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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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싸고 빠르게'를 앞세운 일본 전철역 앞 우동가게. 특별한 기술이 필요없어 퇴직을 앞둔 회사원들의 사업 대상으로 관심을 끌고 있다.)
누구나 시간부족을 호소하는 세상에선 바쁘지 않은 사람이 오히려 이상하 다. 그러다 보니 시간을 절약해주는 상품, 이른바 ‘절시상품’이 갈수록 각광을 받고 있다. 한번 입고 나면 더럽지 않아도 옷을 세탁하는 일본의 젊은 여성들에게는 세탁력은 조금 떨어지더라도 세탁시간이 짧은 세탁기 가 으뜸이다. 한국에서는 한 은행이, 고객 대기시간이 5분을 넘기면 벌금 으로 1천원을 주기로 했다는 이야기도 들려온다.
주문 후 음식나오기까지 1분
연간 매상 1억엔(약 8억원). 얼핏 듣기에 대규모 레스토랑이나 호화 불고 기집 매상을 연상하게 되지만 다름 아닌 전철역 근처의 우동집 이야기다. 무엇보다 ‘싸고 빠르게’가 이 가게의 캐치프레이즈다. 가게 면적 6평 정도, 손님들이 앉아 먹을 테이블은 물론 없다. 우동을 말아주는 아주머 니 두명과 주인 아저씨 등 3명이 일하는 이 가게에는 그밖에는 설 자리도 그리 넓지 않다. 손님들은 우동그릇을 든 채 서서 우동을 입으로 밀어넣 기에 바쁘다.
유명대기업들이 늘어선 도쿄의 오피스거리 신사비역. 바쁜 아침 출근시간 에 쫓기는 양복차림의 샐러리맨들이 비좁은 개찰구를 너나 할 것 없이 빠 져나오는 아침 8시30분께가 되면 역 개찰구를 나와 고가도로 옆 왼쪽 모 퉁이의 우동집에서 풍겨오는 구수한 우동국물 냄새가 군침을 돌게한다. 1 0분이라도 더 자고 싶은 마음에 아침을 거르기 일쑤인 회사원들로서는 참 기 어려운 유혹이다. 이 역 근처에만도 우동집이 3곳 이상 있다.
먼저 가게 입구의 식권판매기에 동전을 넣고 먹고 싶은 메뉴를 선택해 식 권을 테이블 위에 놓고 30초에서 1분 가량 기다리면 무럭무럭 김이 나는 우동이나 메밀국수가 나온다. 식권을 사서 먹고 나올 때까지의 시간은 평 균 6분이다. 아침을 걸러 건강을 해치는 일도 피하고 빠른 시간 안에 싸 고 간편하게 해결할 수 있다. 한그릇 가격은 3백50엔 안팎이다. 한국돈으 로 계산하면 결코 싼 것은 아니지만 식당에서 점심 한끼 가격이 1천엔 정 도인 것을 생각하면 저렴하다.
이런 우동집은 도쿄의 전철역 주변엔 최소한 한집 이상 자리잡고 있다. 도쿄뿐만 아니라 오사카, 나고야 등 일본 어디든지 이런 형태의 간이음식 점이 있다. 물론 대부분의 우동집이 연간 1억엔의 매상을 올리는 것은 아 니지만 자리만 좋으면 1억엔 매상은 힘들지 않다고 가게 주인들은 입을 모은다.
조금 특이한 이름의 신바시역 근처의 우동집 ‘폰눕프’에는 평일, 휴일 관계없이 손님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이 가게의 주인 아카츠는 이곳 이외에도 5곳의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신바시점의 1년 매상은 1억엔. 하 루 평균 40만엔 가량 번다는 그는 평균 매출의 20% 정도가 순이익이라 귀 띔한다. 박리다매라고 손님들은 이야기하지만 이 일보다 쉬운 돈벌이도 없단다. 특별한 기술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고용하는 사람도 파트타임 아줌마들이다. 특별한 설비투자 없이 소규모의 점포에 소액투자로 가능한 장사다. 단 다른 가게들 보다 맛에 대한 주의를 잊지 않는다. 아카츠는 한그릇에 평균 5엔 가량하는 싼 국물을 사용하지 않고 교토의 전문업체에 특별주문해 23엔짜리 국물을 사용하고 있다. 우동이나 메밀국수의 경우 면의 질로는 맛의 차이를 느끼기 어렵기 때문이다.
손님들에게 빠르고 효율적인 우동을 제공하고 손님의 회전율을 높이기 위 한 노력도 끊이지 않는다. 식권판매기에서 식권을 살 때, 손님이 우동인 지 메밀국수인지를 사전에 알려주는 음성전달시스템이 그 실례다. 우동인 지 메밀국수인지에 따라 면을 데우는 시간이 다르기 때문이다.
투자비 3천만엔, 입지가 성공좌우
일본에 서서 먹는 우동집이 처음 등장한 것은 18세기 에도시대였다고 한 다. 당시의 우동집은 포장마차 형식이었다. 일본의 대표적인 요리인 초밥 도 처음엔 서서 먹는 음식이었다. 한국인들에게는 서서 먹는다는게 익숙 지 않지만 일본인들에게는 거리낌이 없다.
한국처럼 명예퇴직자가 늘어나는 요즘 일본에서는 역근처에 우동집을 열 려는 50대들의 이야기가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린다. 투자액은 약 3 천만엔 가량으로 대기업의 40대 과장급 연봉 1천만엔의 3배 정도다. 자신 이 자주 이용하던 우동집의 경우를 봐서인지 그들은 우동집 경영에서 어 떤 점에 주의를 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는 듯하다. 역 근처 우동집은 경 기를 타지도 않는다. 매상을 좌우하는 것은 오직 입지조건과 차별화전략 이다. 특별한 기술이 없어도 성실하고 양심적인 자세만 있으면 되는 우동 집에 수십년간 땀흘려 일해온 명예퇴직자들이 매력을 느끼는 이유가 여기 에 있다.
도쿄=구영구 통신원
© 한겨레신문사 1997년10월09일 제 177호