며 , 그 변화된 상황 속에서 활로를 찾았다는 것이다. 대통령제 아래에서는 전임 대통령의 경우 권력의 속성상 뒷전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내각제에서는 자파 세력만 유지하면 일정한 지분을 행사할 수 있다. 김 대통령으로서는 정권창출을 포기하더라도 내각제 아래서 그가 가장 듣기 싫어하는 ‘퇴임 후 안전’ 문제를 포함해 다양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 다. 신한국당의 한 3선의원은 “신한국당을 분당으로 끌고가 민주계 중심 의 정당을 새로 만드는 것은 김 대통령으로서는 정권창출에 못지 않은 훌 륭한 선택”이라고 말했다. 서울의 한 재선의원도 “내년 2월 퇴임 이후 정치적 고려장을 당할 뻔했던 김 대통령이 이번 싸움을 계기로 최소한 민 주계라는 정치적 계보의 수장, 지역적으로는 부산·경남의 보스로 다시 자리매김할 수 있게 된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이는 이른바 김 대통령이 ‘후 3김시대’보다 정확히 말해 ‘신 양김시대 ’의 전개를 희망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도로 읽힌다. 이 총재쪽에서 검찰의 비자금 수사유보와 관련해 김영삼-김대중 두 김씨의 밀약설 내지 는 거래설을 제기한 것은 이러한 맥락이다. 92년 대선자금의 약점이 있는 김 대통령과 비자금을 발목잡힌 김대중 총재가 서로 봐주기를 통해 공존 의 길을 택했다는 주장이다. 김 대통령이 그간 거부했던 청와대 단독회동 을 느닷없이 수용한 것도 두 김씨의 이해와 맥이 닿아 있다고 이 총재쪽 은 주장하고 있다. 그의 한 측근은 “공정선거 관리를 위해서라면 후보들 을 한꺼번에 불러 페어플레이를 당부하고 자신도 중립을 선언하면 될 일 이지 개별적으로 밀담을 나눌 이유가 뭐 있느냐”면서 “남의 눈을 피해 둘이서만 교감을 나눠야 할 ‘특별한’ 이유는 말하지 않아도 뻔하지 않 겠느냐”고 반문했다. 물론 이 총재쪽은 아직 구체적인 증거를 내놓지 못 하고 있다. 개연성뿐이다. 정치공세를 위한 억측이라는 비난도 있긴 하지 만 정치권은 그 가능성에 대체로 공감한다.

김 대통령이 처음부터 ‘신 양김시대’ 도래를 위해 물밑에서 움직였는지 여부는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7월21일 신한국당 경선 이후 그 가 자기 당 후보를 물심양면으로 지원하는 데 최선을 다하지 않은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이 총재쪽에서 주장하듯 이인제 전 지사의 탈당을 끝까지 막지 않은 것이나 당내 민주계의 후보교체론을 적극적으로 제지하지 않은 것 등은 김 대통령이 이회창 후보와 이인제 후보를 놓고 ‘두길보기’를 했다는 의심을 살 만하다. 또 김 대통령의 최측근이었던 이원종 전 청와 대 정무수석이 이 전 지사 진영을 돕고 있던 점도 김 대통령의 이중플레 이의 증거로 오래 전부터 지적됐다.


검찰수사 유보도 청와대 묵인인가

결국 이회창과 이인제를 놓고 줄곧 저울질하던 김 대통령이 어느 쪽이든 DJ를 이기기 힘들다고 판단한 시점에서 ‘DJ 집권시’ 가장 유리한 선택, 즉 ‘YS신당’쪽으로 방향을 돌렸다는 분석이 유력하다. 그 시점은 김대 중 총재의 비자금에 대한 검찰의 수사유보 발표가 있은 21일쯤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 비자금에 대한 대검중수부의 수사착수 발표가 나온 하루 뒤 검찰총장은 수사유보로 1백80도 방침을 뒤집었다. 야권조차 검찰총장의 결단을 인정하면서도 최소한 청와대의 묵인 아래 이뤄진 것으로 이해하는 눈치다. 김 대통령의 정치적 계산이 이때 비로소 끝났다고 보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결국 이를 고비로 김 대통령은 ‘DJ는 안 돼’라는 견고한 입장을 포기하고 DJ와의 공존을 선택한 셈이다. 이는 이회창 후보에 대한 완전한 포기를 의미한다.

김종철 기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11월06일 제 18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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