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독자편지

농촌에서 전하는 말

농어촌은 뿌리요 도시는 열매라 하겠다. 서울은 크게 열린 열매가 아니겠 는가? 뿌리가 튼튼해야 열매도 충실하다. 뿌리에 거름도 주고 북돋워주고 가꾸어야 할 것이다.

지난 한가위 연휴에는 국민 대이동이 있었다. 고속도로는 귀성차량 행렬 로 마치 밤하늘의 은하계처럼 한반도의 한복판을 불빛행렬로 장관을 이루 었다. 일시적이나마 복잡한 도심을 빠져나오고 싶은 심정만은 아닐 것이 다. 그 차량행렬의 불빛엔 멋과 질서가 있었다. 우리 민족 특유의 정서가 담겨 있고 윤리와 도덕관이 살아있었다. 자유롭고 넉넉함이 보이고 건전 한 생활문화로 정착해 가고 있었다. 그 불빛 속에는 시기와 질투, 탐욕과 투기가 없이 오직 고향의 아름다운 산과 들과 바다만 보였다. 21세기의 역군들이 전장(戰場)터에서 일시 휴전(休戰)을 하고 쉼터를 찾아간 병사 들의 행렬이었다.

뿌리에 거름도 주고 붓도 하고 돌아가고 싶은 심정이 아니겠는가. 돌아간 차량 안에는 농어촌에서 생산된 귀한 것들이 가득 차 있다. 노부모들의 정성이 담겨 도시에 살고 있는 자식들에게 보내진 알곡들이다. 뿌리에서 양분이 열매로 가는 증거가 아닌가 싶다.

지금은 다들 떠나가고 텅빈 벽촌의 마을은 낡은 시래기들만 남아있는 기 분이다. 그러나 깊숙이 이면을 살펴보자. 이윤을 따지는 논리로 보면 쌀 농사 지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아니다. 농어촌은 그런 궁색한 이해득 실만 가지고 농사짓고 고기잡는 것이 아니다.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 大本) 그 정신이 아직도 촌부들의 마음 속에는 실오라기처럼 자리하고 있 기에 농사철이 되고 출어시기가 오면 서두르지 않으면 안 된다는 신념 같 은 것이 남아있다. 이 나라를 지켜온 정신인지도 모른다.

첨단시대에 농어촌이 적어보이지나 않을까. 떠나는 농어촌을 다시 돌아온 복지농어촌으로 만든다는 기대가 있다. 아직은 돌아오지 않고 있으며 언 제 돌아올 농어촌인지도 모르겠다. 굳이 돌아오지 않아도 될 수만 있다면 별문제가 되지 않는다. 더 떠나지 않고 농어촌을 지켜주는 사람만 있으면 되지 않겠는가. 농수산물은 과잉생산되는 품목이 많다. 너무 부지런해서 탈이 생겼을 수도 있다. 그것은 곳 의욕이 살아있다는 증거요, 농어민은 자기 할 일을 다하고 사는 애국자들이 아니겠는가.

계획생산과 소비도 수입농수산물에 밀려 사라지고 오직 우리 것을 소중히 여기고 살려야 하는 시대변화가 온 것이다. 수입산이 국산으로 둔갑된 원 산지 표시는 혼돈의 표시가 되고 있으나 이것마저 제대로 규정짓지 못하 고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땅심이 좋은 논밭은 작물이 잘 자라서 결실도 좋지만 토박한 땅은 그렇지 못하다. 아무리 거름과 농약을 살포해도 병해에 약하고 잘 자라지 않는다.

요즈음 신문지면을 보면 살벌한 기사가 자주 눈에 띈다. 이기적이고 나만 잘살면 그뿐이고 배신과 반복이 예사다. 토박해만 간 것이다. 사회가 토 박하고 인심도 토박하고 땅에는 잡초가 자라고 바다 밑에는 불가사리가 번식을 한다. 이것들을 구제해야 풍성한 수확을 얻을 것이다.

농심은 사랑과 나눔과 믿음이 있고 숙임이 있다. 이제 대풍작을 이룬 추 수계절도 얼마남지 않았다. 오곡이 무르익은 황금 들녘을 바라보면 희망 이 넘친다. 저 넓고 끝없는 푸른 바다 위로 쏜살같이 달리는 배들의 엔진 소리를 들으면 미래가 보이는 듯하다. 이 아름답고 샅기좋은 땅에서 우리 가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가.

국복(國福)은 사회환경이 정화(淨化)되어 국민이 편안하고 안심한 생활에 서 얻어지는 것이요 도덕이 근본이 되어야 나라가 융성할 것이다. 농심은 심은 만큼 거두고 노력한 만큼 얻는다. 우리는 여기서 배워야겠다.

김원태/ 전남 고흥군 도화면 지죽리 147

© 한겨레신문사 1997년10월09일 제 17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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