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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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살아있는 여신으로 추앙받는 쿠마리. 국왕으로부터 연금까지 지급받지만 대부분 비극적 삶을 살게 된다.)
쿠마리들은 그 영험함에 따라 국왕으로부터 연금을 지급받으며 아름다운 궁에서 살게 되고 사람들의 숭배를 한몸에 받게 되지만, 결코 행복한 것 만은 아니다.
어린 소녀 쿠마리들은 여신으로 뽑힌 뒤 쿠마리 축제 3일 동안 수레행진 을 제외하고는 단 한걸음도 문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관광객이나 신도들 에게 잠시의 구경거리로 선보일 뿐이다. 또 쿠마리에서 추방된 이후에도, “쿠마리였던 여자와 결혼하면 남자의 몸에서 정기가 빠져나와 여섯달 만 에 죽게 된다”는 미신 때문에 결혼도 못하고, 평생을 쿠마리의 환영에 시달리며 비극적으로 보내는 경우가 많다. 본인이 평범한 여인으로의 삶 을 원하더라도, 쿠마리 출신 여자와 결혼하려는 남자는 거의 없고, 많은 경우 본인 스스로 신이라는 환상에 젖어 세상과 단절된 삶을 사는 것이다 .
이런 쿠마리의 생애는 53년부터 85년까지 파탄 쿠마리로 있었던 다르마(D harma)라는 여인의 삶에서 극적으로 드러난다. 51년에 태어난 그는 2세 때 쿠마리가 되어 33년간 살아있는 여신으로 숭배받았다. 보통 짧으면 1 년, 길면 6∼7년인(생리 전에 새로운 쿠마리가 선출되므로) 쿠마리 교체 기간에 비할 때 그의 경우는 쿠마리의 기원 이후 유례가 없는 일이라고 한다. 스스로 여신이라는 생각에 강하게 사로잡힌 나머지 그는 40세가 넘 어서야 생리를 시작했다. 그뒤 쿠마리가 4번이나 새로 선출되는 가운데서 도 그는 새 쿠마리들을 각자 자신의 집에 머물게 하면서 쿠마리궁은 자신 이 차지한 채 여전히 사람들의 숭배받고 있다.
그가 기거하는 숭배의 방(Agama)은 4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다름없이 붉고 화려하며 어둠침침하다. 의자는 꽃으로 화려하게 치장되어 있다. 그러나 그가 앉기에 의자는 너무나 작고, 사람들은 여전히 술, 고기, 계란, 과일 등을 갖다 바치며 축복을 바라지만 정작 축제가 돌아올 무렵이면 작고 앙 증맞은 붉은 옷을 입고 시녀의 팔에 안겨 의자에 앉혀지는 게 궁색하기만 하다.
이제 50세를 바라보는 늙은 처녀신의 이마에는 오늘도 여전히 ‘시바의 눈’이 뚜렷이 그려져 있다. 쿠마리의 이마를 치장하는 붉은 화장 위에 새겨지게 되는 시바의 눈은 제3의 눈으로, 세계를 관통하고 진리를 꿰뚫 어 본다고 한다. 파탄 쿠마리 다르마, 그는 과연 제3의 눈을 통해 무엇을 보고 있을까?
© 한겨레신문사 1997년10월09일 제 17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