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
|
(사진/축제에 참가해 거리 행진을 벌이고 있는 네팔인들. 이들은 쿠마리 축제를 통해 다음해의 행운을 기원한다. )
지난 9월16일 네팔의 카트만두시. 너비 5m의 좁은 골목길에는 사람들이 빼곡이 들어찼다. 집집의 나무창들은 풍만한 자태의 여인들과 현란한 이 국풍의 꽃들로 수놓인 거리를 향해 일제히 열려 있었다. 하늘을 반이나 가리며 치솟은 뾰족한 잿빛의 지붕들, 히말라야를 감싸는 신들의 입김같 은 구름 사이로 비둘기떼가 쉴새없이 날아오르고 웅성거리는 사람들 사이 로 상큼한 냉기를 머금은 바람이 스쳐 지나갔다.
국왕도 무릎 꿇고 왕위계승 빌어
젊은이들의 함성이 거리에 울려퍼지자, 대오를 지어 밀려들던 사람들은 하얀 이빨을 드러내며 갑작이 앞으로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순간 모세의 기적이라도 일어난 듯 길이 열리고 크고 둥근 눈동자와 금빛 찬란한 붉은 얼굴, 길게 뻗친 어금니를 가진 괴물이 금빛 옷자락을 펄럭이며, 신들린 듯, 흥이 난듯 춤추며 나타났다. 북과 꽹과리소리가 힘차게 울려퍼지는 가운데, 들뜬 젊은이들은 가면을 쓴 무희들의 뒤를 따르는 금빛 수레에 탄 살아있는 여신, 쿠마리(kumari)를 맞으려고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
쿠마리 축제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네팔인들의 신화에 따르면, 신들이 악마들과의 전쟁에서 패했을 당시 그 지위가 격하된 번개의 신 ‘인드라’는 지상으로 꽃을 훔치러 왔다가 사 람들에게 붙들려 현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 거리 달발(Durbar)광장에서 구 경거리로 전시되는 수모를 당했다. 인드라는 풍요로운 소득을 약속하고 사람들의 손에서 풀려나게 됐는데, 이를 기념하기 위해 네팔인들은 해마 다 9·10월께 인드라의 천이라 이름붙인 헝겊을 장대에 매달아 집집마다 세우고 축제를 벌이기 시작했다. 이것이 바로 ‘인드라 자트라(축제)’이 며, 쿠마리 축제는 이 인드라 자트라 중 가장 큰 행사다.
옛 카트만두를 지배하던 종족인 네와르족의 금은세공기술자 카스트나 샤 키아족 가운데 2∼11세까지의 여자아이를 뽑아 여신(쿠마리)으로 섬기고 받드는 쿠마리 풍속은 네팔인에게는 결코 단순한 미신이 아니다. 요가의 이론적 근거를 밝힌 상키야(인도 6파 철학의 한 유파)학파와 탄트리즘으 로부터 ‘여성적 에너지의 충일성과 음양 합일을 통한 궁극에의 도달’이 라는 개념을 받아들이고, 바즈라야나 불교에서 금강 유기니(불교의 한 파 인 유가행학파의 유가 관행을 수행하는 여자) 개념을 쿠마리로 변환한 이 축제는 국왕에게는 통치권과 왕위계승을 승인받는 절차이며, 민중에게는 다음 한해의 행운을 약속받는 징표이다. 쿠마리 축제는 네팔의 추석인 ‘ 다사인 축제’의 전야제이기도 하다. 축제는 전국적 규모이지만, 쿠마리 의 수레 행진은 수도 카트만두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것이다.
해마다 우기가 끝나는 9월 말이나 10월 초 열리는(올해는 9월16일) 축제 의 첫날, 국왕은 가족과 함께 쿠마리궁으로 찾아가 ‘살아있는 여신’에 게 경배하고 축복과 권위를 상징하는 티카(이마에 찍는 축복의 점)와 꽃 을 받는다. 흐뭇해진 국왕의 두둑한 헌금과 축제일 선포로 시작되는 쿠마 리 수레 행렬은 사흘간 계속되는데, 이 기간 동안 각양각색의 괴물과 코 끼리 분장의 무용수들이 1백여가지의 다양한 전통춤을 선보인다. 뛰어난 무용수는 국왕으로부터 많은 상금을 받기도 하고, 이때 사용되는 가면은 잡귀를 물리친다 하여 소중히 보관된다.
몸에 32가지 상징 지녀야 쿠마리 자격
쿠마리 축제는 많은 전설과 신화가 얽혀 있어 그 기원을 정확히 밝히기는 어렵다. 우선 네팔이 2백40개 소왕국으로 나눠져 있던 5세기 무렵, 마나 데바 1세의 두르가 여신 숭배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다. 옛 카트만두 칸 티푸르의 왕 락쉬미캄데바(1024∼1040)가 그의 할아버지가 쿠마리 숭배로 많은 부와 권력을 획득한 것을 보고 쿠마리 숭배를 시작했다고도 한다. 혹은 힌두의 여신 두르가가 네팔에서 탈레주 여신으로 변화하면서 불교와 융화되어 쿠마리 여신으로 태어났다는 말도 있다. 그러나 전설은 좀더 낭 만적이고 비극적이다.
전설에 따르면, 브라타프 말라(Pratap Malla)와 싱(Singh) 두 왕이 어린 소녀와 즐겨 성관계를 가졌으며, 그로 인해 죽은 소녀들의 원혼을 달래기 위해 축제를 시작했다고 한다. 17세기 자야 프라카시 말라(Jaya Prakash Malla: 카트만두의 말라왕조 마지막 왕)가 여신 탈레주의 비호 아래 통치 하던 중 일어난 여신의 비극적 사랑에서 기인한다는 전설도 있다. 이에 따르면 신탁을 받으러 사원으로 간 왕에게 반한 여신이 “몇년 뒤 어린 소녀의 모습으로 찾아가겠다”고 왕에게 말한다. 그리고 몇년 뒤 길을 걷 는 왕과 왕비에게 한 샤키아족의 소녀가 크게 웃으며 다가왔다. 소녀의 무례한 행동에 화가 난 왕은 자신이 여신이라는 소녀의 주장에도 불구하 고, 소녀와 그의 가족을 추방해버렸다. 그러자 그날밤 신들린 왕비의 입 을 통해 탈레주 여신의 분노가 왕에게 전해졌다. 놀란 왕은 여신을 달래 기 위해 사원을 세우고 쿠마리 숭배를 시작했다는 것이다. 1769년 말라 왕조는 쿠마리 축제날 지금의 샤(Shah)왕조에 멸망했고, 새 왕조는 당시 새 왕조의 출범을 축복한 쿠마리를 기념해 이 축제를 이어왔다.
네팔에는 현재 11명의 쿠마리가 있다. 그중 가장 중요시되는 것은 카트만 두의 로열 쿠마리이다. 그리고 그 뒤를 파탄 쿠마리와 박다푸르 쿠마리가 따른다. 쿠마리는 매우 엄격한 기준을 통해 선발된다. 물론 불교의 영향 으로 쿠마리는 모든 신분과 계급을 초월한 존재이지만, 로열 쿠마리의 경 우는 거의 네와르족 출신의 불교신자 소녀 가운데 뽑는다. 우선 10여명의 예비후보들을 선정하는데, 후보들은 별자리가 왕의 별자리와 궁합이 맞아 야 하고, 또 신성한 32가지 상징들이 몸에서 발견되어야 한다. 왕의 국사 들인 5명의 불교 사제의 검증 아래, 단 한번의 상처도, 심각한 질병도 겪 지 않았고 이가 빠지거나 한방울의 피도 흘린 적이 없는 소녀로 구성된 예비후보들은 어둡고 기괴한 밀실에 갇혀 몇시간 동안 방치된다. 온갖 귀 신의 울음소리, 무시무시한 형상이 가득한 밀실에서 울거나 두려워하지 않는 당당하고 강한 소녀만이 로열 쿠마리로 선출된다.
울거나 피 흘리면 자격 잃어
네팔인들은 새로 뽑힌 쿠마리들이 10월의 다사인 축제 기간 동안 여신의 혼이 몸 안으로 옮겨져, 과거의 모든 기억과 더러움이 사라지고 여신으로 다시 태어난다고 믿는다. 그리고 대부분 힌두교도인 네팔인들은 축제기간 자신들에게는 금기로 돼 있는 고기와 술을 쿠마리에게 바치며 행운을 기 원한다.
사흘 동안 수레행진을 벌이며 올해도 네팔 민중들에게 축복을 나눠준 쿠 마리들은 다시 그들의 거처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들은 울거나 피를 흘리 지 않는 한 내년 축제에도 네팔인들의 꿈을 이뤄주기 위해 살아있는 여신 으로 다시 돌아올 것이다.
카트만두=정진아 통신원
© 한겨레신문사 1997년10월09일 제 17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