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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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감독 임권택의 신작 <창>은 한국영화의 현주소를 가늠케 하는 지표다 . 그는 여전히 충무로 감독이며 그곳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이다. 80년대 <만다라> 이후 작가적 스타일을 구축하며 대중적 지지와 비평적 성공을 함께 거두었다. 그는 한국영화 시스템 속에서 자신만의 스타일이라고 불 릴 만한 것을 창조해 왔다. 그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창> 에서도 간결하고, 이미지의 연결만으로 제시되는 자신의 스타일을 견지하 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문제점들이 있다.
만일 임권택 영화가 서구영화에 대항하는 문화로, 혹은 대안적인 영화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완성도와 힘이 필요하다. 물론 영화라는 것 이 단순히 한 작가의 힘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지만, 때로는 한 작가의 역 량이 영화 문화를 이끌기도 한다.
<창>에 몰려든 관객층은 다양하다. 흔히 영화가 젊은 세대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는 현실 속에서 기이한 현상이다. 임 감독의 역량과 지지도를 확인 할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하지만 여기에는 함정이 있다. <창>은 제목 에서 알 수 있듯 한 창녀의 변모해 가는 모습을 다룬 작품이다. 영은의 모습을 통해 70년대에서 90년대까지 한국의 현대사를 삽입한다. 각 시대 대통령들이 텔레비전 화면 속에 등장하는 장면은 이 영화의 모순이자 욕 망을 그대로 드러낸다. 영은의 모습은 인본주의 시선에 의해 안타깝고 애 처롭게 비쳐지지만 한편으론 관음주의의 대상이 된다. 그 안에 끼어든 대 통령들의 모습은 마치 역사의 유령처럼, 이유없이 제시되고 있다. 시대가 그렇게 만들었다는 것인가 아니면 그에 따른 사창가의 계보학을 그리려는 것인가. 또한 창녀촌을 구성하는 각각의 인물들은 독특하고 매력적이지만 , 소재와 설정 자체가 주는 매력의 범주 안에 머물러 있다. 예를 들어 영 은을 쫓아다니는 길룡은 ‘창녀촌’을 벗어나 있는 인물이다. 그는 아무 런 설득력이 없다.
매춘이라는 소재는 한국 현대사의 핵심 키워드 중 하나다. 그러나 소재 자체가 아무리 호소력을 지닌 것이라 할지라도, 영화 밖으로부터 감독이 끌어오려고 한 모든 의도는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영화를 관통하는 작가 의 무심한 시선은 냉철한 듯하지만 한편으론 무지한 듯하다. 결국 이 영 화의 호응은 적절한 소재선택과 감독에 대한 기대가 만들어낸 거품수요라 고 말할 수밖에 없다.
영화는 사회적 맥락과 내용의 모순 속에서 갈등한다. 그것은 비단 한 감 독의 문제가 아니라 흥행성과 비평성을 의식한 이땅 영화감독들의 괴로움 이다. 하지만 문화적 얽힘 안에서 서로를 경계하지 않고 어떻게 발전이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이상용/ 영화평론가
© 한겨레신문사 1997년10월09일 제 17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